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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아 Nov 11. 2017

가진 것을 더 풍부하게 만드는 방법

여행을 앞둔 너에게 #2: '글쓰기'에 대하여

예전에, 우스갯소리로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있었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한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適者生存이 아니라, '적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라고 하는.

진짜 적는 사람이 살아남는지 어쩐지는 나는 잘 모르겠는데, 이건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네가 오롯이 혼자 생각에 잠기는 시간과 여러 감각들을 깨워줄 새로운 경험들을 100% 있는 그대로 남기는 데에는, 그리고 그 생각과 경험들을 정리하고 더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데에는 글쓰는 것만한 게 없다는 거야.


사실 내가 너에게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의미에서였어.

지난 1년 간 자잘하게 스쳐갔던 생각들과 경험들을,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거든. 그리고 그걸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드는 시간도. 

너의 시간과 나의 시간, 그 사이에 했던 생각들을 다시 꺼내어 기록하면서 지금의 내 생각이 어떠한지 정리해보고, 또 그걸 너에게 전달하면서 더 생각을 깊게 파고드는 이 과정이 나는 굉장히 가치있다고 생각해.




아래는 내가, 여행을 하면서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메모한 것들이야. 아주아주 일부긴 하지만.


러시아 지하철은 열차 배차 간격이 1분 정도가 아닐까 싶다. 진짜 빨리옴.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출발합니다~치익~ 이런 거 없고 그냥, 출발한다! 우와아아아아앙! 도착! 내려! 나 간다! 우와아아아앙! 하는 느낌이다. 여기 지하철에서는 졸면 끝이다, 끝.


무뚝뚝한 표정으로 있다가, 좁은 통로를 아내가 지나갈 때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어서 잡아주는 할아버지 모습이 잔잔하게 기분 좋다.


디제잉을 직업으로 한다는 마틴을 만났다. 나에게 I love your eyes. Your smile is so beautiful! 해주었다. 동네를 구경시켜주겠다는데 반고흐 미술관을 바라보며 햇볕을 쬐는게 너무 좋기도 하고, 속이 뻔히 보여서 쏘리. 마틴은 암스테르담이 다이아몬드로 유명하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 가게가 그렇게 많았군!


Y언니, E언니와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개미와 날파리의 대결을 보았다.

대단한 혈투. 자신의 몸집의 두 배가 되는 날파리를 이긴 개미를 본 순간의 그 기분이란.


숙소에 가면 알리페이에 대해 더 찾아보자.

구걸을 하는 거지나 모금을 하는 사람들마저 큐알코드로 하는 신박한 중국. 


상공에서 새벽 배를 보는 느낌은 마치 드문드문 떠 있는 도시의 별빛과 같다.

주홍빛, 노란빛으로 빛나는 저 별들의 모습을 좇는 나의 눈은 마치 별자리를 읽으려는 박사의 눈빛과 같다.

수많은 불빛들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야경, 그 불빛은 멀리서 보면 아름다우나 그 불빛 하나하나에는 사실, 야근하는 부모님과 밤샘을 하는 이들의 현실이 묻어있듯,

평온하기만 해보이는 바다도 거친 파도가 있을테고, 저 배들도 사연 하나쯤은 싣고 있겠지.

비행기는 그렇게 잔잔해보이는 바다에서 구슬프게 빛나는 별들을 흔들리며 지나쳐간다.

ㅡ멕시코만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정말로 일을 즐기는구나,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표정부터 다른 느낌.

그저 돈을 버는 사람과, 깨끗한 일상을 선물하고, 꿈을 선물하는 사람의 차이.


그 외에도 덴하그, 헤이그에서 이준열사박물관을 가서 '역사'에 대해 생각했던 기록, 

모짜르트 생가에 가서 모짜르트에게 그의 아버지가 적었던 편지의 글귀가 너무 와닿아서 몇 번을 적었던 기록, 

소매치기를 당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얼마나 나랑 가까워지려고 신이 이렇게 밀당을 하느냐며 원망을 하는 기록 등.

차마 사진으로 모두 담기지 않는, 나의 생각과 그 순간의 기분과 분위기, 새로 알게 된 것이나 깨달은 것은 대부분 글로 적어두었고, 그래서 나는 그 때를 아주 잘 떠올릴 수 있어. 올해 초에 내가 개인적으로 적어둔 글이 있는데, 그 글은 저 당시에 적어둔 것들을 보다가 그때의 생각을 이어서 한 것이기도 하고.




여행처럼, 특별한 경험을 앞두고 있다면 더더욱 그때의 생각과 경험을 흘러가게 두지 말고 꼭 적어둬.

그때의 경험이 추억이 되는 것은 사진으로도 충분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너의 영감님, 뮤즈가 되기에는 사진으로는 부족하거든.


틈틈이 글을 적으렴.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 

일상의 순간순간에 드는 생각들, 그리고 느끼는 것들, 감정과 분위기들도, 적어두면 그때의 기록이 그대로 남아있다가 너의 '영감님'이 되기도 하고, 네 생각과 맞지 않아서 싸우고픈 대상이 되기도 할 거야.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그 위에 네가 생각을 더하면서 그만큼 스스로 깊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거든.

감정 정리에도 좋아. 나는 한동안 조급하게 화내는 나를 참 싫어했는데, 순간순간의 나를 적어두었다가 얼마 뒤에 보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도 볼 수 있더라고. 혹은 적는 그 자체로도 감정이 정리될 때도 있고. 


길고 예쁜 글이 아니라도 좋아.

스쳐가는 것들을 스쳐가게 두지 말고, 꼭 붙들어서 더 풍부하게 만들어보길 바랄게.



P.S. 아 참, 이번 글을 적다가 작년의 글들을 다시 꺼내어 보게 되었는데, 모차르트의 생가에서 보고 적어두었던 글귀가 참 울림이 있어서 너랑 공유할게. 모차르트 아버지가 모차르트에게 적은 편지 중에 나온 글귀라고 해.


그럼- 

안온한 밤 되길.


최고의 예술은 자신을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그러고 나서 내가 했던 것 처럼 너도 다른 이들을 공부해서 배워라.

너도 알겠지만 이것이 언제나 내가 공부했던 것이고, 이 공부야말로 아름답고, 유용하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Cover Photo by John Jenning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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