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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멜리에최 Nov 27. 2023

남자 없는 여자들

2. 안전지대


 아이가 잠드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만큼 달콤한 것은 없다. 아이는 완벽히 잠이 들 때까지 나를 곁에 두려 한다. 요즘에는 내 손으로 자기 손을 꽉 잡으라고 한다. 잠들었나 싶어 손을 슬며시 빼면 눈을 감은 채 “꽉 잡으라고 했잖아”라며 꾸짖는다. 아이는 꼭 “눈 뜨고 자요”라는 주문도 곁들인다. 눈을 뜨고 자라니, 자신은 눈을 감지만 나는 자신을 지켜보았으면 하는 마음일까. “눈 뜨고 어떻게 자냐”라고 핀잔을 주면서도 눈은 이미 스스로 떠지고 있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환하게 웃는다. 또 졌다, 졌어.


 아이는 어느샌가 밀당의 고수가 되어 있다. 밀리는 건 나고, 당겨지는 것도 나다. 당하는 입장인데도 좋아서 연신 미소가 지어진다. 연애로 본다면 혀를 차고도 남는 관계다. 마음을 접고 아이 옆에 누워 잠에 빠져드는 아이의 얼굴을 지켜본다. 깜박이는 눈꺼풀의 움직임이 서서히 잦아든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또다시 히힛 하고 웃는다. 올킬이다.


 행복에 얼굴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겠지. 기다란 속눈썹, 앙증맞은 코, 핑크빛 입술, 솜털 난 볼따구. 사랑해 라고 속삭이면 잠결에 사랑해 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 우리를 영원히 지켜줄 것만 같다.     

 잠에 빠져드는 아이를 지켜보는 침대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자는 시간 말고도 아이와 함께 할 때는 평소보다 안전하다는 감각을 종종 느끼는데, 아마 그건 아이가 동행하고 있어 행동을 조심하게 되는 것과,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책임감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또 아이와 그 보호자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친절한 배려도 중요한 부분이다. 여기에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와 함께 있으니 무엇이든 우리를 지켜 줄 것만 같은 초자연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이 더해진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내가 아이에게 주는 것보다 아이에게 받는 것이 더 크다고 느낄 때가 많다.     


 이제 곧 다섯 번째 생일이 돌아오는 아이는 얼마 전부터 ‘안전하다’는 표현을 쓴다. 소풍을 가서 돗자리를 깔아주면 가지고 간 옷가지나 가방, 보온병 같은 짐으로 자기가 앉은 자리를 빙 둘러싼 뒤 “와 이제 안전하다.”라고 기뻐한다. 식당에서 앉을 때에도 꼭 자기 양옆으로 무언가가 있으면 하는 모양이다. 내 가방은 자기 왼편에 두고 나를 자기 오른편에 앉으라고 요구한다. “안전했으면 좋겠어” 라고 말하며.      


 아이가 그런 표현을 처음 쓰기 시작할 때에는 사뭇 놀랐다. 첫째는‘안전’이라는 단어가 미취학아동이 일상적으로 구사할만한 단어는 아닌 것 같아 그랬고, 둘째는 ‘안전하다’의 반댓말은 ‘안전하지 않다’니까 역으로 아이가 자신의 안전을 침범당하는 상황이 많구나, 싶어서였다. 내적 긴장도가 높은 성향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이렇게 아이의 입을 통해서 말을 들으니 조금 걱정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보호자인 내가 모르는 영역에서 객관적으로 문제시될만한 일(아동학대 같은)이 일어나서는 아이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니어 보였다.        


 아이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타입인데, 특히 그 공간에 낯선 사람들이 있을 때, 특히 그 사람들이 자기 또래일 때 긴장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 역시 비슷한 성향인지라 아이의 소극적으로 보이는 모습을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모르는 아이들과 다 같이 섞여 노는 여러 공간에서 아이가 머뭇거리며 하고 싶은 일은 하지 못한 채 쭈뼛거릴 때 나의 모습이 투사되어서인지 이해는 하지만 더 답답해 하는 사람도 나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명백하게 다른 사람이고 아이가 생각하는 안전의 감각은 나의 감각과는 온전히 일치하지 않을 것이다. 아이와 나를 동일시 하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언제고 나를 안전한 사람으로 여길 수 있다면 좋겠다. 부모의 사랑이 곧 아이의 부모에 대한 안전하다는 감각으로 이어지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에 부모도 아이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이가 나와는 기본적으로, 또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 지레짐작하지 않고 관찰하며 물을 것. 나 자신과, 또 아이와 약속을 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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