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하는 엄마입니다

그로잉맘 첫 번째 이야기

by 아멜리 Amelie

* 이 글은 그로잉맘에 게재되었습니다.


하은아, 엄마는 지난 설에 떡국을 한 그릇 먹고 마흔이 되었어. 어른들은 나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해.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무 자르듯 슥 자를 수도 없는데 어른들은 서른아홉과 마흔의 무게는 많이 다르다고 여겨. 마흔이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난 아직 큰 변화는 못 느껴. 다만 나이가 조금씩 무거워질 때마다 ‘몇 살까지 일을 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나에게 던져. 꼽아보니 너와 태오를 낳아 키운 2년을 제외하고 14년 동안 일을 했어. 내 인생의 삼분의 일 정도의 시간이고, 내 이름이 적힌 통장으로 168번의 월급을 받았어. 시간이 많이 흐르긴 흘렀나 봐. 나와 띠 동갑의 상사와 일을 했는데 지금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나보다 12살이 어리니 말이야.


14년 동안 일을 하면서 딱 한 번 진심으로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날이 있었어. 네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된 2015년 3월이었어. 동네 어린이집에 입소할 수 있다는 연락을 받고 기쁜 마음에 입학 신청을 했어. 너를 키우며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면 당장이라도 버스를 타고 회사에 가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였거든. 이틀 정도 등하교 연습을 하고 셋째 날 너를 어린이집에 두고 집으로 돌아왔지. 꽃샘추위가 불어 닥친 3월이라 공기는 차가워도 햇살은 따뜻한 날이었어. 이른 봄 햇살이 유리창에서 반짝이다가 네가 놀다가 두고 간 장난감이며 너의 이불 위를 넘실거렸어. 너는 집에 없는데 네가 남긴 냄새들은 내 코끝을 따라다녔어. 싱크대에 붙어서 그릇 몇 개를 달그락달그락 씻어 엎어 두고 너는 없고 대신 네가 남긴 흔적만 풍경으로 남은 거실을 돌아봤어. 그때 머릿속이 하얘지더라. 이 어린아이를 두고 정말로 회사에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하던 일을 그만두고 오롯이 너를 키우는 일에 집중하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세상 모든 여린 생명들이 가진 어여쁨이 그러하듯 너는 바라만 보아도 손에 잡히는 행복이 느껴져 어느새 내 입가에 웃음이 번졌고, 네가 ‘으앙’ 울음을 터뜨릴 때 번쩍 안아 달랠 수 있어 소중한 시간이었어. 젖을 먹다 잠든 네가 입술을 달싹이는 모습을 보는 것도, 온몸으로 이유식과 과일을 받아먹으며 함박웃음을 짓는 너를 보는 것도, 엉금엉금 기어 다니다 아장아장 걷는 네 뒷모습을 보는 것도 너무 행복해서 무섭기까지 했어. 너무 행복한 나머지 이 행복이 사라지면 어쩌나 겁이 나는 순간이 있을 정도로 말이야.


‘회사에 돌아가지 않을 테야’


이렇게 나 혼자 마음을 먹은 날이었어. 너의 아빠가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진지하게 회사를 관두려는 나의 결심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아침에 너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 주방을 치우고 커피 한잔을 마시려 물끄러미 희뿌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어. 갑자기 목이 메더니 눈물이 그렁그렁 차 올랐고 희뿌옇게 보이던 하늘마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쏟아졌어. 너에게 미안했어. 사실 나는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 했던 그날부터 너를 낳고 키우는 생활이 안정되면 곧바로 회사에 복귀하겠다고 마음먹고 일을 했어. 태어나지도 않은 네가 입학할 어린이집을 신청했고, 다들 조심해야 한다고 한 마디씩 하던 임신 초기에도 야근을 했고, 너를 낳기 일주일 전까지 외부 현장에서 일을 하고 결과 리포트를 제출하느라 정신이 없었어. 이렇게 열심히 신나게 일하는 사람이 출산하고 집에 있으면 일하는 감각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한창 일하고 배울 때인데 집에서 아이만 키울 수는 없다는 강박관념에, 나만 뒤쳐지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최대한 빨리 회사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했어. 어쩌면 나에게 임신과 출산과 양육은 내가 하던 프로젝트 중 하나 정도가 아니었나 싶어. 문제없이 깔끔하게 해내야 하는 일 그 자체 말이야.


하은아, 너를 두고 회사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그 봄을 지나, 세상이 뜨거운 해에 녹아내린 여름을 건너고 차가운 바람이 손 끝을 스치던 가을과 겨울을 보내고 다음 봄이 찾아올 무렵 엄마는 회사에 복귀했어. 이른 아침 너의 아빠와 너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동네 버스 정류장에서 광화문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첫 출근을 했어.


나는 왜 그때 회사와 일을 그만두지 않고 다시 내 이름 석자가 적힌 명함과 다이어리가 굴러다니는 사무실 책상에 앉게 되었을까. 왜 나는 너와 지내는 시간을 그토록 행복해하면서도 굳이 애써 너를 어린이집에 떼어놓고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고 해가 지면 무거워진 어깨에 더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집으로 향하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까.


한 여자가 엄마가 되고, 일하는 엄마가 된 이야기를 지금부터 너에게 하려고 해.

하은아, 엄마가 하는 ‘내 이야기’ 들어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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