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잉맘 두 번째 이야기
* 이 글은 그로잉맘에 게재되었습니다.
2020년 4월 6일, 코비드19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싱가포르 정부는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를 발동했다. 식료품을 구입할 수 있는 매장 외에 모든 상점과 쇼핑몰이 문을 닫았고, 의료와 같은 특수 직군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집에서 근무를 해야 했고, 아이들의 학교 문도 꽁꽁 걸어 잠겼다. 연일 쏟아지는 뉴스로 코비드19에 대한 두려움이 높았던 때라 집에만 머무를 수 있어 안심이 되기도 했다. 서킷 브레이커를 발동한다는 싱가포르 총리의 담화문을 들으며 어수선한 마음 사이에 가장 현실적인 문제가 뾰족하게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네 식구가 외출도 하지 않은 채 집안에서 하루 온종일 같이 지내면서 감정과 육체 모두 건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즈음 우리는 주말 외출도 하지 않고 집안과 동네 공원 산책 정도만 할 때였다. 주말 내내 집에만 머무르면서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시간을 체크했고, 해가 떠 있는 시간 내내 일을 하고 수업을 듣고 놀고 밥을 먹으며 상주해야 하는 우리의 공간을 어떻게 정리할지 고민했다. 아이들과 같이 집안에서만 머무르며 일을 하고, 짬짬이 아이 학교 공부를 봐주고, 삼시세끼 밥을 챙겨 먹고, 아이들과 놀아 주어야 했기에 처음 해보는 생활 앞에 마음이 무거웠다.
아이들은 해도 뜨기 전인 아침 6시면 눈 비비고 일어나 거실로 나가서 놀자며 누워있는 내 바짓가랑이를 끌어당겼다. (하루는 정말 길단다 얘들아, 제발 한 시간만 더 자렴.) 거실로 우르르 나간 우리는 깜깜한 창 밖을 바라보며 하루 일과를 놀이로 시작했다. 새벽부터 동화책을 읽다가 인형 놀이와 주방 놀이를 번갈아 가며 하다가 오전 8시에 마주 보고 앉아 아침밥을 먹었다. (어서 먹자 얘들아, 엄마는 9시에 비디오를 켜고 미팅을 해야 한단다) 짧은 오전 미팅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업무가 시작될 때 거실에 있는 식탁에 남편과 나, 큰 아이는 팀 미팅이라도 하듯 모여 앉았다. 큰 아이는 오래된 노트북을 앞에 두고 노트북 전원 버튼 누르는 방법을 제일 먼저 배웠고, 학교에서 보내준 홈스쿨링 계획표를 매일 아침 확인하고 그날그날의 수업을 나와 함께 했다. (선생님, 그간 고생 많으셨어요. 이 녀석은 학교에서는 의자에 잘 앉아서 집중하나요. 왜 저랑 나란히 앉아있으면 자꾸 뭔가 두고 왔다며 온 집을 돌아다닐까요)
둘째가 낮잠 자는 시간은 천국이 따로 없었고, 집중해서 해야 하는 일들을 속사포처럼 해치웠다. 적도의 햇살이 최고로 쨍한 시간이 되면 일도 손에 잘 안 잡히고 애들도 이제 뭘 더 해야 할지 몰라 길을 잃은 사람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온 식구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운동을 빙자한 댄스 시간이었다. 싱가포르 한낮 더위에 땀이 샘솟고, 흥이 치솟은 아이들은 그저 즐거워했다. 집에 갇혀 나갈 수 없다는 답답함을 노래와 춤에 실어 내지르던 시간이었다.
남은 일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업무용 노트북과 아이가 공부할 때 쓰던 노트북을 모두 끄고 식탁 한쪽 끝에 쌓아두고 저녁을 먹기 시작한다. 하루 온종일 같이 있었지만 아이들은 제각각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깔깔거리며 웃었다. 가장 자주 등장한 질문은 ‘코비드가 끝나면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은가?’ ‘식당에 갈 수 있다면 뭘 먹고 싶은가?’ ‘한국에 간다면 어디를 가장 가고 싶은가?’ 정도였고, 늘 나누는 대화이지만 정답이 없기에 끝도 없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은 8시 30분이 되면 잠자리에 들었고, 두어 시간 어른들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자고 나면 못다 한 일을 마무리 짓거나, 책을 읽었고, 다음날 먹을 반찬을 준비했고, 요가 매트를 펼쳐 놓고 운동을 했다.
집에서만 생활했던 3개월 동안 가장 다행으로 여겼던 점은 우리 모두 몸과 마음이 많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날카롭고 뾰족한 사람이 되지 않았고, 가장 크게 서로를 보듬어주는 사람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나만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거두는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도 일로 지친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고, 엄마라는 사람의 부족함을 덮어주고 보듬어주었다.
1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코비드라는 깜깜한 터널 속을 걷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 생활을 다시 시작했지만 어른들은 집에서 근무를 하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집에서만 머물던 그 시간을 돌아보면 결국 나는 일상의 시계 속도가 느려지든 빨라지든 멈추든 그 속에서 균형을 잡으려 무던히 애쓰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세상이 모두 정지했다고 느낀 순간에도 아이들은 깔깔거리며 웃었고, 옷이 작아질 만큼 키가 자랐고, 내일을 기약하는 더 큰 세상을 향한 상상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마스크 없이 생활하며 소소하게 누린 일상과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그럭저럭 툭툭 털어내며 웃을 정도로 단단해졌다. 나도 태어나 처음 겪는 낯설고 불안한 상황을 무탈하게 건너기 위해 일과 육아가 뒤섞인 일상 속에서 균형을 맞추고 나의 마음 관리도 소홀하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간다. 그동안 나도 아이들처럼 많이 자랐다. 어쩌면 엄마들에겐 훌쩍 자랐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림자 같은 성장이 늘 엄마 곁에 따라다니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