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잉맘 서른네 번째 이야기
어느 집이나 어른과 아이들 사이에 스마트폰과 동영상 시청으로 크고 작은 소란이 일어난다. 대부분의 양육자는 아이들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 주기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다 결국 포기하고 아이들 손에 스마트폰을 넘겨주고 한숨을 푹 쉬며 백기를 든다. 양육자인 우리가 포기하게 되는 그 순간을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아이들에게 빼앗기지 않는다면, 그 이후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난 늘 이다음을 상상하며 스마트폰과의 싸움에, 아니 스마트폰을 둘러싼 아이들과의 싸움에 임하고 있다.
우리 집도 여느 집과 다름없이 동영상 시청으로 몸살을 앓는다. 큰 아이는 이미 동영상에 노출이 꽤 되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고정 프로그램도 있어서 조금만 여유 시간이 생기면 나에게 이렇게 물어보며 다가온다.
“나 뭐 봐도 돼?”
세상에서 나를 가장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질문이며, 앞으로 펼쳐질 아이와의 게임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을 여는 열쇠와 같은 질문이다. 나의 맨 처음 대답은 이렇다.
“응, 내 얼굴 봐.”
아이는 실망 가득한 얼굴로 내 앞에 서서 다시 한번 묻는다.
“내가 숙제도 다 했고, 그림도 다 그렸는데 심심해.”
아, 심심해.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말을 아이가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이다.
아이에게 심심하다는 건 어떤 건지 들여다봤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는 시간이 곧 심심한 시간이고, 딱히 떠오르는 놀이가 없을 때도 심심한 시간이고,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조
금 쉬어 가도 되는 시간도 곧 심심한 시간이었다. 그러고는 언젠가부터 심심할 땐 뭔가를 보면 된다고 아이는 혼자 정리를 했다. 영상을 보고 있으면 재미도 있고, 굳이 뭔가 하지 않아도 되어 심심하지 않으니까.
영상에 푹 빠져 있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심 아이의 그 시간이 너무나 아까웠다. 지나고 보면 가지려고 애써도 가질 수 없는 게 시간인데, 엎어지고 자빠지며 신나게 뛰어놀아도 모자랄 시간인데, 그 시간을 모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눈앞에 흘러가는 영상에 쏟아붓는 게 아까웠다.
그래서 그날부터 이 말을 달고 살았다.
“네가 영상을 보면서 허비하는 네 시간이 너무 아까워. 네가 꼭 굳이 뭔가 거창한 것을 하며 놀지 않아도 좋고, 공부를 하지 않아도 좋아. 네가 가진 시간을 네 힘으로 채워 나가면 좋겠어. 하염없이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눈으로 좇아가며 놀아도 좋고, 하릴없이 아파트 단지 안을 걸어 다녀도 좋아. 네 시간은 네 의지로 꾹꾹 채우면 좋겠어. 누군가 네 손에 쥐어 주는 걸로 네 시간을 채우지 않고 네 몸과 마음으로 채우는 너의 시간 말이야.”
아이가 내 말을 모두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꾸준히 전해야 할 말이 바로 이 말이 아닐까 싶었다. 네 의지로, 너의 몸과 마음을 담아 채우는 너의 시간.
1분 동안 플랭크를 하고 3분 동안 줄넘기를 해본 사람은 안다. 1분, 3분이 억겁의 시간만큼이나 길게 느껴진다는 것을. 요즘 콘텐츠들은 워낙 뛰어나서 동영상이 백해무익하다는 말은 못 하겠다. 다만 1분, 10분, 1시간, 내가 스스로 채우는 시간이 아이나 어른이나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우리는 해야 하는 일을 하느라, 혹은 해야 한다고 하는 일들을 해치우느라 정작 우리 스스로는 무엇을 좋아하고 원하는지 들여다볼 틈이 없다. 그만큼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가장 먼저 소홀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아이들도 바쁜 일정을 소화하며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다. 아이들도 넋을 놓고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동영상으로 채워버린다면 초여름 잎사귀를 닮은 아이들 시간이 너무 아까울 것 같다. 아이들도 우리 어른들처럼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클까 봐 두렵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아이들과 동영상을 둘러싼 사투를 벌였고, 끝끝내 이겼고, 아이들은 지금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로 그들의 시간을 채웠다. 그렇게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서 마침내 나와 우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이 되자. 혹시나 우리 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도 괜찮지만 이왕이면 적어도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정도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이건 인생을 건 숙제다.
오늘도 동영상을 볼 수 없었던 아이들이 채운 시간은 어떤 색깔일까? 그 색이 무엇이든 아이들 스스로 찾은 색이니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다운 색깔일 것이다.
그로잉맘에 아이들 키우는 재미와 애환을 글로 나누며 채운 저의 일 년 반은 따뜻한 차를 나누는 시간처럼 온기가 가득했고, 누군가 나의 등을 쓰다듬어 주는 것처럼 포근했고, 아이들이 한달음에 달려와 내 품에 안기는 것처럼 가슴 벅찬 시간이었습니다.
제 이야기가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들에게 얼마나 진심으로 다가갔는지는 다 알 수 없습니다만,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의지가 되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동안 제 글을 정성으로 읽어 주신 얼굴 모르는 독자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행복한 마음으로 아이들 키우고 우리도 돌보기를 바라면서 마지막 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