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잉맘 서른세 번째 이야기
아이의 학교에서 합창 공연 초대장이 왔다. 코비드 방역 규제가 완화되면서 아이가 매주 월요일마다 방과 후 활동으로 참여하는 합창단의 공연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오랜만에 아이의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의 공연을 본다는 생각에 내가 먼저 설렜다. 소소하지만 추억하고 싶은 우리의 일상을 코비드가 그동안 참 많이도 앗아갔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는 함께 노래 부르는 친구들과 줄지어 무대에 올라갔다. 선생님의 지도가 익숙한 듯 선생님의 손짓에 아이들은 호흡을 고르고, 반주를 경청하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무대를 즐기는 아이부터 뭔가 어색하고 쑥스러운 아이까지 다들 제각각의 모습으로 합창에 참여했고, 아이들의 표정을 닮은 목소리가 내 귀를 간지럽혔다. 한 해 동안 노래를 즐기고, 무대를 선보이는 자체로 아이들 모두 사랑스러웠다.
학년이 바뀌면서 아이가 합창반을 시작한 건 온전히 내가 저지른(?) 일이었다. 작년 9월부터 시내버스를 타고 등하교를 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는 수월하게 방과 후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수업은 수업료도 저렴하고 이동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뭐든 하고 싶어 하면 다 하게 할 참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 어떤 프로그램도 선택하지 않았고, 그저 집에 빨리 돌아와 놀고 싶다고 했다. 하기 싫어하는 애를 억지로 시킬 수도 없는 노릇, 속으로는 아쉬웠지만 내 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방과 후 활동 신청이 마감되었는데 합창 수업에 추가 신청을 할 수 있다는 공지가 떴다. 학년이 바뀐 후 아이는 음악 수업이 재밌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었기에, 나는 아이가 합창 수업을 좋아할 것이라 혼자 결론을 내린 후, 아이와 상의도 하지 않고 합창 수업에 아이를 등록했다. 그리고는 음악 선생님이 너도 합창 수업에 참여하라고 했다며 하얀 거짓말을 했다.
첫 번째 합창 수업을 마치고 아이가 하교하던 날, 아이를 마주하려니 겁이 났다. 보통 하교하는 아이를 기다릴 때에는 오늘은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었을까 하며 내가 먼저 기대를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아이의 의사는 고려하지 않고 혼자 결정하고 수업에 보냈으니 아이가 가기 싫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리고 아이가 합창 수업을 싫어하면 미안한 마음까지 들 것만 같았다.
커다란 가방을 메고 익숙한 손동작으로 버스 카드를 찍고 아이가 버스를 내린다. 마스크 뒤에 숨은 아이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진다. 합창 수업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멀리서도 느껴져 이내 안심이 되었다. 아이를 향해 다가가는 내 발걸음이 한껏 가벼워졌다.
“오늘 합창 수업은 어땠어?”
“좋았어. 내가 좋아하는 음악 선생님이 합창 수업 선생님이셔. 진짜 재밌어.”
아이의 합창 수업 장면을 상상한다. 좋아하는 선생님이 좋아하는 노래를 가르쳐 주신다. 친구들과 노래 가사를 한 소절씩 배우며 익힌다. 노래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앉아 간식을 나눠 먹는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날 배운 노래를 흥얼거려본다. 그리고 다음 합창 수업을 기대하며 기다린다.
그렇게 한 해 동안 아이는 온 마음으로 합창 수업에 참여했다. 수업에서 배운 노래를 집에서도 자주 틀어 놓고 따라 부르곤 했다. 아이를 통해 새로운 노래도 많이 배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을 즐겁게 하는 사람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아이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우연하게 시작해서 필연적으로 음악과 노래를 사랑하게 된 아이를 바라보면 시작은 미비했지만 끝끝내 사랑하게 되고 마는 무언가를 만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 뜻하지 않게 알게 되어 흠뻑 빠질 일이 세상 도처에 있다는 것도, 그리하여 우연이 주는 즐거움으로 우리의 인생을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것도 아이가 어렴풋이 느낄 수만 있다면 아이의 방과 후 활동은 꽤 성공적인 시간이 아니었을까. 또 이런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얼토당토않게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할 때, 시작도 하기 전에 긴장하고 초조해하기보다는 몸에 힘을 조금 빼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들여다보는 연습도 될 것이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예상치 않은 일이 생겼을 때 흥미진진하게 판이 꾸며지고 있다는 기대감마저 가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곧 아이의 길고 긴 방학이 시작된다. 우리는 또 어떤 예상하지 않은 흥미진진한 일들과 마주하게 될까?
걱정보다 기대부터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