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선을 나에게 주는 일
"나방과 나비를 구분하지 않는 나라가 있대."
"거기가 어딘데?"
"어딘지는 몰라.
다만 그런 나라가 있다는 게 다행이다 싶어."
한 영화의 장면에서
두 여자 고등학생이 나눈 대화였다.
나는 그 말을
바로 메모해두었다.
그런 나라가 있다면,
아름다울 것 같아.
어쩌면 그건 다행이라는 말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에 가까웠다.
우리는 이름을 붙이며 살아간다.
상황에도, 물건에도, 어떤 마음에도.
이건 나비, 저건 나방.
이건 빛을 향하는 존재,
저건 어둠을 맴도는 존재.
그리고 그 이름으로 경계를 만든다.
그렇게 나누며
우리는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피해야 하는지 배워간다.
그러다 가끔 생각한다.
빛을 향해 날아가는 것만이 아름다운 걸까.
어둠 가까이에서 머무는 존재도
아름다운 걸까.
사실 나 또한,
밤에 불빛 주변을 맴도는 나방을 볼 때마다
날며 흩뿌려지는 그 가루 때문에
괜히 피하고 싶어진다.
부딪히고, 다시 날고, 또 맴도는 그 움직임이
어쩐지 어리석어 보이고,
움직임에 비해
너무 많은 가루와 소리가 남는 것 같아서.
그런 혐오 속에서 나는,
나비가 되고 싶어하면서
그 나방들처럼 살아가고 있진 않은가 생각한다.
혹은, 이미 충분히 나방이면서도
자꾸만 나비가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지도.
그래서 그런 나라가 있다는 게 좋았다.
나방과 나비를 구분하지 않는 곳.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지금의 내가
구분되지 않는 곳.
그저 날고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곳.
그저 나일 수 있는 곳.
그곳에서는
누구도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겠지.
누구도 더 나아 보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 나라를 상상해본다.
그리고 아주 잠깐,
그 나라에 다녀온 사람처럼
나 자신을 바라보려고 한다.
오늘의 나는
나비도 아니고, 나방도 아닌,
그저 날고 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
그 시선을,
나에게 먼저 주고 싶다.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안전하게 묶어두기보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조금 거칠더라도,
빛이 무엇에 막혀 있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오늘도 수고했다는 말보다,
오늘도 잘 날아보았노라고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