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마음 앞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
오늘 오랜만에 작업실을 정리하다가
문득 먼 시간의 냄새가 밀려왔다.
대학교 복학 후 자주 마주치던 후배의 표정,
그 시절의 커피 냄새, 벽을 가득 채우던 진한 빨간색 인테리어…
잠시 덮어두었던 장면들이 한꺼번에 펼쳐졌다.
그때의 나는, 아마 산후우울의 끝자락에 있었던 것 같다.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SNS 속 후배의 세계여행 사진을 마주하면서
‘나는 어떤 시간 위에 서 있는 걸까’
조용히 흔들리던 때였다.
그 시절, 나는 철학 수업을 참 좋아했다.
신앙으로 세계를 바라보던 나에게 철학은
새로운 창을 열어주는 경험이었다.
세상의 지식이 작게 느껴지고,
오히려 ‘물음’이 커지는 시간들.
그 물음이 내 안에 생기를 만들었고
나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A 후배는 그때 막 신앙을 시작한 참이었다.
철학 수업 속 가치관의 충돌이 어렵다며 흔들리던 친구에게
나는 너무 단단하고 확신에 찬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를 건넸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장군처럼 굳어 있었고,
뜨거웠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품게 되면서
주변의 모든 응원과 축복 속에서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출산이 지나고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깊은 무기력과 슬픔이 찾아왔다.
그 무게를 알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텼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며 생긴 작은 여유는
나를 돌보는 시간이 되기보다
다시 세상의 속도를 바라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다.
조금씩, 다시 흔들림이 시작되던 때였다.
그런 와중에, 후배의 근황을 보았다.
신앙도 지켜가고 있었고,
자신의 꿈을 향해 반짝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 꿈의 온도에 닿으면
' 나도 다시 꿈을 꾸게 될까― '
그런 마음으로 우리는 오랜만에 만났다.
하지만 현실 속의 나는 많이 지쳐 있었다.
마치 하얀 종이 위에 그린 얇은 선 하나,
졸라맨처럼 빈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표정에도 온기보다 두려움이 더 많았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후배는 자신의 경험을 말할 때마다 빛났다.
그 빛이 참 예뻤고,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듣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는 문득 말했다.
“언니, 왜 자꾸 못한다고 해요?
그냥… 꿈꾸면 되잖아요.”
그 말이, 답답한 듯한 그 태도가 비난처럼 들렸다.
가늘게 살아 있던 불씨 위에
뜨거운 물이 부어지는 느낌.
불씨가 사그라드는 소리가 들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많이 울었다.
그날 이후, 작은 불씨가 꺼진 채로 오래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 후배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그 장면이 내 마음에 이렇게 남아 있을 뿐이다.
누군가의 뜨거움은, 누군가의 작은 불씨를 꺼뜨릴 수 있다.
오늘 작업실을 정리하다 떠오른 그 기억을
조용히 꺼내 놓으며 생각했다.
내가 무심코 누군가의 불씨를 꺼버린 순간들도
분명 있었을 거라고.
미안하다고 꼭 말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그 순간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조용히 속죄하듯 하루를 연다.
이제 나는 바란다.
내 뜨거움이 누군가의 작은 불씨를 삼키지 않기를.
내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삶을 꺼뜨리지 않기를.
우리는 꿈을 꾸어야 살아갈 수 있으니까.
흔들리더라도, 기울어지더라도.
결국 다시 균형을 찾아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