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름다움에 끊임없이 노출시키고 싶은 이유
나는 삶의 의미가 사라질 때면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아침마다 기도로 숨을 고르고,
책을 읽고,
내 말과 행동에 작은 의미라도 붙잡아 두려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삶이 금방이라도 허물어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연극 작업을 계속하려는 이유도
사실은 그 두려움에서 멀어지고 싶어서였다.
첫 아이가 세 살이던 어느 날,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어디에도 닿을 수 없던 시간이 있었다.
기대고 싶으면서도 기대지지 못하고,
혼자서 버티는 데 익숙해지며
아이에게도 날카로운 말만 내던지던 시기였다.
그러다 결국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순간적으로 아이의 엉덩이에 손을 대고 말았다.
그 장면은 나를 오래 붙잡아 두었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가슴 깊은 곳이 무너져 내렸다.
손바닥에는
금세 식지 않는 잔열 같은 감각이 남아 있었고,
그 열이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닿았을까 두려웠다.
“나… 진짜.. 왜 그랬을까.”
그 말만 마음속에서 계속 울렸다.
그때의 나는,
내 감정이 나를 삼키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끝없이 부풀어 오르던 시기였다.
아이도 울고, 나도 울었다.
마치 말라버린 장작처럼 갈라져 있던 내 마음을
어쩌지도 못한 채.
그래도 살아야 했으니까.
나는 마당으로 나와 땅만 바라보며
겨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반려견 하루가 다가와도
그 따뜻함이 금세 스쳐 지나갔고,
아이의 조잘거림도 말로 들리지 않았다.
그저 흘러가는 소리로만 남았다.
그때, 아이가 더 가까이 와 말했다.
“엄마… 무지에. 바봐. 무지에.”
고개를 들자
하늘에 큰 무지개가 떠 있었다.
성경에서 무지개는 약속이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비가 멈추고
새로운 땅이 드러나는 순간에 나타나는 표식.
“다시는 너에게 이런 시간을 내리지 않겠다.”
라는 표식.
삶의 의미를 다시 찾는 일은
벌을 피하고 보상을 얻는 일이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다.
그 후로 나는
내 삶을 조용히 채우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내 감각을 아름다움에 쓰는 일을
다시 붙잡고 싶어졌다.
그 과정에서 만난 플레이백 시어터는
잊고 있던 나를 다시 건드려준 시간이었다.
정답도 목표도 없는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의 내가 가진 결을 바라볼 수 있었고,
그게 내 삶을 다시 채우는 방법이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 난 참 나를 잘 돌보지 못했구나..'
그래서 나는 지금,
기울어지기도 하고
다시 중심을 찾아오기도 하면서
내 감각을 이야기와 예술에 내어놓는 사람으로
조금씩 살아가길 희망한다.
그게 내 삶을 다시 의미로 채우는
나만의 방식이라는 것도
알아가고 있는것 같다.
그때의 무지개 처럼
우리 아이들의 이름에는 빛, 그리고 물이라는 뜻을 담겨있다.
이젠 두 아이의 이름에도
의미를 가득가득 넣어 이야기 해준다.
' 너희들은 엄마에게 무지개야.
빛과 물이 만나면 무지개가 되자나.
그리고 엄마는 하늘, 아빠는 해. '
'하늘은 그 누구도 만질 수 없어.
그래서 참 좋아. '
오늘도 어떤 의미를 담아 살아가며
내가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을 만나질 않길
정성드려 살아가본다.
이 이야기가 나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 닿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