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보지 못하는,
지극히 나만의 용기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

by 시소

용기를 내야 하는 순간은 정말 언제일까?


나는 오래도록

용기는 '바깥의 일들'에서만 필요한 줄 알고 살았다.


크고 거창한 순간들 -

꿈 앞에 서거나,

무언가를 이루기 직전이거나.

세상 앞에서 떳떳해야 하는 순간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정작 내가 내야 할 용기는

아주 엉뚱한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아무도 보지 못하는

지극히 작고 주관적인 용기였다.


내가 나를 꾸미는 일,

나를 드러내는 일을 오랫동안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여겨왔다.


'이 억눌림은 어디서 온 걸까?'

물을 깊이 내려다보듯 마음을 들여다보니
아주 아래, 빙하의 끝자락 어딘가에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여자가 되면 안 되는 시간들을 통과해야 했다.


딸을 낳은 엄마에게도 상처였고,

딸만 있는 그 집에 태어난 나에게도 상처였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엄마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오래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나를 사랑하기 위한 아주 작은 시도를 할 때도
윤리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처럼
수치심과 두려움이 밀려오는 걸 느꼈다.

엄마를 묶던 문화와 마음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아버지가 그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태어나고 한 오거리에서

엄마를 오래 설득하고 이해시키던 날 이야기.
그 말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애잔함이 나를 어떻게 감싸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아, 나는 존재적으로 이해받고 있었구나’

라는 감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프로이트가 말한 빙하의 끝에서
이제 수면 위로 조금씩 올라와 보자면,


세상이 말하는 큰 용기가 아니라

오직 나에게 필요한 건

나만 이해할 수 있는 용기
진짜 나를 바꾸는 힘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처음 낸 용기는

2cm짜리 작은 링 귀걸이를
거울 앞에서 스스로 선물한 일이었다.


택배가 도착했을 때부터
아무도 모르게 봉투를 들고 들어오는 일조차
용기를 내는 일이었다.


포장을 뜯어 귀걸이를 손끝에 올려놓고
거울 앞에서 귀에 ‘딸깍’ 하고 걸고
손을 떼는 순간—

그 아주 가벼운 금속이
이상하게 크게 느껴졌다.


다른 귀로 손을 옮기는 짧은 동안에도
기대와 두려움이 몽글몽글 밀려왔다.


두 쪽을 다 끼우고 나서야
나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생각했다.


“이제 나가면.
제발… 아무도 귀걸이 얘기 안 하면 좋겠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공기가 유난히 가벼웠다.

넘지 말아야 할 어떤 선을
살짝 넘어버린 사람처럼
콧노래가 나왔다.


밖에서 보면 아무 일도 아닌데,
내 마음 깊은 자리에서는
이게 아주 큰 용기였다.


세상이 말하는 커다란 용기가 아니라,
나는 처음으로
‘나를 향해 내는 용기’를 배우고 있었다.


오랫동안 눌려 있던 감각을
살짝 세상에 내어놓는 일.

그 작은 움직임이
내 삶에 새 결을 만들어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밝은 니트를 사 입고,
숱이 많다고만 들었던 숏 커트도 하고,
아이 공개수업 날엔
입술에 색을 살짝 올리고 나가본다.


지극히 작고 조용한 일들인데
마음이 조금씩 환해졌다.


상상해 보고, 그 반대로도 한 번 해보는
그 작은 꼴통의 모습이

지금의 나를 살게 한다.


나를 조금 더 자유로운 ‘나’로 데려다 놓는다.


오늘은 어떤 용기를 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