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준비된 세상에 숟가락 얹기
1987년, 내가 태어나던 해에는
아기의 성별을 미리 알 수 있는
검사가 금지되어 있었다.
그 시절 스무 살 후반이던 엄마는
장남에게 ‘장남의 자격’을 안겨줘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박 속에서 살아가던
집안의 큰 며느리였다.
첫째도 딸, 둘째도 딸.
마을 어른들의 말과 집안의 기대가
엄마의 어깨에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쌓여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는
기도하고, 빌고, 또 빌었다고 했다.
이번엔 꼭 아들이길,
이 집안의 오랜 기대를 잠재울 수 있는 아이이길.
하지만 결국 태어난 건
셋째 딸인 나였다.
왜 그런 압박감이 심했는지
엄마는 설명하지 않아 자세히는 모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눌린 울음과 서러운 이야기들을 들으며 자랐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공기처럼 느껴지는 감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내 온몸 구석구석에
‘존재만으로 미안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진하게 저장되었다.
그래서일까.
자라면서 ‘역할’이 먼저인 자리에 놓이거나,
대신해야 하는 자리들에 서게 되면—
나는 늘 숨이 막혔다.
나라는 사람보다
‘자리’가 먼저 오는 순간들 앞에서
언제나 조금 작아지고, 조금 미안해졌다.
얼마 전, 아버지와 식사하던 저녁이었다.
조용히 술 한 모금을 넘기시던 아버지가
내가 태어나던 날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날, 한 오거리에서
엄마를 오랫동안 설득하고 또 설득하셨다고.
셋째 딸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엄마가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빌미로
아버지는 평생 마음속에만 담아두었던 말을
조심스레 꺼내 놓으셨다.
두 언니들과도, 막내 남동생과도
어디에도 자연스레 섞이지 못한 아이.
조금 떨어져 혼자 애쓰는 모습으로
으로 보여 걱정이 된다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한 번도 이해받지 못했다”라고
믿어왔던 마음이 천천히 풀려나갔다.
아버지는 오래전부터
조용히 나를 이해하고 있었구나.
그 감각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에서야
아빠 앞에서 눈물이 그대로 떨어졌다.
평생 들고 있던 나의 무게가
엄마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내 이야기이기도 했다는 걸.
비로소 알았다.
아버지는 말했다.
“나만 생각하면 어때.
삶이란 게 결국 내 삶인데.”
그 한마디가
조심스레 나를 위한 선택만 해도 된다는
허락처럼 들렸다.
그래서 이제는
‘막내딸’이라는 자리에서
처음부터 다시 살아보려 싶어졌다.
아무 역할도 덧붙이지 않은,
누구의 기대도 대신 짊어지지 않는 자리에서.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고,
먹고 싶으면 먹고 싶다 말하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 말하고,
정말 원하면 훌쩍 떠나보는 삶.
세상이 차려놓은 식탁 위에
그냥 숟가락 하나 조용히 얹어보는 마음으로.
이제는 정말,
막냉이처럼 살아볼 때가 온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조금 가벼워지고, 조금 신나지는
막냉이 되기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처럼 존재적 의무를 가지고 있거나
존재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면
나와 함께 세상의 막내가 되어
함께 달려가 마음껏 모두가 주는
사랑을 껴안자 말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