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떠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애도하는 시간이 나에게 주는 아름다움

by 시소

나는 요즘 떠남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부터가 시작이라고 조용히 마음을 정해보니,
방 안의 물건 하나하나가 나를 지나가고,
대화와 장면들까지 천천히 떠오른다.

마주 보고, 느끼고, 붙잡을 것만 남겨두며
다음 걸음을 준비해 보려 하보니

'떠남'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기억 속 첫 번째 떠남은 작은 할머니였다.
추석 음식을 준비하는 ‘떡 하는 날’에 태어난 나를
제일 마음 써주던 사람이다.

제주의 투박한 송편처럼 동그랗지 않은

반달 모양의 송편을 속이 터질 만큼

꽉 채워 내 손에 쥐여주던 사람.

"너는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몸짓으로

나의 생일을 대신 축하해 주던 사람.
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

어린 나는 그 떠남을 이해하지 못했다.

입관을 기다리던 관 위의 하얀 종이꽃,
사진 앞에 꽃을 내려놓으며 울던 고모의 손,
그 장면을 다 보았으면서도
말이 목 아래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그날의 상실을 어떻게 놓아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에
나는 그 감정을 몸 넘기지 못하고 시간을 버텼다.


친구 함께 웃고, 잡지 이야기를 모으고,

드라마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

농담과 표정까지 잡아두고 싶던 그 시절


또 다른 떠남이 찾아왔다.

미처 삼키지 못했던 오래 전의 감정이

그 작은 헤어짐에서 터져 나와버렸다.


그때 처음 목에 걸린 덩어리를 느꼈다.

삼켜지지도, 뱉어지지도 않는 감정.

울음은 5살 아이의 울음처럼 '꺼이꺼이' 이어졌다.


떠남은 그때의 나에게 공포였고, 버려짐이었고,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 돌아보면, 그 시간은

내가 애도를 배우기 시작한 첫 장면이었다.


세상은 떠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도, 기억도, 사랑도, 장소도, 계절도.

그래서 나는 이제 떠남을 피하지 않고

나의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떠남을 마주하면

내가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

진짜 나의 사랑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과정을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를

다시 확인하는 여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잃어버린 시간이 아니라,

다시 품는 법을 배우는 시간.


조금 천천히, 충분히 슬퍼하고

내 속도로 마음을 다독이며 보내줄 것.

그렇게 떠남은 부정이 아니라

애도와 수용의 언어가 되었다.


요즘, 나는 제주를 떠날 준비를 한다.

천천히, 조용히, 충분히 애도하며.
내가 살아낸 시간을 마지막까지 쓰다듬어주고,

다음 계절을 위한 작은 틈을 만들어주려 한다.

나는 이제 슬픔을 밀어내지 않고,

목 넘김처럼 천천히 삼키며 흘려보낸다.

떠남을 잘할수록 삶은 더 깊어지고,

남은 것들은 더 선명하게 살아난다.


나는 지금, 떠남을 배우는 사람이다.
애도는 내게 새로 생긴 감각이고,

이 시간을 온전히 지나가는 법을 익히는 중이다.


어떤 상실이 불쑥 떠오른다면,

이제 그 마음을 억지로 넘기지 않았으면 한다.

천천히 씹어보고 내 속도대로 목 넘김을 하듯

흘려보낸다면 언젠가는 그 기억도

내 아름다움의 일부가 될 테니까.


애도는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이 삶을 소화하는

고유란 리듬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밥을 먹는 속도가 다르듯.

애도의 속도도, 방식도 서로 다르다는 것을

조금 더 조용히 인정하고 싶다.


서로의 리듬을 존중할 수 있는 마음,

그 마음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고

회복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래서 이번 떠남도

천천히 나의 속도로 정리해보려 한다.

애도는 끝이 아니라 나의 아름다움과 사랑의 모양을 볼 수 있는 기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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