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못 하는 자의 책 읽음

나를 나로서 인정하는 방법

by 시소

나는 상상하고,

하나의 일을 오래 곱씹어야만

조심스럽게 생각이 열린다.


나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순간과 일 앞에선

확신도, 생각도, 느낌도 쉽게 생기지 않아

종종 많이 무기력해진다.


그러다 보니

몸을 움직이는 일은

오히려 나에게 더 ‘쉬운’ 일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거절당했던 두려운 마음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대학 시절,

모든 대학 관계에서

제외를 당했던 경험이 있다.


그 누구도

왜 그런지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시선과 관심을 주지도 않았다.


그래서 난

나의 말과 태도로 평가되어

거절되었다고 추측할 뿐이다.


그러니 말하는 것에

두려움은 더 커졌다.


말은 그 사람의 생각을

드러내는 일이기에,

생각이 충분히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입을 열었다가


말 실수하게 될까 봐,

미움을 받을까 봐

나는 조심스럽다.


그래서 연기를 할 때도

다른 이들은 잠깐 보고 파악하는 상황을

나는 바보 같고 느려 보여도

이해할 때까지

텍스트 곁을 떠나지 못한다.

내 시간을 거치지 않으면

어떤 말도 할 수 없을 것 같고,

그 순간

무기력함의 버튼이 눌러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나에게 무기력함은

마치 나의 존재와 무존재를 가르는

하나의 버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 버튼이 눌리고 싶지 않아

말 못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데 즉흥작업을 만나게 되었다.


텔러의 이야기를 듣고

즉흥으로 보여드리는 연극.


그 이야기 안에는

감정, 관계와 시간, 생각,

당시 느꼈던 감각까지 다 담겨 있다.


우리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하나 꺼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온 감각으로 설명하게 되고

텔러도 그 당시의 자신의 감각으로

이야기를 느끼게 된다.


나는

플레이백 시어터(Playback Theater)를 통해
누군가의 이야기를 말로 이해하기보다

온몸으로 듣는 것의 행복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텔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사람의 마음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인 나의 것처럼

혹은 사랑하는 이의 것처럼

이야기 안에서 행복함을 누릴 수 있었다.


연극을 통해
아름다움에 닿을 수 있는 순간이
나에게도 허락된다는 사실과

나의 감각을
다른 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일이
감사하고 감사했다.


나는 이 시간을

이렇게 사랑하면서도
세상을 살아내는 데 필요한
나의 언어는

늘 느리고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다른 이들처럼
이성만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그저 온몸과 이성을 함께 써가며 대화를

이어간다는 건 나에게 벅찼다.


그래서 나는

책으로 ‘도망’ 간다.


자기 계발서든, 소설이든, 시든, 산문이든
모든 책은

저자의 감각과 언어로 쓰여 있기에

그 책 속에 머무는 동안

나는 그저 행복하다.


‘도망’이라는 말은
어쩌면 비겁하고,
정정당당하지 않은

선택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시간을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세상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나 자신에게

잠시 쉬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일이다.


이미 충분히
살아내고 있으니

잠시

차가워지고 말라버린 마음에
조심스럽게 따뜻함을 부어보라고

챙겨주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이것을

도망이라 부르기보다
나만의 세계에 머무는 일이라
부르고 싶다.


나를 다그치며 바꾸기보다,

나를 살게 하는 세계 속에
조금 더 오래 머무르고 싶다.


그것이 잘 되지 않는 날에도

나는 다시

책으로 돌아가본다.


오늘도

나로서 세상을 만나는

그 책 속으로.


세상에선 조금 비겁해지고

나를 사랑해 주는 선택을 해보자,

말하고 싶다.


나에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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