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梦到北京] 난뤄구샹南锣鼓巷부터 스차하이什刹海까지
As I began to love myself I found that anguish and emotional suffering are only warning signs that I was living against my own truth. Today, I know, this is AUTHENTICITY.
진정으로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모든 고통과 감정의 괴로움은 내 삶이 진정한 내 자신과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날, 나는 이것을 "진실" 이라고 부른다.
어딘가 다녀오다 수려한 고목이 가득한 길로 들어 섰는데 순간 숨이 막혔다. 푸른 잎이 가득한 오래된 가로수가 하늘을 감싸고 회색의 낮은 전통가옥들이 보였다. 양쪽 길가에는 올드 베이징의 상점들이 늘어서있고, 관광객과 현지인들이 거리에 넘쳐났다. 방금전까지 높고 현대적인 건물이 가득한 산리툰이었는데 갑자기 명청시대의 드라마셋트장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순간 "여기야, 내가 찾던곳" 이란 생각이 들어 말도 잘 못하는 중국어로 지도를 캡쳐해가며 찾아갔던 곳이 바로 구로동따지에鼓楼东大街..그러니까 난뤄구샹과 베이뤄구샹을 사이에둔 큰길이었다. 베이징에서 지칠때 우울할때 행복할때 기쁠때 심심할때 항상 날 반기고 안아준 곳, 아무것도 몰랐고 삶이 무너졌을때 나에게 베이징이란 곳을 받아들이게 만든 곳, 바로 후통이었다.
베이징의 가장 중심부라는 자금성을 중심으로 2환 인근의 모든 오래된 뒷골목을 뜻하는 후통은 과거와 현재를 잇고있는 올드타운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후통은 골목길을 말하는데 좁고 긴 골목을 따라 00후통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난뤄구샹과 베이뤄구샹에도 많은 후통이 존재하는데 위얼후퉁(雨儿胡同)에는 현대 화가 치바이스(齐白石)의 옛집, 허우위안언쓰후퉁(后圆恩寺胡同)에는 현대 작가 마오둔(毛盾)의 등 고관대작의 옛집인 큰 저택인 사합원이 곳곳에 아직도 많이 남아있고 일반 서민들이 살던 가옥들이 옛 그모양을 지키며 계속 보존되고 현재도 그 안에 사람도 살고 있다. 숨겨진 후통을 걷다보면 결국 10개의 사찰이 있는 호수라는 스차하이와 맞닿게 된다. 이 호수 주변에는 물에 비치는 화려한 네온싸인을 뽐내며 늦은 밤까지 열리는 음악카페가 있고, 청춘들이 오가는 술집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외국인도, 이방인도, 타지사람도 모두 다 베이징런이었다. 우리는 스차하이의 밤에 파뭍혀 낭만서사를 즐기면서 서서히 베이징에 취해갔다.
난뤄구샹南锣鼓巷뿐 아니라 베이뤄구샹北锣鼓巷, 구로동따지에鼓楼东大街 전역이 나에겐 애정 후통이다. 어쩌면 스차하이까지什刹海도 한데 묶어 얘기할 수도 있겠다. 여기에 좀 더 보태서 꾸이지에(鬼街)까지도 포함이 된다. 나에게 있어서 후통은 뗄려야 뗄 수 없을만큼 소중한 기억이 가득하고, 베이징에서 찾아 해메였던 완벽한 올드 베이징이었다. 후통에 들어서서 칙칙하다고 느꼈던 그레이 톤이 초록의 잎사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이쁜 톤인걸 알게되었고, 사이사이 걸려있는 빨간 중국 국기나, 명절의 빨간 조명이 얼마나 유니크하게 변주되어 후통이라는 이미지에 잘 어울리는 알게 되었다. 나의 후통의 봄은 찬란한 꽃들의 아름다움을, 여름엔 푸른 잎사귀가 태양을 가려주는 시원함을, 가을에는 노란 단풍이 주는 고즈넉함을, 겨울엔 앙상한 가지사이의 차가운 바람을 전해주었다. 색의 변화가 가득한 후통에서 보낸 6년은 매일이 즐거웠고 매일 신났다.
후통을 갈때면 비밀의 지도라도 얻은 것처럼 긴 골목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좁고 길다란 골목길 끝에 숨겨진 호텔을 찾아가기도 했고, 기웃거리다가 후통에서 유명한 레스토랑에 얼결에 들어가기도 했다. 여기가 맞나 싶을 장소에 올라가보니 후통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루프탑에서 브런치를 먹기도 했고, 낮에는 상점을 구경하고 밤에는 후통 의 그레이색 벽에 빔프로젝터를 쏘는 술집에 앉아 영화를 보며 맥주를 한잔 마시기도했다. 오픈되지 않은 시간 박물관에 일부러 보안에게 물어보면서 전시회 일정을 잡아 들어가봤고,길거리에서 파는 고약한 냄새가 나는 취두부도 먹어봤다.날이 좋은 날엔 구로鼓楼에 올라가 멀리 징샨공원과 궈마오를 찾아보기도했고, 시간에 맞춰 드럼타워鼓楼의 퍼포먼스를 즐기기도 했다. 밤이 되면 외국인이 가득한 수제맥주 펍의 중정에서 맥주를 마시며 풀문을 즐겼다. 오래된 가옥 사이에 숨겨진 펍과 카페들은 늦은 밤이 될수록 더욱 진한 감성을 풍겼다.
후통의 시간은 자유가 가득했다. 흐드러지는 월하향에 취한것처럼 영혼을 남기고 싶은 곳이었달까. 후통은 화려한 향을 내뿜는 튜베로즈(월하향)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후통에 미친듯이 빨려들어갔고, 후통은 마치 내 영혼을 저당잡은 것 같았다. 후통에서의 하루는 마치 한장면의 영화같았고, 달콤한 소설책같았다. 오늘은 어떤 후통을 가볼까하며 SNS 속에서 여행 할 후통을 찾으며, 그곳의 모든 것을 궁금해 했다. 뭐가 그렇게 좋았냐고 물으면 대답은 하나였다. "다른 세계에 대한 몽환적인 판타지". 우리는 600년된 가옥에서 커피를 마셨고, 고대의 낡은 옛 가옥속에서 살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과 로컬과 관광객이 어울려지는 이질적인 조화가 매력적이었다. 베이징 = 후통이라는 생각은 나뿐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서울=북촌이 영혼의 고향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처럼 후통 역시 베이징이 가진 영혼의 고향이었다.
#취두부
취두부는 많이들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데 이 또한 굉장히 중국스러운 음식이었다. 취두부 향이 고약한 것은 삭힌 두부를 기름에 넣을때 나는 냄새가 고약한 것이지 튀겨내어 소스에 발린 취두부는 정말 맛있었다. 내가 모르는 중국의 모습과 알게된 중국의 모습이 다른것처럼 그 모습이 취두부와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다. 정말 취두부는 먹어본 사람과 안먹어본 사람의 차이가 확연하다. 냄새는 그저 냄새일뿐이다.
#GLB후통
지원씨가 데리고 간 GLB후통은 정말 이국적인 모습이었다. 정말 로컬이 살것만 같은 옛 가옥이 즐비한 골목에 생뚱맞게 가옥을 개조한 수제맥주집이 있었다. 바로 옆집은 일반인이 사는 곳이었고, 이 수제 맥주집이 있는 가옥의 작은 마당에는 아주 오래된 큰 나무가 있었다. 그 주변엔 테이블과 의자가 빽빽히 놓여있고, 우리는 달밤의 빛을 받으며 맥주는 마셨다. 그 느낌은 마치 우리가 모르는 시대로 들어간 기분이 들었다. 이 술집은 로컬에게도 인기가 많았지만 외국인들에게 정말 유명했으며 공산주의라고 억압된 풍경만 상상하던 나에게 GLB의 풍경은 낭만적이고 자유로웠다. 공산당은 있으나 공산주의는 없다고 누군가 말해주었던게 생각났다.
#VOYAGE COFFEE 난뤄구샹점
가을철 은행나무의 노랑잎이 쏱아지는 카페를 발견했다. 난뤄구샹 끝머리에 있는 보야지VOYAGE COFFEE다. 옛 사합원 건물을 개조해 하천 옆에 테라스 자리도 만들어 지나가는 이들에게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했다. 유럽의 어느 노천카페같은 느낌을 중국스럽게 변화시켰다. 회색의 사합원 건물과 노란 은행나무는 묘하게 잘 어울렸고, 깔끔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의 카페는 베이징의 현대적인 모습과 너무 닮아있었다. 옛 건물과 요즘 베이징 모드가 만나 세련되고 힙한 까페가 되었다.
#도자기 물레체험
구로동따지에의 큰길을 걷다보면 난뤄구샹쪽에 정말 많은 도자기 제작샵이 있다. 가격도 1인당 만원정도의 가격으로 저렴하게 체험할 수 있다. 도자기 물레체험을 해보고 싶어 놀부 친구들과 만들러 갔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셋다 말도 못하면서 샵직원의 손짓발짓에 대충 알아들으며 마음대로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여행지에서의 어떤 체험은 그 곳에 대한 기억을 좀더 선명하고 친근감있게 만들어 준다. 할수 있는건 많지 않았고, 나의 물레솜씨는 엉망이었지만 도자기로 유명한 중국에서 물레체험을 해봤다는 만족감이 컸다.
#후통에서 만드는 전통간식
후통에서 전통병과를 만들 수 있다니.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난 너무 흥분이 되었다. 놀부친구들과 단체로 예약해서 갔는데 선생님은 단체로 온 한국인에 당황했지만 말도 안되는 중국어도, 선생님의 바디랭귀지도 월병을 만들기엔 충분했다. 특히 이 클래스가 좋았던 건 내가 간 첫 후통 집이었다는 것이다. 후통 집에 초대받을 일이 없기 때문에 후통 안쪽이 너무 궁금했는데 원데이클래스로 전통간식까지 배울수 있다니 너무 신나는 일이었다. 마침 전통병과에 관심이 생길때여서 너무 즐겁게 배웠고, 이후 선생님이 알려준 것에 내가 찾아낸 최상의 궁합으로 나만의 월병레서피를 만들게 되었다. 그 이후 이런 기억이 좋게 남아 여행지에서 요리를 배우는 것을 적극 추천하고 있다. 뭐랄까 그 나라의 요리를 한다는 건 단순히 여행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차하이 재즈바 동안 东岸 East Shore
유명하다는 스차하이 재즈바를 여러번 찾은 끝에 겨우 가게 된 재즈바. 알고보니 우리가 맨날 다니는 다리 바로 옆에 있었는데 우리는 지도에 나온 주소대로 찾아가느라 계속 스차하이를 돌고 돌았다. 그래서 더욱 스차하이를 잘 알수 밖에 없게된 구조랄까. 동안 재즈바를 찾긴 찾았는데 1층에 어떤 아저씨가 여기가 동안이라며 들어오라고 했다. 간판도 동안이고 여긴가? 싶어서 열심히 호응해드리니 아저씨가 한국이 최고라며 치켜세워주셔서 나가기도 애매해서 계속 듣고 있었는데 열심히 음악을 듣는데 아 이게 아닌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님도 우리밖에 없었다. 알고보니 동안 재즈바는 건물의 2층이었고 우리는 호갱이었던...결국 2층 재즈바에 올라갔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콘트라 베이스를 연주하는 분이 계속 박자를 못맞추고 악보를 열심히 보셨다. 아? 재즌데 악보가 있다구?
우리는 이게 베이징이지하며 웃고 그시간을 즐겼다. 어설프고 어색하지만 그것마저 상관없는 곳 바로 베이징이다.
#후따湖大마라룽샤
난뤄구샹 옆 꾸이지에에 가면 마라룽샤 거리가 있다고 했다. 나와 에스더는 금요일밤 후따를 향했다. 지나가는데 후따라는 간판이 여러개있다. 왜 같은 음식점이 여러개지 하며 우리가 찾던 후따에 도착했을땐 앞에 600명이 기다린다는 1200번대 표를 받을 수 있었다. 저녁 7시에 앞에 600명이 기다린다구요? 다들 집에 안가나요.. 그때 알았다. 베이징사람들은 후따에 진심이고 마라룽샤에 진심이라는걸. 알고보니 후따는 장사가 너무 잘되서 근처에 분점이 5호점까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기다리지못하고 근처 아무가게나 들어가서 마라룽샤를 먹었고 화지아오花椒의 강한 마麻맛을 이겨내지 못한 에스더는 항복을 했다. 이후 난 후따에 못간게 한?이 되어서 도대체 언제 가면 후따의 마라룽샤를 먹을 수 있는지 찾아보았다. 평일 오전 10시30분, 오픈하자마자 후따에서 아침부터 마라룽샤에 계란찜을 먹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베이징도, 후통도 속속들이 다 알순 없었지만 나에겐 영혼이 쉬어가는 장소였다. 아마 정신없이 빨려들어 갔던건 나를 채우는 느낌을 처음으로 배웠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쩌면 난 나를 찾는 시간이 필요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성취감의 결여는 자존감의 하락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나는 나를 응원하지도 않았고, 믿지도 않는 방만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의존적이며 남의 말에 의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삶을 살게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필요한게 뭔지도 모른채, 타인이 말하는 것에 맞장구치는 인형극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하는지 잊어버린채 살고 있었다.
후통에선 여행에서 얻어진 것과 다른 느낌의 성취를 경험했다. 바닥까지 내려가봤고, 배우려고 노력했으며,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 성취감이었다. 해봤다 라는 경험,작은 성취, 아쉬움이 남지 않을 정도의 노력. 이런 것들은 결국 두발의 뿌리를 내리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후에 이 마음가짐은 하나아루츠키를 떠나보내고 갇혀버린 동굴안에서 무기력하게 웅크린 자의식을 일어서게 만드는 바탕이 되었다. 내 안에 남아있는 후통의 향은 짙고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