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청춘 선거'를보고
지난주, 영화 ‘청춘 선거’ 시사회에 다녀왔다. 영화 ‘청춘 선거’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 제주 최초 여성 도지사에 출마한 고은영 후보의 선거운동 이야기를 담았다. 지난 2019년, 영화 ‘세상을 바꾸는 여성들(원제: Knoch Down the house)’을 보고 한국에서도 여성 정치인을 다룬 다큐가 나오길 간절히 바라왔기에 반가움이 컸다.
지난 2019년, 20대 정치참여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며 연구에 참여한 여성들에게 “정치할 생각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를 해볼 생각이 있는지에 대해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 질문이 낯설며, 내가 정치인을 해도 될지 잘 모르겠다고 말이다. 그 이유로는 초등학교 때, 누군가를 미워하고 괴롭힌 일화부터 정치, 정책을 잘 몰라서 등 다양했다. 즉 본인이 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지금 정치인들은 그런 자격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느냐고. 그러자 그들은 답했다. “생각해보니 그렇진 않네요.”
스스로에게 ‘부적격’을 내리는 여성들의 답변이 사실 낯설진 않았다. 여성정치운동단체의 활동가였던 나조차 “나는 정치인 할 만한 사람이 아니야.”라며 일종의 선긋기를 했던 시간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정당 활동을 하는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하기 딱 좋은 나이”라며 본인을 소개하는 고은영은 너무나도 멋진 사람이었다. 이른바 선 긋던 내가 총선 비례후보로 나가고 대변인 등 직업 정치인의 삶을 선택할 수 있었던 건 고은영이라는 참고할 만한, 기댈 언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은영은 영화 ‘청춘 선거’ 시사회를 초대하는 메시지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저는 정치가 아닌 다른 길을 걷지만
이 경험은 저만의, 제주녹색당만의 것이 아닙니다.
이 공적 기록이 사회적으로 조금이라도 유용하게 쓰이길 바랍니다.
정치가 아닌 다른 길을 걷겠다는 그의 말이 슬프지만 한편 그 말을 하기까지 고민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 같아 마음이 아프고 미안했다. 그러나 멈춰 서기를 선택하고, 다른 길로 가겠다고 말해주고, 자신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길 바란다는 그의 말에 난 다시 기댈 언덕을 찾은 기분이었다.
고백하자면 당 대변인으로 지내는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빗길에 우산 없이 혼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오롯하게 서 있고 싶었지만 휘청거리며 버텨야만 했던 시간들이었다. 대변인 임기를 마치고 공식 ‘백수’가 되었을 때, 많은 분들이 물어봐주셨다. “이제 무슨 일할 거야?” 머쓱해하며 그 질문들을 피해 다니기 바빴다. ‘직업 정치인으로 내가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나조차 답을 못했기 때문이었다.
돌아보니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다른 질문들을 나에게 던져야 하지 않을까. 여성청년정치인으로 경험했던 불안과 힘듦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다른 누군가에게 어떻게 기댈 언덕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등 말이다.
* 위 글은 여성신문 [2030 정치 선 넘기](2021.06.10)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