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 그리고 땅콩이!
예전에 한 친구가 고양이를 입양해서 함께 사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했는데 나는 그게 참 어렵다고 말했다. 내가 고양이를 데려와서 사는 게 정말 그 고양이에게 좋은 일일까, 나는 고양이를 행복하게 해줄까 라는 의문이 자꾸만 들었다. 자신이 없기도 했고, 이후에 헤어짐을 예정하고 사는 기분 때문이었다. 그런 대화를 한 게 7-8년 전이고 지금 나는 두 마리의 고양이와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참깨 덕분에 자신감이 생겼고, 헤어짐이 두려운 건 여전하지만 그래도 만남이 주는 행복함에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1년 넘게 먼저 살았던 우리 참깨는 순딩이었다. 물론 고양이에 대해 잘 모르는 내게 참깨는 고양이의 전부였지만 참깨는 자신만의 속도로 내게 다가와주었고, 내가 바라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냈다. 함께 살면서 참깨의 하악질을 본 건 내가 보통 퇴근 시간보다 늦게 귀가한 날이었는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물론 참깨는 내게 꾹꾹이를 해준 적도 없었다. 마냥 기다린 건 아니었지만 꾹꾹이를 하지 않아 내심 걱정했던 나는 인터넷을 통해 가족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보낸, 독립심이 강한 고양이는 꾹꾹이를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참깨는 순딩이지만 두려움없이 용기내는 멋진 고양이다. 항상 그랬던 것 같다. 좁은 내 원룸의 캣폴에서 놀던 참깨에게 어떻게 장난감을 업그레이드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캣폴 맨 윗 판을 해먹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참깨는 며칠이 지나도 해먹을 이용하지 않았고, 그래서 내가 괜히 내 욕심을 부린걸까, 자책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문득 참깨가 뒤척이는 소리에 잠을 깼는데 그 해먹에 참깨가 편히 누워있었다. 창밖을 여유롭게 보면서 말이다. 그 때, 또 아차 싶었다. 참깨는 참깨만의 속도로 다가가고 있었고, 시도하고 있었고, 머무르고 싶을 때, 머무르고 있었구나. 우리 참깨는 그렇게 내게 항상 많은 걸 알려주고 본받게 하는 반려가족이다.
우연히 구조하게 되어 땅콩이란 이름도 내가 안겨주었던, 우리집에 온 땅콩이는 3단 케이지에서 격리된 생활을 보내고 있다. 마구 뛰어다니지 못해 불편하면 어쩌지 고민스러웠던 찰나 땅콩이를 함께 구조하고, 병원비에 케이지까지 마련해준 박사선배가 “땅콩이에겐 결코 좁지 않을 것”이란 말을 해준 덕분에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다. 적어도 거리보단 지금의 내가 챙겨주는 물과 사료가, 그리고 좁은 우리집의 따스한 기운이 땅콩이에게 편안함을 주었으면 좋겠다.
땅콩이가 오기 전, 케이지 사이즈를 확인한 후, 사료그릇과 화장실 등을 구입했는데 죄다 꽝이었다. 3단케이지에 맞는 용품이 아닌, 참깨에 비교해볼때, 그래도 땅콩이가 지내기 좋은 용품들, 그래서 결국 3단케이지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들어가더라도 결국 땅콩이가 편히 눕기 어려운 사이즈를 내가 구입한 탓이었다. 일본어로 된 설명서 덕분에 결국 감으로 두 시간 동안 케이지를 조립했던 시간을 지나 땅콩이 물품을 넣으며 한숨이 깊게 나왔다. 이상한 마음이지만 상대가 원하지 않는, 원할 수 없는 내 마음을 나의 이기적인 판단 끝에 구겨넣으려다 실패한 기분이었다. 짜증나기보단 아직 오지 않은 땅콩이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착착 다시 준비했다.
방묘문과 커텐 사이로, 땅콩이와 참깨는 각자의 움직임과 소리를 느끼고 있다. 첫 날에는 계속 경계하며 낮잠도 편히 못 자던 참깨가 이제는 낮잠도 자다가 땅콩이 냄새가 짙게 나는 물건에 하악질을 한다. 합사가 참깨에게 좋은 일인걸까, 더 좋은 집사를 만날 수 있는 땅콩이를 데려온 것도 내 욕심이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다가 한편 나는 참깨의 하악질 한 번에도 왜 이렇게 쉽게 움츠려들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고양이 합사를 두고 여러 영상들을 보고 공부하면서 느낀 건 분명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지닌 ’태도’(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에 따라 정보와 지식이 다르게 정리된다는 거였다. 한 분은 그런 말을 했다. 합사를 철저히 준비하는 것과 별개로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와 사는 건 고양이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될 수도 있지만 또한 고양이에게 일상의 자극을 감당해내는 면역력이 되기도 한다는 거였다. 이 말을 듣고나서야 ‘하악질을 하는 참깨도 참깨이고, 집사인 나도 그런 참깨를 돌볼 수 있어야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보면 예기치 못한 순간들, 가령 집 천장에 물이 새어 급히 동네 모텔에 참깨를 데리고 갔을 때, 화재사이렌이 울려서 참깨가 무서워할 때, 나는 너무 많이 미안했던 기억만 있다. 하지만 내가 참깨를 위해, 참깨에게 잘하는 것과 별개로 우리가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마주할 가능성은 너무나도 많다. 또한 이런 상황은 결론적으로 마이너스만의 상황은 결코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것 역시도 결론이 정해진 문제가 아닐 것이고, 아니었으면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말은 이렇게 해도 ‘성묘 합사’ 키워드로 자꾸 검색하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조집사…)
참깨와 땅콩이 힘힘힘내자구우우우~~ 물론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