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이어폰이 타임머신이 된다.
길을 걷다 우연히 흘러나오는 전주 한 대목에,
순식간에 수년 전
어느 길거리로 소환되는 경험이 있다.
콧등을 스치는 공기의 온도가 바뀌고,
잊고 지냈던 당시의 습도와 소음,
심지어는 그때 느꼈던 막막함이나 설렘 같은
감정의 결까지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나에게 ITZY의 <Wannabe>는 20살의 이른 아침,
버스 창가에서 맡았던 서늘한 공기다.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던 길.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쏟아지는 잠을 쫓으며
이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누가 뭐라 해도 난 나야"라는 가사는 단순한 아이돌의 외침이 아니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며 잔뜩 움츠러들었던
한 청춘이, 알바 유니폼을 입기 전
스스로에게 걸었던
일종의 비장한 주문이었다.
지금도 이 노래의 도입부 비트가 들리면,
나는 여전히 덜컹거리는 버스 뒷자리에 앉아 가방끈을 꼭 쥔 스무 살의 나를 만난다.
그런가 하면, 이승기의 <삭제>는 이름과는 다르게
무엇 하나 삭제하지 못한 첫사랑의 기록이다.
그는 이 노래를 참 좋아했다.
데이트의 마지막 코스로 들렀던 코인 노래방.
마이크를 잡고 진지하게 이 노래를 부르던
그의 옆모습과 좁은 방 안을 채우던
노래방 특유의 냄새가 지금도 선명하다.
역설적이게도 이 노래는, 우리가 헤어지기 전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 사이를 흐르던 노래였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다 되어간다는 걸
우리 둘 다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을 때,
정적이 무서워 습관적으로 틀어놓았던 것도
이 노래였다.
결국 노래는 끝났고, 우리는 제목처럼 서로의 인생에서 삭제되었다.
이별 후 이 노래를 들으며 '우린 이제 삭제되었다'라고
수백 번 다짐했지만,
이 노래는 그 시절의 모든 기억을
내 마음속 가장 선명한 보관함에 저장해 버렸다.
지우고 싶어서 들었던 노래가,
이제는 지우고 싶지 않은 유일한 단서가 된 셈이다.
음악은 기록물이다. 종이 위에 적힌 글자보다,
사진첩에 박제된 이미지보다 훨씬 더 입체적으로
우리 인생의 순간들을 저장한다.
그래서 어떤 노래는 차마 플레이리스트에서
삭제하지 못한다.
그 노래를 삭제하는 순간,
그 시절의 나조차 영영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서.
오늘 당신의 귓가에는 어떤 시절이 흐르고 있나요?
당신에게는, 절대 '삭제'하고 싶지 않은 노래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