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범이 된 아들(다섯 번째 이야기)
조사서를 작성해야 하므로 아이와 함께 오라고 했다.
경찰 지구대가 아닌 경찰서를 가 본 건 면허증 발급받으면서가 다였던 것 같은데...
혹시 아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만나면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나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사실은 부모 중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남편이 따라 들어갔다.
밖에서 조마조마 기다리며 그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1시간을 훌쩍 넘기는 긴 시간 조사를 받고 나온 아이의 표정을 읽기는 어려웠다.
고생했다고 하고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사이 여름휴가가 있었고, 긴 시간 아이랑 함께 있으며 이런저런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지만 아이에게선 2차 성징의 그 어떤 징후도 관찰되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에게 아이의 이 문제를 이야기하기는 어려웠다.
나도 딸을 키우고 있는 입장이기에 더욱 그러했고, 다른 이들이 아이를 잠재적인 성범죄자처럼 느끼고 대할 것만 같아 두려웠다.
어떤 이야기도 숨김없이 하고, 의논도 하는 친언니들에게 조차도 차마 이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나가던 사이 드디어 푸른 아우성의 상담 날짜가 다가왔다.
이번에도 남편과 동행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함께 연가를 내고 우리는 상담 센터로 향했다.
아이가 혹시나 상담을 거부할까봐 아이에게는 이 상담은 경찰서에서 꼭 필요해서 하도록 지시한 상담이라고 이야기해 두었다.
아이는 엄마랑 아빠랑 함께 가는 것이 좋은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엔 이걸 먹자, 저걸 먹자고 하는 등 무거운 내 마음과 다르게 들뜬 모습이었다.
푸른 아우성 건물에 도착해 선생님을 기다렸다.
훤칠한 키의 젊은 남자 선생님이 나타나셨다.
아이를 먼저 방으로 보냈고, 우리와는 간단한 대화만 나눴다.
60분 정도 상담이 진행될 예정이니 어디 가서 차라도 한 잔 하고 쉬다 오라셔서 우린 밖으로 나왔다.
아이가 어떤 성 상담을 받을지, 받고 나서 궁금한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대답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며 기다렸다.
드디어 상담이 끝나고...
우리는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듣게 됐다....
"아.. 제가 이런 경우는 또 첨이라...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오늘 성 상담은 하지 못했습니다.
저도 이렇게 성 상담을 하지 않은 적은 또 처음이네요.
아직 아이가 성 상담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화장실에서 있었던 사건은...
그 여성분이 아이 옆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아이 손이 차가워지면서 온몸에 한기가 쫙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여성분이 귀신이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고, 아이는 그 여성분이 귀신인지 아닌지를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여태까지 그런 이야길 하지 않고, 왜 선생님한테 이야기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선생님과 이야길 해보니 선생님은 자기 말을 믿어줄 것 같아서 그랬다고 합니다.
아이가 귀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건 알고 계셨어요?
(아니요)
아이가 최근에 "악귀"라는 드라마까지 봤다는 건 알고 계세요?
(아니요)
경이로운 소문에 심취해 있는 건 알고 계세요?
(아니요)
아이가 도서관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데 그 컴퓨터로 유튜브를 봤고, 유튜브에서 경이로운 소문과 악귀를 계속 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귀신의 존재에 대해 엄청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프로그램 둘 다 시청연령이 높은데, 아이가 보면서 이런 문제가 생겼으므로, 연령에 맞지 않는 미디어 시청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 설명했고, 보더라도 부모님과 함께 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이가 성적으로는 아직 전혀 관심도 없고 알고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성교육은 다음에 좀 더 크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
갑자기 그간의 일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아이가 경이로운 소문이 어쩌고 저쩌고 했었고, 소문이 옷을 사고 싶다고 했었고, 귀신은 진짜 있는 게 맞냐고 물었었고, 홍콩할매 귀신을 아냐고 물었었다.
키는 컸지만 여전히 혼자 집에 있는 것을 무서워했고,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거나 샤워를 하더라도 문을 꽉 닫고 하는 걸 싫어하고 꼭 5cm 정도는 열어두게 했었다.
유난히 무서움이 많으면서도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엔 신비 아파트, 귀신 선생님, 미스터리 이야기 같은 것이었다.
나는...
드라마나 TV를 잘 보지 않아서 경이로운 소문이라고 했을 때 ‘경의롭다’를 생각하고 그냥 혼자 추측으로, 존경할 만한 인물의 이야기를 소문으로 퍼트리는 내용인가 보다 사극이려나 뭐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이가 귀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냥 그래 그 정도 나이엔 궁금할 수 있지, 충분히 궁금하고 무서워할 수 있어. 하고 생각했고, 귀신은 있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보단 약하다. 하나님 밑에 존재하는 것이니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이야기해 준 게 다였다.
성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변태성욕자가 아니라는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제야 아이의 행동이 이해가 됐다.
그 여자가 궁금했다는 그 말...
정말 궁금했다고 했던 그 말...
아이가 왜 우리에겐 말하지 못했을까...
그간 조사를 받으면서도 경찰에게도...
가까웠던 엄마 아빠에게도 왜 이런 솔직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을까...
그제야 나는 여자가 아닌 엄마였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 당일에 나는 20여 년 전으로 돌아가 그 두 개의 눈동자에게 당했던 여자가 되어 있었다.
나의 벗은 엉덩이를 보고 있었던 그 두 개의 눈동자에게 내 치부를 들켜버려 수치심을 느끼고 있는 그 여자가 되어서 내 아이를 보고 있었다.
그래서 차분히 엄마가 생각하기에 넌 그럴 아이가 아닌데 어떤 이유로 그랬니?라고 묻지 못하고, 화가 가득한 얼굴로 도대체 왜? 뭐 때문에 그런 거야? 도대체 뭘 보려고 했던 거야?라고 아이를 다그치기만 했고, 무서운 얼굴로 아이를 째려보기만 했었다.
오히려 내가 스스로 내 아이를 잠재적 성범죄자로 보고 있었다…
내가 잘못했다...
상담이 끝나고 선생님은 아이가 한 이야기를 우리가 모른척하고 다음에 대화를 통해 알아가길 바라셨다.
아이가 정말 솔직하게 선생님에게 이야길 했는데 그 이야길 부모님이 알고 계신다고 하면 상담이란 게 비밀 보장이 되지 않는구나 생각하고 다음에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이가 학원 다니는 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 같다, 뭔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에너지를 그쪽으로 몰아주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길 덧붙이셨다.
만들기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런 쪽으로라도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조언해 주셨다.
돌아오는 길.
우리가 오해했던 성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가벼워진 마음과 왜 우리에게 이야기하지 못했을까 하는 무거워진 마음이 공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