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탈주를 보고
결말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입니다
북한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을 차용했지만 탈주의 이야기는 현 대한민국 2030 세대층을 저격한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북한과 같은 폐쇄적인 국가에서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도 부합하다
리현상은 구세대다. 신세대들이 그들의 윗세대들을 '꼰대'라 여기는 건 오래된 역사다. 그리고 구세대는 한 때의 신세대였다. 매일같이 남한의 문화를 접하는 임규남보다 리현상은 더 넓은 세계를 경험했다. 러시아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음에도 그는 북한으로 돌아와 군인으로 복무 중이다. 결말부에 임규남은 리현상을 딱하게 바라보듯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라"라고 조언한다. 리현상은 그에 감화된 듯 보이나 바로 임규남에게 주먹질을 한다. 네가 뭘 아냐고 묻는 대사도 이때 나온다. 그렇다. 임규남, 젊은 세대는 리현상, 기성세대의 치기 어린 시절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건 오로지 지금 '꼰대'라는 이름에 갇힌 현재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구세대는 요즘 흔히 말하는 mz세대(사실 이 용어는 되려 구세대와 신세대까지 아우른다)에 거부감이 든다. 그들이 겪어보고 결정 내린 시간을 신세대는 '옛날'이라고 치부하기 때문일까. 그러나 신세대 또한 구세대에 대한 반발심이 크다. 그들이 규범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한계에 지나지 않는 생각들을 주입하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면 배척하는 구세대들에게 좋은 감정이 들지 않기 마련이다.
나는 이제 신세대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구세대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위치에 들어섰다. 어딜 가면 어리다는 소리를 듣지만 또 어딜 가면 어른 대접을 받는다. 과도기에 서있는 나로서 리현상의 변화는 남일 같지가 않다. 리현상은 임규남보다 훨씬 상황이 좋다. 폐쇄적인 북한 사회에서 해외유학을 갈 수 있는 것 자체가 큰 메리트를 지녔는데 그럼에도 리현상에겐 넘을 수 없는 산이란 게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사회에 순응하기로 한다. 한때 피가 끓는 열정을 가졌던 젊은 청년들은 지금 어떠한 형태를 갖고 중년이 되었는가? 청년 임규남의 몸에 총알을 박으면서 그들의 앞길을 붙들어 막는 사람으로 변모한 것은 아닌가. 그러나 임규남은 구세대의 공포와 질투에도 불구하고 선을 넘었다. 청년세대는 희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며 반대로 구세대는 청년세대의 미래를 기원하며 뒤로 돌아간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임규남이 북한에서 느꼈던 공간과 비슷할 지도 모른다.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 그렇기에 임규남은 북한을 벗어나 마음껏 실패하고 싶다고 한다. 탈주는 북한이라는 공간을 사용하지만 그 메시지는 현 2030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와닿는다. 마음껏 실패하라. 그것은 이제 기성세대에 접어든 이종필 감독이 리현상의 입을 빌어 청년에게 전하는 따뜻한 전언이리라. 북한 같은 딱딱한 사회에서 청년들은 자연스레 패배의식, 무기력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이라고 청년들이 끝없는 도전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 현재 청년 실업률이 최고점에 다다라서 어떤 청년들은 아예 취업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것은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의 결과물이며 동시에 기성세대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래서 리현상은 임규남의 탈주를 책임지며 북한으로 돌아간다. 자신이 될 수 없었으며 동시에 할 수 없었던 '실패하는 어린 리현상'을 향한 애틋함과 함께.
영화는 시종일관 임규남을 따라간다. 임규남의 과거와 생각과 행동을 따라가지만 시나리오와 연출적 한계로 주인공'이라엔 아쉬운 캐릭터성이 있다. 반대로 리현상은 임규남의 이야기에서 기꺼이 5분 그량을 빌려와 한정된 대사와 주변 캐릭터를 이용해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 설명한다. 자연스레 리현상에게 몰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영화가 흘러가게 된다. 물론 이런 구조가 영화적으로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구세대의 후회와 인과를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죽음보다 무의미한 삶을 두려워하라고 조언했던 리현상의 젊음이 지금 우리의 젊음과 크게 다를까?
'남한이라고 다를 것 같아?' 그러나 리현상은 단 한 번도 남한을 경험해 본 적 없는 사람이다. 그가 경험한 곳은 러시아이지 대한민국이 아니다. 우리 모두 그곳이 얼마나 다른지 알고 있다.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또한 끝났다고 생각해도 끝이 아니다. 다 죽어가던 임규남이 종지에는 선을 넘어갔던 것처럼. 그러니 임규남의 실패를 따라가며 리현상의 후회를 이해해야 한다. 실패는 허가받지 못했던 사람의 삶과 죽음도 불사했던 사람의 도전을 반추하며 살아가보자.
별점: 3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