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이트 피아노맨

불안한 영혼의 충돌과 폭발

by Amory
251025_음악시절-조각_amory.jpg 아름다운 추억의 지점토 조각상

전역을 하고 서울의 생활은 군대 동기였던 피아노맨과 시작했다. 그 친구는 2살이 많았으며 입대로 4개월 먼저 했지만 군대의 특성상 동기끼리는 존대말을 사용하면 안되었는데, 당시 군 부대는 같은 해에 입대한 병사는 모두 동기로 관리되어 형이고 먼저 입대하였지만 반말하는 관계로 이어졌고 전역 후에도 이어졌다. 피아노맨은 강압적인 체계나 군대 선임 후임 같은 위계질서를 굉장히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그래서인지 동기들이 나이가 많아 형이라 부르면 편하게 말하라고 얘기했고 후임까지도 본인만 전역하면 편하게 말해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관계에 있어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 보였다.

군 입대하고 한달 정도 지나고 새로운 동기가 부대로 들어왔는데 나보다 2개월 먼저 들어온 동기가 새로들어온 동기를 혼내는 모습을 보자 위계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던 타입의 당시에 난 괜한 정의감이 들어 그 선임동기가 나간 뒤 후임동기에게 다가가 “재는 원래 짬티를 부리는 친구니깐, 괜찮다 너무 신경쓰지마라”라고 뒷담화를 하며 위로를 했다. 그리고 몇 시간뒤 선임 동기가 몇명 찾아오더니 대뜸 미쳤다고 말을 시작하더니 니가 선임동기한테 짬티부린다고 했냐? 라고 매섭게 물어왔다. 그렇다고 하니깐 미쳤냐고 하면서 니 먼대 군대가 만만하냐 라는 식이 얘기를 무섭게 했고 여러 선임에 호출에 불려가 선임이 만만하냐 라는 식의 내용없이 겁주는 내용을 계속 들었다. 실수한 상황이 무서웠지만 당시 화가 났었던건 뒷담화를 당한 당사자가 찾아오는 것이 아닌 주변 사람이 계속 혼을 내는 상황에 비겁하고 치사한거 같아 화가났고, 뒷담화 하던 당시 뒤에 존재감없는 한 뒷담화 한 선임동기와 같은 시기에 입대한 동기가 있었는데 그 상황을 보고 아무말도 안하고 조용히 주변사람에게 보고를 했다는 사실에 너무 실망스럽고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당시에는 모든 군대 사람들이 날 미워한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고 2년동안 지내야한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생활관이 당시 2층에 있었는데 흡연장이 있는 2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래서 군대가 사람이 자살을 하는구나 생각을 했다.

당시 많은 사람에게 내 이름이 부정적으로 오가는 사실에 괴로웠지만 다행히 누구도 나에게 폭력을 행사하지는 않았다. 그저 날카로운 눈빛과 수 많은 뒷담화만 오갔고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괜찮아질 수 있었고 결국 반년정도 지나고 분대장을 할만큼 군생활은 안정적으로 마칠 수 있다. 힘든 시기였던 당시 나에게 친절하게 다가와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이 피아노맨이었다. 피아노맨은 동기들에게 힙합을 하고 싶다고 말하고 다니던 나의 얘기를 듣고서는 힙합 문화를 좋아하는지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지와 같은 질문을 건네줬고 자신은 피아노를 칠 줄 알아서 원래 예고를 갈려고 했었다. 라는 대화를 나눴고 음악을 하고 싶었던 나에게 반가운 타입의 사람이었고 따뜻하게 말을 건네준 사실에 고마웠었다. 또한 피아노맨과 나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위계질서를 싫어하고 음악을 통해 자유로워지고 힙합 음악을 좋아하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정의로운지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타입의 사람이었고 그 친구와 소대도 같아서 금방 친한 동기 친구로 관계 맺을 수 있었다.

군생활의 끝이 다가오자 많은 동기들과 전역 후 어떻게 살지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나는 고시원에 살더라도 서울에 살거라는 얘기를 나눴고 그 얘기를 들은 피아노맨은 자신과 같이 서울에 살지 않겠냐고 물어왔다. 당시 나는 내향적인 성향이 강했던터라 걱정이 들었고 또한 군대내에서 심할 정도로 개인 공간을 깔끔하지 않게 사용하는 피아노맨과 지낸다는 것이 조금은 걱정이 되어 장난섞인 말투로 “너 관물대 처럼 더럽게 할 거 잖아” 라고 물었는데 피아노맨은 헛웃음치며 자신이 군대라서 그렇지 밖에 나가면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당시에 피아노맨이 정리를 하지 않는 건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와 같이 사는게 어려웠을 뿐이었다. 아무튼 피아노맨과 전역 후 같이 살았고 피아노맨은 지저분하게 지냈다. 이후 피아노맨에게 그때 왜 밖에서는 지저분하게 지내지않는다고 거짓말했느냐고 물었는데 피아노맨은 민망해서 그랬다고 말했다. 피아노맨은 평소 군생활의 부족한 점이나 학창시절의 어려움같은 자신의 치부를 솔직하게 말하는 타입이었는데 지저분한 타입이라는 작은 것이라 생각되는 사실에 거짓말했다는 것이 나로써는 의아했다.

피아노맨은 좋아하는 것이 패션이나 힙합인 것과 꿈이 명확하지 않고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큰 것이 나와 비슷했다. 정확하게는 피아노맨은 나보다 좀 더 심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보냈고 많은 시간을 디씨인사이드나 랜덤 채팅으로 만난 인도에 사는 인도 여자친구와 영어로 전화나 문자 연락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으며 간간히 당일 근무를 하며 생활비를 보충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초적인 생활비는 부모님 신용카드로 해결했었다. 부모님은 교육자 집안이었는데 아버지가 대학교수였었고 본가는 강원도 원주였다. 피아노맨의 집안의 경제 상태는 잘 모르지만 얘기만 들어봤을 때는 무척 잘사는 편은 아닌거 같았다. 다만 확실한건 나보다는 여유있는 편의 환경인거 같았다. 일을 비는 것에 크게 불안해하고 적극적으로 일을 찾는 내게 자주 조급해하지 말라고 했는데 마음 속 한편으로 피아노맨과 나의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자라홈에 일한지 반년정도 되었을 때 일이 없던 피아노맨이 자신도 회사에 추천해줄 수 없냐고 물었다. 회사에 눈치보이는 일이여서 적극적으로 추천하지는 못했지만 회사에 사내추천 링크가 있어서 해당 링크를 전달하며 가식적인 모습으로 신청해보라고 말했다. 추천의 영향인지 그 친구는 같은 코엑스의 자라의 창고 정리 파트로 배정받아 근무하게 되었고 마침내 두 정처없던 영혼은 일이라는 사회적 벽이자 길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그 친구도 나와 마찬가지로 일을 무척 힘들어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난 자신의 부족함이나 더 잘해야한다는 생각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 친구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게 일하다는 동정을 하거나 하루하루 힘든 것에 대해서 가까운 사람에게 얘기하는 타입이였다. 일 경험이 적은 나로써 정말 그 친구의 일이 더 힘든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같은 업종에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고 그저 그 친구의 성향이 그렇다는 걸 시간이 지날 수록 단정하게 되었다.

우리는 사회초년생으로 힘들기도 하였지만 나에게 피아노맨은 당시 가장 친하고 소중한 친구였고 저녁이 되면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악기를 연주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허나 불안한 영혼들의 동거는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다. 일한지 1년차가 넘어가던 시절 일반 직원에서 매니저로 넘어가기 위해 업무가 바뀌고 수 많은 매니저로 부터 피드백과 압박이 들어오던 시기었다. 일의 스트레스가 높긴 했지만 아마 일의 스트레스만이 피아노맨과 트러블의 원인은 아니였을 것이다. 피아노맨과도 동거한지 2년이 되었고 피아노맨도 만날 수 없는 인도의 여자친구와 바쁜 매장의 근무에 힘들어했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힘들고 무척 불안한 상태였고 서로 기대면서도 서로에게 스트레스를 필연적으로 주고 받던 사이였을 것이다. 트러블이 시작된 건 이틀 휴무로 대구의 본가에 갔다가 돌아올 때였다. 나는 본가에 갔다오면 늘 심란했다. 한달마다 본가에 들어가면 지저분한 집과 매달 노화하는 부모님 해결할 수 없는 수 많은 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체 머리를 쥐어쌌다. 심란한 마음으로 서울로 돌아오면 내가 무엇을 해야 나아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본가를 나아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가 더 서울에서 깔끔하게 지내고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한편으로는 다음 날 부터 다시 일해야한다는 압박감에 표정이 어두웠다. 그런 상태에서 들어온 집은 무척이나 지저분했다. 피아노맨은 정리를 하지 않는 타입이었고 내가 없으면 눈치볼 것이 없어서인지 정리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많이 집안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돌아온 나에게 반갑게 왔냐고 물어왔지만 쌓인 생각과 정리할 것들 복잡하게 얽힌 스트레스와 감정을 숨기기 위해 애쓰지만 숨길 수 없는 낮고 작은 목소리로 “어..” 라고 대답하며 현관과 방에 쌓여있는 쓰레기들을 정리했다.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인사하는 피아노맨을 쳐다보지도 않고 그저 내 생각에 같혀 화가나고 차가운 얼굴로 조용히 쓰레기들을 정리했다. 인지하지 못했지만 피아노맨은 큰 상처와 치욕을 받았다. 피아노맨은 이후로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며 말을 걸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마 약 3일 정도가 대화를 하지 않는 상태가 지나자 대화를 나누지 않는 상태에 참을 수 없이 불편하고 괴로웠다. 당시 나는 그 상황에 원인이 어떤 것 때문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나는 그저 당연하게 청소하는 역할에 집중했을 뿐이라 생각했고 피아노맨은 자주 인도의 여자친구나 일로 괴로워했기 때문에 온전히 나의 행동 때문에 분노하고 상처받았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답답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바꾸기위해 피아노맨에게 말을 걸고 내 행동으로 상처받았다면 미안하다 잘해보자라고 연신 사과를 했지만 피아노맨은 대부분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결국 답답함을 참지 못한 내가 소리를 치며 호소했다. “아니 우리가 잘해보자고 하는데 왜 자꾸 그러냐, 나도 잘살겠다고 열심히 살아보겠다는데 왜 자꾸 그러냐.” 큰 소리로 소리쳤고 눈물이 올라왔다. 하지만 나의 눈물은 쏙 들어가게 될 수 있게 피아노맨은 대답해줬다. “야 나는 괜찮은줄 아냐? 니가 사람 무시해서 얼마나 수치스러웠는지 알고 있냐? 나는 너랑 대화나누고 싶지 않다.” 피아노맨의 얼굴은 상기되었고 눈빛은 무척이나 뜨겁고 날카로웠다. 피아노맨이 공격적으로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은 무서웠다. 그리고 같이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했고 피아노맨에게 말을 했다. “내가 미안하다 그건 근데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이제 따로 지내는 것이 맞는거 같다. 너가 나가거나 내가 나가던지 너가 선택하면 하라는대로 할께.” 피아노맨 분노의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야 나는 같이 살기로 한 약속인데 이해할 수 없다. 근데 너가 못버티겠다고 한다면 너가 나가서 살아라” 그 대답을 듣고 그 다음날부터 친형네로 갔고 그 친구가 없는 날 집에 있던 짐을 모두 챙겨갔다. 그렇게 피아노맨과 룸메이트 생활은 끝이 났다. 보증금 1000만원을 500씩 각각 내어 걱정했지만 2년 집계약이 끝나는 1년이 지났을 때, 다행히 집주인은 내가 설명한대로 계약서에 있는 이름인 나에게 1000만원을 입금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피아노맨에게 500만원을 전달했다. 피아노맨은 다시는 연락하거나 마주치지 말고 마주친다하더라고 아는척 하지말자하며 피아노맨은 나를 차단할거라 메시지를 보내줬다. 돈을 받자마자 그런 말을 하는 것에 피아노맨도 돈 못받을 것을 걱정하긴 했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기도하며 내가 그렇게 싫은가하며 마음이 아팠다. 이후에 예비군훈련에서 마주쳤는데 그 친구는 내가 옆에있는데 보란듯이 투명인간 취급하며 다른 동기들과 큰 소리로 웃고 대화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웃지도 못하고 불편하게 있다가 돌아왔다. 무척이나 작아진 기분이 들었고 세상이 참 무섭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피아노맨과의 트러블의 여파는 감정의 큰 상처로 남아 나를 괴롭혔다. 소중한 사람의 잃었다는 아픔과 사람에 대한 막연한 실망과 슬픔 그리고 치욕스러운 몇몇 순간들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누군가에게 크게 실망하고 괴로워했던 순간은 처음이라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또한 일도 매장 뿐 아닌 직원도 관리해야하는 업무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괴로워했고 여러 어려움에 스트레스를 받아 500원 동전만한 원형탈모가 뒷통수에 생기기도 했고 이후 우울증으로 정신과 의원을 방문으로 연결되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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