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 또는 실패
나는 중고등학교 때 아케이드 게임을 좋아했다. 크레이지아케이드나 카트라이더 같은 게임을 친구들과 즐겨했다. 게임을 하는 동안 무수히 많은 게임오버를 봤다. 그래도 계속했다. 게임을 하는 것도 재밌고 레벨 업하는 재미도 있어 계속했었다. 이기면 경험치를 많이 얻고, 지면 적지만 경험치를 얻긴 얻는다. 이기기만 하는 게임은 재미없다. 졌다가 이겼다가를 반복한다. 게임을 할 땐 져도 이길 때까지 했으면서 실전에선 그렇게 하지 못했다.
5년을 일로 바꾸면 약 1,826일이다. 윤년은 1번만 있었다고 가정했다. 1,826일간 충분히 시작할 수 있었지만 하지 못한 일들을 생각해보았다. 못한 것도 있고 안 한 것도 있다. 크고 작은 일이 있지만 큰 범주로 보면 2가지를 제대로 못했다. 바로 '도전과 용서'이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
내가 하던 전공을 더 파고 싶기도 했고, 아니면 아예 다른 분야를 공부해보고 싶었다. 기획이나 홍보, 프로그래밍 언어, 사업이 궁금했다. 엑셀 매크로도 마음껏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배우고 싶었고, 영어와 중국어도 수준급으로 하고 싶었다.
용서하기
나에게 잘못한 사람이 내게 용서를 구했든, 구하지 않았든 말로는 괜찮다 했지만 행동으론 그렇지 못했다. 마음으로는 용서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게 힘든 일이 생긴 이유가 과거의 내가 노력하지 않았고, 좋지 못한 선택들이 쌓인 결과란 생각에 과거의 나도 용서하지 못했다.
이런 것들을 하지 못한 이유는 결국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진짜 동기나 과거, 상대의 용서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직 기회도 있었지만 새로운 곳에서 적응해야 하는 부담과 하던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하고 가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가지 않았다. 전공 공부는 이쪽으로 더 이상 커리어를 쌓고 싶지 않았다. 다른 공부는 바쁘다는 핑계로 계속 미룬 것이고, 이대로도 크게 무리가 없으니 무의식적으로 안주해버린 것이다.
'받아들임'은 거부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사실을 사실로서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수용은 변화와 성장의 전제 조건이다. 내가 저지른 실수를 똑바로 보고 내가 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실수에서 자유롭게 배우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내가 저질렀다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실수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가 없다.
<자존감의 여섯 기둥>
이성은 감성의 노예다. 그래서 알면서도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 든다. 어려워도 나의 실수, 선택, 감정들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인정하지 않으면 바뀔 수 없다. 내가 인정받길 원한다면 다른 사람도 인정해야 하듯, 내가 받아들이기 싫은 나의 모습도 인정해야 온전한 내가 될 수 있다. 이제는 과거의 실수들은 거의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이란 책에서 인생의 정답은 없고, 내 선택을 정답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 했다. 포기하거나 실패한 채로 두면 후회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자기 합리화 또는 어설픈 변명으로 하지 못한 것을 정답처럼 포장하란 얘긴 아니다. 다른 일을 선택하거나 전략을 바꿔서 재도전하며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정답을 만드는 길이지 모른 척하는 것은 또 다른 오답을 만들 뿐이다. 생각만 하고 못했던 일들 중에 여전히 하고 싶은 일도 있고 관심이 없어진 일도 있다. 5년 뒤 나에게 당당하기 위해, 더 이상 용서를 구할 일이 적도록 오늘도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