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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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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정 Apr 10. 2024

뒤늦은 칭찬

내게 머문 마음

그것은 순전히 쌍꺼풀 때문이었다. 내게는 눈두덩이의 툭툭한 지방에 파묻혀 존재감을 알리지 못하던 속쌍꺼풀이 있다. 그런데 그날은 왠일인지 쌍꺼풀이 조금 커져 있었다. 커졌다고 해 봐야 남들 눈에는 그 변화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미미했다. 그저 나만 느낄 수 있는 변화였다. 그것이 전날 한 셀프마사지 때문인지, 잠을 설쳐서 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소심하게 진해진 쌍꺼풀은 그날로 내 것이 되었다. 오랜 시간 콤플렉스였던 내 눈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아침이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힘을 준 가구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거실 테이블이다. 우리 집에서 가장 심사숙고하여 고른 가구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거실 테이블이다. 우리는 거실에 모여 함께 공부하고, 같이 밥을 먹는다. 쇼파도 없는 거실에는 커다란 원목 테이블과 의자 4개, 책장이 가구의 전부다.      


  거실 테이블 겸 식탁을 고르기 위해 우리는 오랜 시간 고민했다. 사이즈부터 디자인, 재료까지 모든 것에 공을 들였다.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식사도 해야 했기에 고려할 점이 많았다. 처음에는 요즘 대세인 세라믹 식탁을 살까 했다. 그러다 차가운 물성과 무겁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 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 스텐이 섞여 있는 식탁은 아예 눈길조차 가지 않았다. 결국, 테이블보다 먼저 거실의 주인이었던 책장이 우리에게 답을 제시했다. 원목이었던 책장은 같은 수종(樹種)의 원목 테이블과 가장 조화로울 것 같았다.     


  하지만 원목 테이블은 김치나 카레를 즐겨 먹는 우리 식탁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전에 사용하던 코팅된 원목 테이블도 각종 얼룩으로 인해 방출한 직후였다. 우리는 그동안 조사한 정보를 바탕으로 가까운 가구 매장으로 직접 나섰다. 실물을 보자 더 탐이 났다. 아름다운 무늬와 부드러운 감촉, 원목 고유의 향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없었다. 단아하지만 아름다운 원목 고유의 무늬를 보자 내가 만지고 있는 건 숲 속의 한 그루 나무 같았다. 은은한 향까지 내 것이 되자 나는 어느새 숲에 서 있었다.      

  원목 식탁에게 온 마음을 빼앗긴 우리는 구매를 해버렸다. 우리 집 거실로 들어온 원목 식탁은 훨씬 더 아름다웠다. 이미 존재감을 내뿜던 책장에, 같은 수종의 의자까지 갖추자 아름다운 교향곡이 완성되는 느낌마저 들었다. 처음에는 음식을 흘리지 않기 위해 애를 썼으나 식탁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불편해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육지책으로 비슷한 색깔의 인조가죽 매트로 전체 상판을 덮기로 했다. 공부를 할 때는 매트를 걷었다가 밥을 먹을 때는 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걷고 펴는 것이 꽤 번거로웠다. 매트는 온종일 식탁 위에 누워 있었고 언젠가부터는 식탁과 매트는 원래 하나였던 듯 여겨졌다. 그렇게 원목식탁은 원래의 모습을 잃은 채 인조가죽 식탁으로 살아갔다.      


  그 사이 해가 바뀌고 새해를 맞아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많아진 책도 정리하고 옷도 정리했다. 좀 더 단정하고 청소하기 쉬운 집의 모습을 그렸다. 그러다가 원목 식탁의 인조가죽 매트가 우리의 시야에 들어왔다. 원목 식탁을 샀던 날을 떠올리자 우리가 무슨 잘못을 하고 있는지 일순간 깨닫게 되었다. 고유의 아름다움은 가려져 있었고 원목 식탁을 산 의미는 퇴색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 길로 매트를 벗겼다. 아직도 음식을 잘 흘리는 딸을 위해서 아주 작은 실리콘 매트를 주문하여 식사때만 깔도록 했다. 그리고 대다수의 시간들은 원목 식탁 고유의 자태를 감상하며 지냈다.      


  만질수록, 가까이 다가갈수록 마음에 드는 장면이 펼쳐졌다. 식탁이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이 오롯이 느껴졌다. 처음 식탁을 사러 갔을 때의 설레임이 일렁였다. 화려한 색이나 유수의 장식으로 인해 아름다움이 더해지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과는 반대로 지나치게 단정하고 수수한 느낌이었다. 가까이에서 하나하나 살펴보지 않으면 각기 다른 나뭇결의 무늬도 잘 보이지 않아 하나의 색깔로만 보였다. 오로지 식탁에 애정을 가지고 자세히 살피는 사람에게만 그 아름다움은 모습을 나타냈다.      


  그날 아침의 내 눈도 그랬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느껴지지 않을 변화였다. 내 몸의 일부였지만 그렇게 자세히 살펴보는 일은 흔치 않다. 바쁜 아침 시간, 출근 준비하기에도 벅차다. 그런데 작은 변화가 나를 거울 앞에 머물게 했다.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본다. 살펴본다는 말이 애정을 담아 어루만지는 순간으로 번져간다. 괜찮구나. 이 정도면 괜찮구나. 지나치게 작지도 않구나. 뾰족하고 날카롭지도 않구나. 세월이 쌓이며 내 눈빛도 좀 더 부드러워졌구나. 어쩌면 세월의 무게가 쌓여 더 마음에 드는 것 같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눈에 콤플렉스가 있었다. 내 눈이 작고 날카롭게 생겼다고 생각했다. 청소년기가 되어서는 작고 날카로운 눈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안 좋은 인상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항상 자주 웃으려고 노력했다. 웃으면 내 작은 눈은 반달이 되었다. 그 순간을 좋아했다. 눈두덩이가 툭툭한 것도 불만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눈두덩이 지방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더욱 눈이 작아보인다고 생각했다. 눈이 작은 아버지와 눈은 크지만 눈두덩이에 지방이 많은 엄마의 안 좋은 점만 모아놓은 것 같았다.     


  나는 왜 눈에 대해 콤플렉스를 안고 살았던걸까? 추측컨대 그것은 부모님의 영향인 것 같다. 아버지는 눈이 작다. 그래서 내 눈이 당신과 닮자 눈이 작다는 말을 어린 내게 했다. 그것이 나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란 건 안다. 그저 당신의 눈을 물려주어 아쉽다는 마음의 표현쯤 될 것이다. 엄마는 반대로 눈이 정말 크고 아름답다. 학창시절에는 다른 사람은 쌍꺼풀도 없는데 너는 쌍꺼풀이 위와 아래에 다 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눈이 크고 예뻤다고 한다. 어린 나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엄마의 예쁜 눈을 보며, 가지지 않아도 될 콤플렉스를 은연중에 마음에 심은 것 같다.      


  거울 속 나를 보고 ‘예쁘다’고 말해준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건 상관없다. 있는 그대로의 니 모습이 예쁘다고, 그거면 충분하다고 되뇌인다. 그것이 설사 객관적인 평가는 아니라 할지라도 나 자신에게 만큼은 후하고 싶다. 짙은 화장으로 가릴 필요도 없다. 더 커다래지기 위해 수술을 감행할 필요도 없다. 그저 타고난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괜찮다고 나 자신에게 말해준다. 거울 속의 내가 나를 보며 웃는다. 스무 살의 내가 사십 대의 내 모습 위에 겹쳐진다. 나 자신을 더 많이 칭찬하며 살 수도 있었을텐데 그러지 못하고 흘려보낸 지나간 젊음에게 미안했다.      


  남서향 집에 선명한 오후 햇살이 내리쬔다. 해는 걷어놓은 블라인드를 지나 고요히 원목 식탁 위에 쌓인다. 원목 식탁의 나뭇결이 하나하나 조명된다. 아무것도 덮어놓지 않은 원목 식탁의 맨 얼굴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 자체로 아름답다. 세월이 가며 시간의 흔적도 고요히 쌓여 갈 것이다. 처음 모습 그대로일 수는 없겠지만 그 또한 아름다울 것이다. 있는 그대로, 세월을 껴안은 그대로. 애정을 담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그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느껴질 것이다.      


  오늘도 원목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좋아하는 책을 읽는다. 고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애정해 마지않는 나의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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