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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음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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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혜정 Mar 28. 2024

서울역에서 너를 찾는다.

네게 머문 마음

  멈춰있던 기차가 서서히 움직인다. 기차 안의 사람도, 기차 밖의 사람도 헤어지는 일은 익숙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서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든다. 그것은 서로를 위한 것이라기 보다 자신들 스스로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람과 나 사이의 물리적인 거리가 아닌 심리적인 거리가 멀어질지 모른다는 불안 혹은 당위성을 떠올리면서. 기차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서로의 등을 보이며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언제 보아도 쓸쓸하다. 

    

  오랜만에 1박 2일짜리 짧은 서울 여행을 결심했다. 나는 계획형 인간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적당한 무계획도 괜찮을 때가 많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요즘은 여행 갈 때 계획에 무계획을 섞어 반(半)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이번 서울 여행은 열차표와 숙소만 정하고 대략 어느 지역이 가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할지, 어떤 맛집을 가 볼 것인지는 계획하지 않았다. 우리에겐 지도 어플이 있었고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의 소리가 더 정확한 지도가 되어줄 것이다.     


  서울역에 내린 우리는 점심도 먹을 겸 요즘 뜨고 있다는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친절한 지도어플이 시키는 대로 지하철을 탔고, 어플에 등재된 맛집 버튼을 눌렀다. 와이파이가 잘 되는 지하철에서 먹을거리를 검색했다. 웨이팅이 긴 맛집에 갈 생각은 없었다. 기회가 우리에게 허락되어 바로 먹을 수 있다면 먹어보고 아니면 또 다른 메뉴를 찾자고 했다. 우리에겐 맛집보다 업무 중이 아니라 여행 중이라는 그 자체가 중요했다. 다행히 우리가 선택한 집은 오픈 시간 즈음이라 그런지 웨이팅이 없었다. 맛있게 점심을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다음 여행지를 검색했다.     


  다음은 각종 SNS에 자주 등장하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각종 옷 가게와 대형 까페들이 즐비했고 각종 브랜드들의 팝업 스토어가 줄을 잇는 곳이었다. 줄이 긴 곳은 이번에도 들어가지 않고 그저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느껴보았다. 개성있는 젊음들이 가득했고 확실히 사람이 붐볐다. 세월을 끌어안은 사람보다 세월을 이제 막 쌓기 시작한 사람들이 많은 곳이 역시 핫플이라는 생각에 잠시 씁쓸해졌다. 이제 우리도 세월을 쌓기보다 끌어안는 대열에 합류한 듯했기 때문이었다. 세월을 끌어안은 사람들이 그렇듯, 열심히 걸어 다니다 보니 쉴 곳이 간절해진 우리는 곧바로 숙소로 들어갔다.     


  늦잠을 자고 느긋하게 일어난 우리에게 벌써 돌아갈 날이 다가와 있었다. 동선(動線)상 역과 가까운 곳에 가는 것으로 결정하고 이곳저곳을 검색해 보았다. 그러다 젊음의 대표 격인 대학가가 있는 신촌에 가기로 했다. 우리는 이미 갈 수 없는 대학이 되었지만 딸들은 희망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설레는 마음을 담아 젊음의 거리로 향했다.      


  마침 그날은 한 대학교의 졸업식 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졸업가운을 입고 축하를 받고 있었다. 가족들도 함께였고, 친구들도 그들 곁에 있었다. 곳곳에 걸린 현수막에는 그들의 졸업과 희망찬 시작을 축하하는 마음들이 가득했다. 눈부시게 빛나고, 충만하게 행복한 순간 같아 보였다. 그들 앞에 어떤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부러울 것이 없어 보였다.      


  그들을 보자 나의 이십 대가 떠올랐다. 갓 스무 살이 된 나는 교복을 벗으면 자연스레 마음의 허물을 벗고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모든 도전 앞에 두려움은 사라지고 내게 주어진 자유는 한없이 좋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언제나 도전은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었을 뿐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할지 알 수 없는 것도 고등학생 때와 똑같았다. 각종 모임 후 홀로 귀가하는 것도 무서웠고 늦지 않았지만 늦었다는 부모님의 걱정을 듣는 것도 늘 그렇듯 마음을 쪼그라들게 했다.      


  내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서울로 대학을 갔더라면 달라졌을까? 더 일찍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 나갔다면 나는 좀 더 성장했을까? 혼자 밥을 해 먹고, 주인 없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 혼자만의 세상을 꾸렸다면 나의 이십 대는 좀 더 단단했을까? 그런 이십 대를 보낸 나라면 지금쯤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 뒤에 큰딸이 떠올랐다. 모든 중고생들의 꿈은 ‘인서울(in seoul, 서울에 있는 유수의 4년제 종합대학 진학에 성공하는 것)’이다. 지방에 살아도, 서울에 살아도 꿈은 오직 하나, 인.서.울. 우리 딸도 인서울을 꿈꾼다. 정확히 말하면 딸은 인서울을 원하지 않는다. 집에서 가까운 지방국립대에 다니며 부모님과 같이 살고 싶어 하는 열여섯 살이다. 하지만 지방대를 나온 부모인 우리는 딸이 인서울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딱히 지방대를 나와서 무시당했거나 지금의 우리 위치에 대해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좀 더 많은 기회와 더 넓은 세상이 그녀의 것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스무 살이 된 큰딸은 어떤 모습일까? 인서울에 성공했을까? 우리와 떨어져 서울에 간 미래의 딸을 그려본다. 학교 근처 작은 원룸이 그녀의 시작이 될 것이다. 주인 없는 방에 홀로 들어와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했던 긴 하루를 떠올리겠지. 긴장감과 책임감으로 무거워졌던 몸을 작은 침대에 누이며 하루를 마감할 것이다. 부모인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자신만의 세계는 점점 넓어질 것이다. 가슴 깊이 외로운 날도 있겠지만 외로움의 다른 이름이 자유로움이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때로 영상통화로 우리와 만날 것이고 기차역은 우리의 만남과 헤어짐의 배경이 되어주겠지.      


  딸은 나보다 더 깊고 성숙한 어른이 되어 갈 것이다. 나보다 더 일찍 ‘스스로’의 힘을 배우고 어쩌면 더 빨리 자기만의 공간과 세상을 얻을 테다. 문제는 나다. 내가 얼마나 그녀와 멀어질 수 있을지. 더 많이 멀어지려고 할 때 기꺼이 그렇게 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알 수 없는 그녀의 세상이 넓어질 때,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던 시간임을 알 수 있기를 바란다. 때로 많이 안쓰럽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는 순간이 와도 좌절하지 않고 내 할 일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도 우리의 만남이 ‘주저함’이 아니라 ‘기꺼이’ 였으면 좋겠고 물리적 거리와 상관없이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나였으면 좋겠다.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뒤로하고 기차가 출발한다. 서로가 가야 할 방향으로 걸음을 뗀다. 잠시 쓸쓸하고 오래 그리울 것이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은 추억이 될 것이고 가끔은 그 추억이 마음의 빈 곳을 채울 것이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오늘의 기차역에서 내일의 우리를 만난다. 미처 떠나지 못한 수많은 마음이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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