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 체험기

나에 대한 마음

by 신혜정

남편이 독감에 걸렸다. 가슴 속이 간질거리는 것 같다며 약을 먹고 잠들었었다. 아침이 되자 일요일에도 운영하는 병원을 검색하더니 급히 병원으로 갔다. 그는 돌아오며 독감도 함께 데려왔다. 남편은 침대 매트리스 하나를 거실로 옮겨 주더니 안방을 독차지했다. 거실은 나 혼자 고립된 섬 같았다. 밤이 되자 남편과 가장 붙어 지내던 큰딸이 열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늦은 밤, 병원을 검색하여 찾아갔다. 당연히 독감일 줄 알았으나 독감 키트에는 두 줄이 뜨지 않았다. 밤사이 열은 더 올랐고 아침이 되자마자 설 연휴에도 여는 병원을 수소문하여 진료를 받았다. 결과는 당연히 남편과 같은 A형 독감이었다. 그 길로 큰딸마저 제 방에 스스로 갇혔다. 작은 딸은 자기 방에, 나는 거실에, 우리는 마치 아파트 우편함에 꽂힌 관리비 영수증처럼 제각각의 공간에 갇혀야 했다.

여러 가지 계획을 호기롭게 세웠던 나의 설 연휴는 독감 이슈로 전면 수정되었다. 오롯이 집에 갇혀 식구들의 밥을 각자의 방으로 배달해 주는 것으로 하루를 채워나갔다. 독감에 걸리지 않은 나와 둘째가 절대로 독감에 걸리면 안 된다는 마음에 밥도 따로 먹고, 화장실도 따로 썼다. 아주 철저히.

설날을 맞아 떡국을 끓였다. 큰딸은 열이 높아 잠을 설쳐 곤히 자고 있었다. 일단 3인분의 떡국을 끓였다. 쟁반 3개를 놓고 남편, 둘째, 내 거를 한 그릇씩 놓았다. 곁들일 반찬과 따뜻한 물도 준비했다. 김가루까지 다 뿌리고 화룡점정인 참기름을 두른 후, 각 방으로 배달했다. 잠시 후, 큰딸이 잠에서 깼다. 떡국을 안 좋아하는 큰 딸은 계란찜을 요구했다. 쟁반에 계란찜과 각종 반찬을 얹어 또 방으로 배달했다. 모든 아침 식사가 끝나자 개수대에 설거지가 가득 쌓였다. 한 상에 둘러앉아 먹었으면 그릇의 개수가 이렇게까지 많지 않았을텐데 엄청난 개수의 그릇들이 보란 듯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 사이에는 세탁기도 돌려야 했고, 청소까지 해야 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일들이 대충 마무리되고 식사와 식사 사이 휴식 시간이 돌아오면 살 것 같았다. 모두 각자 방에 들어가 있으니 고요하고 평화롭기까지 했다. 책도 읽고 글도 쓰고 가끔 영상시청도 했다.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고 바깥세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설연휴는 시작되었고, 남편은 독감으로 한 주 내내 회사를 가지 않았다. 아이들 또한 연휴가 끝나도 방학이었다. 독감 격리 권장 기간인 5일 동안 각자의 방으로 삼시세끼를 배달하고, 돌아서면 설거지를 하는 루틴을 반복했다. 배달 음식을 시킬 수도 있었지만 아픈 사람들에게 바깥 음식을 주고 싶진 않았다. 처음 하루, 이틀은 세끼를 모두 집밥으로 하고, 외출도 자유롭지 않은 것이 힘들었다. 새로운 루틴에 적응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며칠 지내다 보니 긍정 회로가 돌기 시작했다.

워킹맘인 나는 주로 하루에 한 끼, 저녁만 요리한다. 점심은 모두 회사와 학교에서 해결하고, 아침은 남편이 준비한다. 이번처럼 온 가족의 하루 세끼를, 그것도 며칠 동안이나 요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게다가 각자의 방으로 음식을 배달까지 해야 하니 흔치 않은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온 가족이 내내 집밥을 먹기 시작하자 쌀독의 쌀이 줄어드는 게 눈에 보였고, 밥솥은 쉼 없이 돌아가고, 냉장고는 비어갔다. 내 손을 거친 쌀알이 가족들의 피와 살이 되고, 그들이 회복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는 것이 나를 즐겁게 했다. 뭔가 순환이 잘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고 나의 요리를 잘 먹어주는 가족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게다가 내가 독감에 걸리지 않고 가족들을 돌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급기야 친정엄마까지 독감 판정을 받았다. 남편과 아이들 식사를 신경쓰는 틈틈이 엄마에게도 들렀다. 과일이나 반찬을 가져다 드리고 상태를 살펴보고 오곤 했다. 절대로 독감에 걸려서는 안된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철저히 KF94 마스크를 착용했다. 친정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면 식사 시간은 어김없이 돌아왔고 나는 다시 전업주부 모드에 돌입해야 했다.

엄마는 나와 달리 전업주부였다. 근처의 다른 도시로 출퇴근하시는 아버지를 위해 새벽밥을 매일 차렸다. 등교하는 우리를 위해 다시 한번 밥을 차리고 도시락까지 손에 쥐어 주었다. 배달 음식이 없던 시절, 매일 다른 메뉴로 우리의 건강을 책임졌다. 반찬은 항상 다섯 가지가 넘었고 국이나 찌개도 꼭 있었다. 당시 우리 집 냉장고는 매우 작았다. 내 키보다 조금 작을 지경이었다. 그 덕에 엄마는 매일 장을 보러 다녔다. 식기세척기도 없어서 늘 네 식구가 먹은 그릇들을 꼬박꼬박 닦았다. 엄마는 단 한 번도 밥하기 싫다고 말거나 설거지를 쌓아두는 일이 없었다. 거기에 더해 꿇어앉아서 물걸레 청소까지 하루 두 번씩 하는 바람에 엄마의 무릎은 요즘 말썽이다.

그에 비하면 나의 5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워킹맘으로 살아가느라 최선을 다하지 못한 부분을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결혼 20년 즈음이 되면 다들 밥하기도, 설거지하기도 싫다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그들에 비해 식사 준비를 한 시간이 짧아서인지 하기 싫다는 생각보다 식구들에게 부족하고 미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남편의 자리도 새삼 느껴졌다. 이 많은 부분을 나와 함께 채워주고 있었다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저녁을 담당하면 남편은 아침 식사를 담당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을 손수 만들기도 하고 내가 만들어 놓은 반찬들을 보기 좋게 담아 아이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내어놓기도 한다. 때로 나의 체력이 모두 방전될 때는 눈치껏 산더미 같이 쌓인 그릇들을 식기세척기에 넣어주기도 하고 저녁 당번을 대신해 주기도 한다.

함께 사회생활을 하면 그게 당연한 남편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새삼 남편이 제 몫을 다해준 것 같아 고마웠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들이라면 부인과 함께 가사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는데 좋은 동반자로 자리매김 해 주어 감사했다.

이제 식구들은 모두 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거실에 덩그러니 나와 있던 침대 매트리스는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다. 각자의 방으로 배달되던 그릇들은 다시 식탁에서 만났다. 우리는 다시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각자의 이야기들을 맛있게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각자의 우편함에 꽂혀 있던 우리는 비로소 하나의 주소지로 합쳐진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난 설거지 거리가 개수대에 소복히 쌓여 있다. 침대에 가서 눕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이 밀려온다.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설거지를 해야 하는데... 남편이 일어나 어서 개수대로 가기를 기다린다. 5일간의 내 역할은 훌륭했고 나는 할 도리를 다했다. 이제 독감도 떠나갔으니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어설픈 전업주부를 자처하며 새롭게 만들어 냈던 나만의 루틴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늘 반복되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우리 팀만의 루틴으로 다시 돌아간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 내던 꽉 찬 하루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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