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에픽하이는 그들의 노래 <빈차>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벌어야 할 돈 말고도 뭐가 있었는데 내가 가야 할 길, 나에게도 꿈같은 게 뭐가 있었는데" 라고. 출근길 라디오, 넋나간 것처럼 읊조리는 목소리가 홀리듯 귀에 꽂혔다. 잠깐의 시차.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치 추가 진자 운동 하는 것처럼 목울대가 오르내렸다. 주차장에 도착하고 나서도 한참을 오열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의 한 아파트로 이사 왔다. 낯선 도시였다. 불을 때지 않아도 수도꼭지에서 뜨거운 물이 철철 나오는 아파트. 감동이었다. 그런 아파트에서 나만 없던 자전거를 사달라고 엄마를 조르고 졸랐다. 어린이날 선물로 빨간색 사이클 자전거를 받았다. 그 자전거가 하루 만에 없어졌다. 동네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지만 영롱하게 빛나던 빨간 내 자전거를 찾을 도리가 없었다. 분했다. 엄마는 잘 간수하지 못한 내 잘못이라며 기름을 부었다. 훔쳐 갈 때 미리 알려 주는 친절한 도둑이 있기라도 한 건지. 자전거를 잃어버린 것보다 엄마에게 야단맞은 일이 더 분했다. 눈물이 터졌다. 그날 밤, 동네 자전거포 아저씨가 우리 아빠였으면 했다.
전학 온 서울 학교 담임은 이상하게 아이들의 꿈을 궁금해 했다. 4학년이 되자 여지없이 또 물었다. 나는 자전거를 잃어버려도 걱정 없을 자전거포 주인이 세상에서 제일 근사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전거포 주인이 꿈이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잠깐의 시차. 머리통이 뜨거워졌다. 담임 손에 들려있던 출석부가 내 머리통을 세차게 두드리고 있다. 담임은 남자 새끼가 꿈이 쪼잔하게 자전거포 주인이 뭐냐고 화를 냈다. 오성장군이 꿈이라는 녀석은 기특하다며 머리통을 부벼주고 침까지 튀기며 칭찬을 쏟아 냈다. 곧바로 오성장군보다 몇 끗발은 쎄보이는 대통령이라며 벌떡 일어났다. 잠시의 시차. 또 출석부가 머리통을 두드렸다. 세차게. 공부는 바닥에서 기는 놈이 무슨 대통령이냐고 담임은 더 화를 냈다.
비위 맞추기 힘든 어른들의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꿈도 함부로 크게 꾸면 곤란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게다가 공부까지 못하면 인생 참 피곤해진다는걸, 너무 일찍 인생 쓴맛을 제대로 봐버렸다.
꿈은 하고 싶은 일일까? 취업이 인생을 재단하는 요즘,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인생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라며 꿈을 얕잡는다. 세상은 무릎 나온 파란 츄리닝에 두문불출하는 사람들에게 직업은 물어도 꿈은 묻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서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건 꽤나 큰 용기다. 그나저나 나는 꿈을 이루었을까, 자문 한다. 어느새 꿈은 낮아질 대로 낮아졌다. 아예 보이지 않으니 물을 수 있을까.
오랫동안 꿈꾸지 않은 채 결혼하고 아이가 생겼다. 그러자 꿈은 낯선 책임감으로 변했다. 그렇게 30년이 넘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영혼을 갈아 넣거나, 영혼을 집에 두고 출근해야 하는 직장은 꿈을 꿀 수 없게 만든다. 두 손을 앙증맞게 포개고 오늘 하루도 무사히,를 바라는 심정은 버티기를 넘어 굳히기까지 해낼 수 있게 해준다. 쓰다 보니 꿈이 갑자기 서글퍼진다.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조용히 인생을 뒤적여 본다. 좋아했던 게 있었는데, 분명 그랬는데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꿈은 학년이 거듭되면서 직업이 됐고 그마저도 몸이 불편해진 후에는 꾸고 싶어도 꿔지지도 않는다. 그렇게 오십을 훌쩍 넘겼다. 이쯤이면 은퇴를 꿈꾸게 되는 게 국룰인지 나도 그렇고 다시 꿈꾸려 애쓰는 사람이 주변에 허다하다. 한편으로 누군 그러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라는 핀잔을 듣기도 해서 서글프기도 하지만 깨고 싶진 않다.
운동할 때는 책은 교과서든 소설이든 종류를 가리지 않는 수면제였다. 대학 2학년, 느닷없는 사고로 목이 부러졌다. 시간이 지나 손가락 하나를 움직일 수 있었다. 하루일 책을 읽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시를 읽고 가슴이 내려앉기도 하고 소설을 읽고 차원을 넘나들었다. 누군가의 에세이는 내 이야기처럼 가슴이 아렸다. 위로의 시간이었다.
책 읽고 글로 생각을 정리하는 게 의무처럼 된지 꽤 오래됐다. 습자지 같이 얇디얇은 사고 능력을 작동시킨다. 작가의 생각을 가늠하는 게 가당치 않지만 나름의 생각을 펼쳐보는 시간이 행복하다. 그렇게 읽고 쓰길 수년을 지속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이나 블로그에 차곡차곡 쌓인 글이 뿌듯하다. 그리고 요즘, 생각을 조금씩 갉아 내며 침입하는 욕망이 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라는.
돈 버는 일 말고 이제야 꿈같은 꿈이 생겼다. 나는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놈 안 잡는 한적한 책방에서 책 읽고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글 주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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