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 사고 난 날
그런 날이 있다. 뭘 해도 안 되는 날. 어제가 그랬다. 접촉 사고에 점심 먹다 흘리고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내려가지 못하고 발이 묶이고 늘 먹던 정수기에서 컵이 넘어져 뜨거운 물이 튀고. 그날 허리가 아파도 가급적 움직이지 않았다.
매일 아침 6시 알람에 맞춰 일어 나는 게 루틴인데 어제는 유독 힘들 게 일어났다. 전날 이설과 단오의 결말이 뜻밖이라 허무한 기분에 잠자리에 들어서? 여하튼 그랬다. 그리고 아내가 타준 커피를 홀짝이며 출근. 일찍 나서는 만큼 지각 따위는 할 일이 없지만 분당에서 동대문까지 거리는 편도 약 25km다. 분당 수서간도시고속화도로, 강변북로, 동부간선도로, 내부순환도로를 타고 가는 길엔 군데군데 차가 멈추는 통에 출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수서지하차도 가기 전 문정동 진입로에서 관광버스가 들어섰다. 보진 못했다. 사고가 나서야 알았다. 7시, 즐겨 듣는 라디오 DJ의 목소리가 들릴 때쯤 정차 됐던 앞차들이 움직이며 차간 사이가 조금 벌어졌다. 그 틈으로 순식간에 관광버스가 칼치기하며 들어왔다. 막 출발하려는 내 차를 뚜두둑 소리와 함께 지그시 누르며 앞선다.
잠시 황당. 그리고 어이없음.
어라, 쟤 왜 그냥 가지? 경적에 쌍라이트를 번쩍이며 뒤를 쫓았다. 나 몰라라 하며 그냥 간다. 잘 간다. 막간다. 화났다 분했다 세상 욕설은 다 퍼부으며 1km가량을 쫓았다. 겨우 따라잡아 버스 앞을 막아섰다. 내리려고 안전벨트를 풀고 지팡이를 드는 순간 버스가 기우뚱하며 옆으로 빠지더니 또 그냥 간다. 막간다. 놀라서 화나서 분해서 황급히 운전대를 잡고 다시 앞을 막으려 했지만 잘도 피하고 막간다. 그때 내 차가 찌그러지는 걸 순간 포착했던지 승용차 한 대가 버스를 막아섰다. 운전자가 내려서 손짓하고 막 뭐라 하고 홀연히 사라진다. 저 사람... 복 받을껴... 암만.
버스 운전자는 그제야 억울한 얼굴로 못 봤다고, 출근 시간이니 우선 연락처 줄 테니 공장 가서 견적 받으라며, 얘긴 그 후에 하자고 무슨 랩도 아니고 순식간에 할 말만 하고 자리를 떴다. 잠시 멘털 나갔다. 순간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출근길 가뜩이나 막히는 길을 더 막고 서 있을 수 없었다. 어차피 나도 출근은 해야 하니까. 내 차를 구겨 놓은 버스와 사이좋게 나란히 꽤 오랜 거리를 달렸다. 이 기분 뭐지?
회사 도착해서 찌부러지고 난리 난 사진을 찍어 친절한 멘트와 함께 버스 운전자에게 보냈다. 잠시 후 전화 왔다. 본인 차도 아니어서 보험도 없고, 첫 출근길에 이런 사고가 났다며 하소연을 한다. 네 그러시군요. 대답 한 마디 했을 뿐인데 공업사에 가서 견적 받고 연락해 달라고 하고 끊었다. 결국 미안하다는 말은 못 들었다. 보통은 먼저 미안하다고들 하는데.
급한 사람이 우물 판다고 우선 아내를 통해 동네 카센터에서 찍은 사진으로 견적을 알아봤다. 공업사에 들어가봐야겠지만 최소 3~400만 원 정도 예상 된다고 하며 보험 처리하라고 했다는 언질. 그대로 버스 기사에게 전달해 줬다. 그리고 피해는 내가 봤는데...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보세요. 공업사 쫓아가 견적 받고, 그럴 시간도 없지만 이런저런 신경 쓰기도 싫고 차 수리할 동안 출근할 차도 필요하고 그냥 보험 처리해주시죠?라고 했더니 본인이 첫 출근에서 이런 사고 났다. 아직 회사에는 말도 안 했다. 회사 보험으로 하려면 자긴 차 키 던지기 모른다고 회사 안 나가면 그만 아니냐고 되려 큰소리친다. 그리고 하루 종일 운전해 15만 원 버는데 좀 봐주라고 한다. 여보세요. 그렇게 치면 난 하루 10만 원 꼴이에요. 창피해서 넘어오는 소릴 참았다.
심호흡으로 평점심을 되찾고 차 수리비에 렌트비까지 하면 너 님이 너무 부담되지 않겠냐. 그냥 보험 처리하자고 재차 설득했다. 근데 또 첫 출근 얘기로 되돌아간다. 봐달라고 하며 자기 한 달 월급으로 퉁치자고 함. 그게 얼만데요?
이런 제길. 렌트비는 고사하고 수리비도 안 되는데 내가 너무 억울하지 않겠냐고 되려 내가 하소연 시작했다. 그러자 버스 운전자가 렌트하지 말고 장애인콜택시를 타면 되지 않느냐며 없이 사는 놈 한번 그냥 봐달라고 몰아붙인다. 순간 마음이 약해질 건 뭔지. 대답 한번 제대로 못하고 어버버 하다가 아내와 상의해 보겠다고 하고 전화 끊었다. 내가 피해잔데 왜 내가 사정해야 하는지 짜증 나는데 결국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 말았다. 그래서 당장 오늘부터 장콜을 타야 해서 7시 현재 강제 야근 중이다. 언제 올지 모를 장콜을 기다리며 앞으로 일주일은 개고생 하게 생겼다. 젠장.
#접촉사고 #감성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