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기한 인간성은 회복될 수 있는가
주) 2024년 12월 3일 밤, 계엄과 맞물려 너무 개인적인 감상이 담긴 글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치를 개인의 이권으로 집착하는 이들에 대한 분노일 수 있겠습니다. 읽기 전에 고려하셨으면 합니다.
작가는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라고 하면 소개가 일단락되는 한강이다. 세계적인 축하를 받아야 할 때에 트라우마 같은 상처를 후벼파버린 난데없는 일이 안타깝다.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 2016년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어떤 작가인지 궁금했다. <채식주의자>를 읽고 꽤나 그로테스크한 작품에 작가의 상상력이 독특하다 생각했었다. 그의 작품 중 첫 책이었다. 그때 감상은 고기를 먹었다간 나무로 변할 것 같은, 잘 모르긴 했지만 ‘몸’에 대한 차별이나 혹 어떤 뒤엉킨 관념에 대한 이야기가 복잡해 내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벌써 8년이 더 된 기억이라 또렷하진 않지만. 아마 그때 책을 읽고 영화도 굳이 찾아봤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준비해 읽는다. '온다'와 '작별'이란 단어가 자석처럼 끌렸다.
1980년, 그처럼 내가 10살 때 벌어진 참혹한 일들을 어른들이 쉬쉬했던 걸 흐릿하게 기억한다. 경기도 성남에서 살다가 서울 성내동의 조그만 아파트로 이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2년 후, 여전히 어른들은 광주 이야기를 쉬쉬했고 거리에는 사복경찰의 불심검문이 무차별적으로 행해지고 있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9시만 되면 TV에선 만화를 틀어줬고, 성당은 30분이나 걸어야 했다. 매주 성당 가는 일은 힘겨웠다. 미사가 끝날 때쯤 영성체를 모시는 잠깐의 혼잡한 시간은 잽싸게 놀이터로 탈출하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날은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아도 엄마가 찾지 않았다. 혼자 집으로 갈 수 있는 나이였지만 엄마를 기다려야 돌아가는 길에 핫도그를 먹을 수 있었다.
내 짧은 인내심은 바닥을 보였고 성당 이곳저곳을 기웃댔다. 놀란 얼굴을 한 주일학교 선생님을 마주친 건 교실 앞에서다. 너 아직 안 갔어?라며 짧지만 누군가 들으라는 듯 약간 격양된 목소리였다. “엄마를 찾아요.” “응, 엄마 잠시 계시다가 갈 거야. 먼저 가.”
얼른 밖으로 나와 건물 뒤편으로 돌았다. 진짜 엄마가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뭘 하는지 궁금했을까? 창문을 타고 들어간 교실에는 작가의 말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사진들이 벽을 채우고 있었다. "얼굴이 너무 상해서, 옷과 몸까지 봐야 누군지 확인이 될 거야" 라 하던 선주의 말처럼 사진 속 대부분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옆방에선 웅성거리는 소리와 울음소리가 뒤섞여 이곳 사진에 차곡차곡 담기고 있었다. 엄마 코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핫도그 대신 엄마 손을 꼭 잡고 왔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리고 44년이 지난, 2024년에 또다시 비극적인 계엄이 있었다. 온몸에 털이란 털은 다 서고도 남을 일이 아무렇지 않게 자행됐다. 그 안에 총을 든 군인이 있었고 반대편에는 또 시민이 있었다. 그를 비롯한 그들은 그 잊을 수 없는 시민 학살을 아무렇지 않게 잊었을까. '꿈보다 무서운 생시'가 반복될까. 정신 나간 것들.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그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눈도 뺨도 없는 곳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피를 진하고 끈적끈적하게 만들었어.”51쪽_검은 숨
읽으면 읽을수록, 소리 없이 읊조리게 되는 이 문장에서 가슴이 먹먹해서 숨이 막혔다. 누가, 왜 이렇게 잔인한 짓을 벌였는지 알 수 없어 그 억울함이 얼마나 단단하게 응어리졌을까, 상상이 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 그리고 여전히 반성도 인간성을 상실한 무리들을 생각한다. 자칫 타도해야 할 학살자의 이름이 바뀔 수 있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리고 그런 인간을 두둔하고 나선 무리들이 버린 양심에 대해 생각한다. 국회와 그 의원들을 지켜내겠다고 인간 사슬을 만들어 버텨낸 사람들과는 다르게 같은 공간, 한 쪽에 옹색하게 모여 서로 키득거리고 있었을 한 무리의 국회의원들. 그들은 무얼 얻자고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는 양심을 버리고 숨소리도 못 내고 숨었을까. 내버린 양심을 주워 담을 수 있을까? 포기한 인간성은 회복될 수 있을까? 참 많이 안타깝다.
이 책을, 이 기억과 기록을 읽는 누군가는 쓸데없는 얘기라거나, 있지도 않는 일이었다거나, 이젠 징글징글 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다 지어낸 이야기라고 그렇게 떠들면 안 되는 일이다. 참상을 담은 사진이 있고, 그 피폭 같은 참상을 겪어낸 사람들이 있고, 기록이 있는데 어떻게 그런 참담한 말을 할 수 있는지. 사람이라면 그러면 안 되는 일이다.
반드시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하는 건 당신들이 쏠 때, 반대편의 누군가는 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짐승이 아닌 사람이라서 그리고 한민족이라서. 설사 짐승이었대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또 그 일을 반복하려던 이도 결코 잊어서도 안 되고. 책을 읽고 하루 종일 휘청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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