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프랑스에서 한 달 살기
작가 수정은 불현듯 떠나고 조용히 돌아오는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날숨과 들숨 같아서 문득 그런 날이라면 유럽으로 향한다고 한다. <유럽에서 봄>, <유럽에서 봄 스위스>를 썼다.
작가와 딱히 친분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공교롭게 작가의 전작 <유럽에서 봄>과 <유럽에서 봄 스위스>을 읽었더니 내적 친밀감이 좀 생겼달까. 새로운 책이 나와 선물하고 싶다는 작가의 연락이 반가웠다.
나는 몸이 불편해진 이후로 여행은 타인의 경험을 녹여낸 활자와 사진으로 다닌다. 특히 해외 라면 말할 것도 없다. 보통 접근성이나 이동권의 제한들 때문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보다는 두려워서일 것이다. 꽤 초준한 현실을 감내할 용기가 없어서. 그보단 돈이 없어서일지도.
아무튼 이렇게 때마다 유럽을 순회하는 작가의 여행기는 부럽기도 하지만 작가가 보내주는 풍경과 그곳의 세세한 감각들은 고맙기도 하다. 죽기 전에는 가보지 못할 곳이 분명해서 이렇게라도 갈 수 있으니 다행히 아닌가.
앙시가 남프랑스인가? 그렇겠지? 파리에서 남쪽으로 차를 몰았으니. 2015년,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몸담고 있을 때 앙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업무차 갔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스위스에서 밤을 지내고 프랑스 앙시로 가는 루트였다. 해외는 처음이라서 평소보다 백배는 긴장해서 그런지 많이 고단했다. 하지만 달력에나 나오는 풍경들을 차창 너머로 흘려 가며 도착한 앙시는 거대한 호수에 수많은 요트가 떠있는 호반도시였는데 그 풍경과 첫인상은 25년이 지났어도 어제처럼 선명하다. 그 개똥 천지던 호숫가 잔디밭을 어찌 잊으랴.
또 생각보다 좁은 도로, 그 도로를 무심히 건너다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기다려주는 차량, 횡단보도도 신호등도 없었던 거리와 책이나 영상으로만 보던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상점과 호텔로 사용되는 걸 보면서 신기했다.
반면, 선진국이라 했는데 영어로는 소통이 거의 불가해 가져간 사발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먹을 수 없었고, 점심시간이 2~3시간인 줄 몰라 환전하면서 경악했다. 일행들과 도대체 얘네는 일도 안 하는데 왜 선진국인 거지? 했었다. 게다가 실내외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담배를 피워대는 얘네가 왜? 당시로는 타인보다 철저히 개인 중심의 불쾌한 도시였고 심각히 혼란스러운 나라였다. 그곳이 작가가 소개하는 이곳이라니 더 신기하다.
이런 내 오랜 기억에 작가는 예쁜 색을 고르고 골라 덧입히는 것 같다. 아름다운 니스의 해변을 시작으로, 다니는 여행지마다 간단한 역사적 배경도 곁들인다. 그리고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의 풍경들과 작품에 대한 당시 인싸인 작가들의 스토리는 호기심을 잔뜩 부추긴다. 캬, 이런 해변을 보는데 어찌 탄성이 나지 않을까.
엇, 갑자기 커진 활자에 페이지를 앞장으로 돌렸다. 역시 맞았다. 다시 뒷장을 확인한다. 어? 10포인트로 줄었다. 마지막에 가서야 다시 커졌다. 작가의 일기였을까. 10포인트와 12포인트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활자가 색다름을 더한다.이조차도 풍경 같다.
"결국은 여행도 흩어져 있는 자신의 조각을 찾아 내 안의 빈칸을 채우고 완성된 퍼즐을 꿈꾸는 마음으로 매일 아침 길을 나서는 본능이다."
36쪽
작가는 삶이 산이든 강이든 대지든 달리고 달려 결국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에 불과하다면서 여행도 같은 의미라고 하는데, 그렇게 채울 많은 빈칸이 있을 텐데 나는 어디로 가서 채우고 나를 완성해야 하는지 알 수 없어 흠칫했다. 나를 채울 수 없으니 나를 알 수 없고 그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일이 될까. 니체에게 물어야 하나?
이 책에서 작가는 느낀 벅찬 감정을 자제하고 가급적 활자보다는 사진으로 많이 담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 같다. 독자도 당시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느낄 수 있는 여지를 주는 듯하다. 그래서 모든 것이 더 좋았다. 글도 사진도.
책장을 덮으며 문득 작가가 예술가인가, 싶었다. 미술이나 건축 혹은 문학을 전공한 뭐 그런 사람. 그래서 결핍된 영감을 주기적으로 채우기 위해 훌쩍 떠나야 하는 그런 예술가인가 싶다. 아무튼 덕분에 남프랑스의 푸른 바다 근처를 마구마구 어슬렁댄 기분이라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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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