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자의 특별한 인생 레시피
'어쩌다'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끌렸다. 아마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선택한 것이 뜻밖에 긍정적 결과를 불러왔거나 그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멀리 타국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피치 못해 선택한 어쩌다 하게 된 피자 배달이 삶이 긍정적으로 변한 이야기겠거니 싶은 호기심이 있었다.
저자는 진로를 고민하던 대학원 마지막 학기에 가볍게 떠난 여행이 합법적 정착을 위한 발버둥이 되고 그 과정에서 운명적인 동반자를 만나 피자 가게를 운영하게 되었고, 버티기 위해 애쓰며 가게에서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진정한 소통은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그런 저자를 성장시키는 이민자의 경험이자 일상의 기록이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경험담을 따라가다 점점 리처드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피자 레이디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성별 정도를 빼면 리처드 현지인인지 한국인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민자인지 시민권자인지 영주권자인지 남편인지 동거인인지 시원하게 드러나지 않아 은근 궁금증이 있었다.
낯선 이방인으로 경계의 대상에서 이민자로서 스며드는 일상이 고단하지만 왠지 모를 대견함이 있다. 그 안에서 라몬이나 콘스탄틴 등 '물에 빠진' 자신을 건져주는 것 같은 여러 이웃에 대한 감사함을 놓치지 않는 인간미도 넘쳐 흐뭇하기도 하고.
예상했던 이야기 흐름은 아니다. 머리 식히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운명적인 남자를 만난 이야기겠거니 했는데 뜻밖에 이야기는 영주권 취득을 못해 불법 체류자가 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에 살짝 당황하게 되고, 그가 경험한 일들에서 알게 된 정보를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사람의 인연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좋은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고, 대가 없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136쪽
나는 관계 만들기가 서툴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말이 훅하고 가슴에 들어왔다. 그저 서툰 것을 핑계로 가급적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로서는 관계의 소중함과 그에 따르는 노력이 왜 필요한지 생각하게 했다.
"합법적인 신분을 얻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은 마치 뿌리가 뽑혀 서서히 말라가는 식물처럼 우리의 인생을 소진한다."
205쪽
어쩌면 저자가 느낀 미국 이민자이자 이방인의 삶을 집약한 문장이 아니었을까. 오랜 시간 가족과 떨어져 쌓인 그리움에 저자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 책은 막연하게 선망하는 이민자의 삶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어서 막연한 이민이나 유학을 꿈꾸고 있는 사람에겐 확실한 조언이 될 듯하다. 이민의 고달픔과 영주권 취득, 어학원 선택법 등 이민자의 삶이 녹녹하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이 전해진다.
따뜻한 피자가 배달되어 온 듯, 마음 따뜻해지는 책이다.
#어쩌다보니시카고의피자레이디 #기혜리 #초록펭귄 #서평 #책리뷰 #도서인플루언서 #에세이 #이민 #유학 #리뷰어클럽리뷰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