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기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마음속 들끓는 감정들을 시를 쓰고서야 알게 되고, 비로소 달랠 수 있었다는 시인의 첫 시집을 첫 독자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읽는다.
편집위원 김선희는 시인의 시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느껴지는 복잡한 감정을 담아냈다' 거나 '생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묵직한 성찰을 불러일으켜'서 독자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삼재>에서 종교로 귀의한 채 영면한 부친의 장례에 그 많던 재수 없음으로 쫓겨 나자 불효와 종교의 경계에서 시니컬하게 종교를 버리는 자식의 마음이 통쾌했달까? 담담한 시어에 날카롭게 벤 감정이 날아들었다. 스님 눈이 동그랗고 커지지 않았을까, 웃펐다.
그건 마치 / 폐목이 불에 / 재가 되어가고
춤을 추는 불은 / 별 박힌 하늘로 / 불씨를 토하며 / 사라지는 것
23쪽_빗방울 중
정말 우리 삶이 그렇지 않은가. 온몸이 타들어 가는 순간에도 하늘을 향해 가진 불씨를 토해내는 것 말고는 산다고 할 수 없을 지경이라서, 삶이 내가 주인도 아니라서 그렇게 사그라지는 게 내 모습 같아서 몇 번이고 읊조리고 있다.
이젠 몇 해 남지 않은 육십, 여적 꽃술이 보일 만큼 느리게 걷지도, 한마디라도 뒤질까 상대보다 빠르게 내지르는 탓해 경청은 남 이야기라서 곧 닥칠 그 육십에 1년을 살아보면 비로소 사는 맛을 알게 될까 궁금해서 내심 기다려진다. <육십>이.
제길, 시인 아부지 이야기에 어쩌자고 내 서러움이 터져 나오는지. 아내가 "당신은 아부지 돌아가시면 결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겠네"라고 할 만큼 미워하는 아부진데 어쩌자고 시인 엄니가 하신 "너의 아부지를 / 잊지는 말라는" 말이 울 엄니 목소리로 들리는지…. 한참을 통곡했다.
<안부>를 묻는 군수님, 읍장님한테 답장은 은행에서 부친다는 독거인의 코믹한 생존 알림에 피식했다. 복지관에서 십수 년을 일하면서 숱하게 지켜본 독거인들에게선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한데 그동안 못 본 것인지 안 본 것인지 구분이 애매해 뒷덜미가 싸해졌다.
씨… 눈가가 시큰해졌는데 중절모 신사는 왜 그런 말을 해가지고는. 리어카를 밀고 끌고 언덕을 오르는 모자는 팍팍해도 어쩌면 서로 의지가 되는 존재일지도. 그래서 중절모 노신사에게 자식들과 의지가 되는 사이신가요?라고 물으며, 그래 인생을 어찌 살아야 '잘'사는 것인가요?라고도 묻고 싶은데 한편으로는 이제 서울역은 가지 못하겠다는 마음이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여지없이 노력했는데 행복은 찾을 길 없고 그저 빨리 잠을 자야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당최 불면의 밤은 사그라들지 않아서 정작 행복이 기다리거나 말거나 열심히 일한다고 될 게 아니다 싶어 일을 그만둬 버렸다. <행복은> 어디에도 없고 어쩌면 현실에는 없는 것일지도.
내가 시를 모르니 시인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겠고 그저 시인의 말꼬리에 떠오른 생각을 이어 붙이다 끝이 났다. 오랜만에 시집을 읽었다지만 매일 읽은 것처럼 마음이 풍요로워졌다.
다른 건 몰라도 후다닥 읽어버릴 시집은 아니다. 누워본 적 없는 소 배 위에 누운 듯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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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