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소하면서도 깊은 순간들
아버지랑 엄마는 장례식장을 다녀오시고 "그만하면 호상"이란 말을 간혹 했다. 한데 '그만하면'의 기준은 뭘까. 왜 고인의 끝을 산자가 판가름 내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았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작가 신문자는 국문학이 전공이었지만 학교 안보다는 밖으로 나돌다 문화기획자로 사회적기업 일상예술센터에서 20년 일했다. 꾸준함이 자신의 유일한 장점이자 무기라며, 매일 똥 싸듯 글을 쓰는 게 요즘 일이라고. <아버지가 우울증에 걸렸습니다>를 쓰고 e북으로 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벌써 반년이 됐다. 여든다섯에 돌아가셨으니 호상이려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에선 삶의 애착도 미련도 읽어낼 수 없었으니 아버지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헤아리긴 힘들지만, "늙으면 빨리 죽어야지"라는 협박 같은 엄마의 타박이 요즘은 오히려 안심이 되기도 해서 책의 제목을 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하는 것이 항암 치료라고들 한다. 암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종종 듣는 얘기다. 이어서 그들은 말한다. 시간을 돌려 다시 선택이란 것을 할 수 있다면 항암 치료를 하지 않을 거라고. 결국 죽는 건 마찬가지라고." 48쪽
읽다가 시야가 뿌예져 읽던 것을 멈춰야 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한참 전부터 총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눈으로 병실의 천장만 바라보았다. 항암을 시작하고 급속도로 환자가 되어 갔달까. 항암 결정을 우리에게 미루던 의사가 야속할 정도로.
그때 항암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아버지는 짱짱하지는 않았어도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엔 짜증을 냈고, 자신의 의지대로 먹고 걷고 쌀 수는 있었다. 그랬던 아버지는 항암을 시작하자 그런 것들이 눈에 띄게 줄더니 결국 모두 내려놓았다.
괜히 했다는 자책과 후회가 깊어질 즘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래서 작가의 문장은 그때의 일을 한참 자책하게 했다.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도 생각나고, 큰 집에 덩그러니 남겨져 혼자 뜨거운 물을 데워 찬밥에 말아 후룩 한 끼 때울 엄마가 걱정이 겹쳐져 당최 몇 줄 읽기도 힘들다.
책은 저자가 겪었던 돌봄이라는 낯선 길을 통해 죽음에 대한 의미를 진지하게 기록하면서 사소하면서도 깊은 순간들을 담담하게 전하고 있어 어쩌면 우리 모두의 현실적인 문제로 바라보게 한다.
<n 분의 1, 미혼의 돌봄>을 읽다가 머릿속에서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가 나면서 생각이 복잡해졌다. 평소 돌봄, 가족 돌봄에 대해 심히 유감으로 여기는 나로서는 작가의 이런 분할 법과 미혼의 입장이 꽤나 불편했다.
미혼이 자연스레 전담하는 게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라는 통념이 얼마나 기이한지. 기혼보다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그걸 위스키와 골프와 자기계발에 쏟아도 될 터인데 돌봄에 몰빵하라는 건 아니지 않나? 그걸 기혼이나 미혼이나 통념으로 삼는 게 맞나 싶다.
게다가 미혼인데 n 빵 할 형제자매가 없다면 어쩔? 아무리 생각해도 돌봄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이며 가족은 전담이 아니라 지원하는 게 맞다. 그건 "돌봄의 무게에 짓눌려 허우적대고 부담감 때문에 갈팡질팡" 하는 걸 두고 싸가지없다는 말로 퉁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 돌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이 옛말은 무겁게 그리고 잔인하게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효자가 되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그랬다." 75쪽
작가의 문장은 섬세한데 묵직하기까지 해서 읽는 내내 마음에 동요가 있었다. 물론 공감은 당연하고, 울컥울컥해서 혼났다. 죽음에 대한, 상실에 대한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하지만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돌봄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앞에 흩어지고 무너지고 쌓이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라서 너무 공감됐다.
이 책은 엄마의 돌봄으로 변화되는 작가와 가족의 미세한 감정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따라가면서 독자에게 죽음을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상실과 별개로 돌봄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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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