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우리는 그들에게 휘둘리는가?
꽤나 부정적 어감의 제목에 호기심이 일었다. 게다가 '자신의 예민함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가 무례한 것'이라는 띠지 문구에 일면식도 없는 작가에게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저나 배르벨 바르데츠키는 독일 출신의 심리학자이자 관계 심리 전문가로 오랫동안 상담 현장에서 관계 상처와 나르시시즘을 연구해 오면서 나르시시스트와 얽힌 관계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왜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지에 대해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분석한다. <따귀 맞은 영혼>,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를 썼다.
이 책은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에서 개미지옥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빠져들기만 하는 '심리적 지옥'에 관한 메커니즘을 파헤친다. 겉으로는 당당한 척하지만 지독한 열등감과 공허함으로 관계를 망치는 심리를 지적한다.
저자는 나르시시즘, 그러니까 자기애가 '극강의 이기적인 인간'처럼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현대에서 이 감정이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감에 대한 방어기제'이고, 이는 타인으로부터의 상처를 차단하는 보호장치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 그런 자기애로 무장한 무례한 상사나 동료에게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설명하는데 문득, 정문정 작가의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생각났다. 좀 짜릿했던 기억이 있다.
그나저나 저자의 나르시시즘의 정의를 보다가,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점에서는 자기애라기보단 오히려 사이코패스에 가깝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어 조금 혼란스럽기도 하다.
한데 나르시시즘을 심리학적을 설명하는 부분의 번역이 방지턱처럼 덜컥거렸다. 뭐, 단어 하나에 집착하는 것일 수 있겠지만 당사자에겐 '인'과 '자'의 괴리는 엄청 커서 18쪽의 '경계성 성격 장애자'가 아니라 '경계성 성격 장애인'으로 번역했으면 하는 감수성이 아쉽다.
결국 저자는 나르시시즘은 자기애가 아니라 관계를 무너뜨리는 정서적 폭력임을 명확히 제시하고 그들과의 심리적 거리 두기, 관계의 주도권을 되찾는 방법 등을 조언하는데, 일상 속 교묘하게 타인의 감정에 빨대를 꽂고 자신의 공허를 채우는 그들의 작동 방식을 시원하게 해부한다.
특히 가족이나 연인, 직장 상사와 동료 등 은근 가까운 관계에서 작동되는 지배에 가까운 가스라이팅의 메커니즘이나 왜 그들에게 기가 빨리는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서, 직장을 포함한 인간관계에서 자기중심적 감정 발산으로 인한 관계 뒤틀림 주범으로 나르시시즘을 꼽는다.
덧붙여 직장 선후배 또는 동료 사이에서 무수하게 터져 나오는 상식 밖의 감정들을 다루면서, 모욕적이거나 여성 비하 등 어딘가 숨겨진 발작 버튼을 잘 알아두는 것이 이런 인간들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지 않는다고 공감되는 사례를 곱씹게 된다.
한편, 저자는 이런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건강하게 반응하는 방법을 '자기 확신'에 의한 자의식형, 경탄형, 두려움형, 투쟁형, 거부·고집형, 체념형의 여섯 가지 반응으로 설명하면서 결국 제일 중요한 해결책은 다름 아닌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게 한다.
"공감은 평화로운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데 꼭 필요하지만, 지나치게 강하면 상대방과 전혀 거리를 두지 못하도록 만들어 함께 괴로움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될 수 있다. 이런 경우, 공감 능력이 큰 사람은 타인의 감정 들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결국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250쪽
즉, 나르시시즘적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결핍을 알아내고, 보완하고 현명한 교류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고 하면서 자신을 잘 보호해야 한다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이 책은 자극적인 제목과 달리 매우 정교하고 학술적인 이론을 포함한 통찰을 전한다. 문제의 본질을 흐리지 않고, 관계의 힘듦을 개인의 예민함이나 자책으로 돌리지 않고, 자기애로 포장한 나르시시트들의 병적인 문제로 지적하면서 그동안 무너진 관계의 경계를 다시 세우는 데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상처 주는 사람을 이해하는 동시에, 더 이상 상처받는 자리에 머물지 않기 위한 책이다. 관계에서 쪼그라들거나 피로감에 쪄들어 있던 사람에게 "당신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당신만이 당신을 구할 수 있다"라고 말해주는 나침반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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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