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ugae일공오 Jul 05. 2022

비오네

귀찮다


눈을 뜨자마자 바로 알아챘다, 비가 이미 내렸거나, 곧 내릴 것이란 것을.

볼에 달라붙은 이불은 왠지 모를 물기를 가진 채 몸을 휘감고 있었다, 둘둘.

이제 겨울 이불을 넣을 때가 됐음을 알지만 아직은 압축팩에 넣고 싶지 않다. 내가 집에 머무는 새벽의 온도는 여전히 쌀쌀하기 때문에. 으스스함을 느끼며 잠들었다가 피부로 느껴지는 후덥지근함에 눈을 뜨며 오후를 맞이한다.  온도가 밤까지 이어지면 그때야말로 이불을 바꿔야겠지.


며칠째 날씨는 줄곧 습도 100%였다. 오늘은 다르리라고 생각을 하며, 피부에 느껴지는 물기를 애써 무시하곤 우산을 두고 집을 나선다. 여태 그리 쏟아졌는데 오늘은 다르지 않을까. 우산을 가져갔는데 돌아오는 길에 비가 오지 않는다면, 나는 우산을 다시 챙기지 않고 그냥 나올 것이다. 그렇게 쌓아둔 우산만 서너 개. 이제 집에 남아 있는 우산은 단 한 개. 더욱 가지고 나오고 싶지 않다. 사실 조금의 귀찮음을 감수하면 되지만, 비 오지 않는 와중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은 너무나 거추장스럽다.


지하철에서 내려 올라오니 비는 어김없이 내리고 있다, 줄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손을 가만히 내민다. 몇 방울의 빗물이 기어코 손바닥을 적시고 나서야 우산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자신을 스스로 한심하게 여기며 잰 걸음으로 버스정류장을 향한다. 양손을 이마에 대어 얼굴만 간신히 비를 피하지만,  옷가지는 이미 더 짙은 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누군가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는 듯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고만 싶어진다. 하지만 뒤를 돌아볼 여유는 우산을 가진 사람에게나 있겠지, 이대로 빗물에 몸을 내맡겨 버릴 수는 없다. 나에게는 아직도 하루가 남아있다.  


도착하자마자 황급하게 에어컨을 제습으로 켜두고 물을 마신다. 피부에 느껴지는 수분들이 체내엔 아무런 영향이 없다고 시위라도 하듯 갈증이 느껴진다. 그래도 하나 다행인 것은 우산을 쓰고 집에 갈 수 있다는 것!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렇게나 걷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