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이 중요하다.
한국의 ‘페스티벌 시즌(5월~10월)’에는 수많은 뮤직 페스티벌들이 열린다. 올해 예정된 뮤직 페스티벌은 25개로 국내 관람객 대비 페스티벌의 수를 고려하면 한국의 페스티벌 시장은 과 포화상태이다.
한국에서 뮤직 페스티벌은 ‘휴가 상품’ 개념으로 판매된다. 때문에 대부분의 페스티벌 관람객들은 페스티벌 시즌에 두 번 이상 참여하지 않는다. 휴가 기간이 한정적이며 티켓 가격과 부대비용을 고려하면 재정적으로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뮤직 페스티벌들은 한 시즌에서 한정된 관객들을 두고 경쟁을 해야 한다.
경쟁에서 다른 뮤직 페스티벌들과의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아이템은 ‘라인업’이다. ‘뮤직 페스티벌에서 라인업을 빼면 시체’라고 말할 정도로 라인업은 중요하다. 페스티벌에 참가하는 뮤지션들의 리스트인 라인업은 그 자체로 그 뮤직 페스티벌에서 즐길 수 있는 콘텐츠 목록이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라인업을 통해 어떤 뮤지션을 볼 수 있고, 어떤 음악을 즐길 수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라인업에는 유명하거나 실력이 뛰어난 뮤지션들의 이름이 올라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라인업은 이 외에도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시기’이다. 언제 헤드라이너를 공개하는가?, 어느 정도 간격으로 라인업을 공개하는가? 필자는 페스티벌 라인업 공개 시기에 단순 하지만 강력한 ‘호리병의 법칙’이 존재한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필자가 주장하는 호리병의 법칙이란 ‘뮤직 페스티벌의 라인업은 네임벨류가 높은 아티스트 순으로 순차적으로 공개해야 하며, 그 간격은 가능한 짧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개최되는 뮤직 페스티벌이 3번의 라인업 공개가 예정되어 있으며, 참여하는 밴드 중 가장 유명한 밴드가 U2라고 가정해보자. 여기에 호리병의 법칙을 적용한다면 첫 번째 라인업 공개에서는 U2를 공개해야 하며, 그다음 라인업 공개는 한 달 이내로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실에서 일정 수준 이상 자리 잡은 페스티벌들 은호리 병의 법칙을 따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호리병의 법칙이 합리적인 페스티벌 티켓의 판매전략이기 때문이다. 호리병의 법칙에서는 뮤지션의 유명도 순으로 라인업을 공개해야 한다. 즉 첫 번째로 공개하는 라인업에는 당해 페스티벌 참가 아티스트 중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소위 헤드라이너)가 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첫 번째 라인업이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의 네임밸류의 아티스트를 데려올 수 있는가, 어떤 관점으로 페스티벌의 라인업을 꾸려갈 것인지를 알려주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라인업에 유명 아티스트를 배치하는 효과는 크다. 2015년 ULTRA KOREA와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은 모두 1차 라인업으로 유명 뮤지션을 배치함으로써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인 ‘Hardwell’과 ‘David Guetta’ 그리고 ‘Foo Fighers’를 1차 라인업으로 공개하였고,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당시 ULTRAKOREA와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은 1차 판매 티켓은 5분 만에 매진되었고, 추가로 판매된 티켓들도 빠른 속도로 판매되며 호리병의 법칙을 증명했다. 1차 라인업의 성공은 이후 공개된 후속 라인업의 흥행에도 영향을 주었고, ULTRA KOREA는 역대 최다 관객 11만 명(ULTRA KOREA 홈페이지 출처),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은 8만 5천 명(CJ E&M 발표자료.)의 관객들을 모을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첫 라인업에 가장 유명한 뮤지션을 배치하지 못한 페스티벌은 실패했다. 가장 티켓파워가 있는 헤드라이너를 가장 나중에 공개한 페스티벌의 대표적인 예로 2015년 개최된 ‘Big Bird Festival’(이하 빅버드)을들 수 있다. 빅버드는 세계적인 DJ Laidback Luke(레이드백 루크)를 섭외했음에도 불구하고 8월 16일 1차 라인업으로 국내에서는 비교적 매니악한 DJ 듀오 ‘Dj From Mars(디제이 프롬 마스)’를 헤드라이너로 공개하였고 이는 빅버드 페스티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부실한 1차 라인업은 빅버드 페스티벌의 기대치를 낮추게 만들었으며 결국 추후 9월 13일 Laidback Luke가 공개되었음에도 큰 반응을 낳지 못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빅버드 페스티벌은 해외 DJ들 뿐 아니라 박재범, 바스코, 박명수 등 영향력 있는 국내 아티스트들을 섭외했음에도 한번 꺼진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실패하였고, 결국 빅버드 페스티벌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만약 빅버드 페스티벌이 호리병의 법칙에 따라 Laidback Luke와 함께 국내 아티스트를 1차 라인업으로 공개했다면보다 성공적인 페스티벌이 될 수 있었지 않을까?
다음으로 라인업의 공개 간격은 가능한 짧아야 한다. 라인업 공개 간격은 중요한데, 간격이 길어질수록 페스티벌에 대한 신뢰도는 떨어진다. 먼저 간격이 길어질수록 소비자들은 불안해한다. 페스티벌의 라인업은 평균 한 달 간격으로 공개된다. 이는 어느 정도 페스티벌 사이에서 관례화되어 있기 때문에 이 보다 공개 간격이 길어지면 섭외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실제로 성공적인 페스티벌들은 라인업이 공개되는 간격이 짧다. 이는 페스티벌이 라인업에 자신감 있다는 인상으로 이어졌고, 소비자들이 구매를 결정하는 것에 도움을 주는 효과를 나타냈다. 실례로 2016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은 3월 29일, 4월 6일, 4월 25일에 각각 라인업을 공개하였고, 이는 티켓 판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차 라인업 공개 후 티켓 판매는 5분 만에 매진되었고 2차, 3차 티켓 판매도 긍정적으로 판매되었다. 짧은 라인업 공개 간격이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이와 반대로 판매 부진 혹은 중도 취소된 페스티벌들은 라인업 공개 간격이 유독 길었다. 일례로 2014년 슈퍼소닉 록 페스티벌과 2015년 Global Gathering Korea는 라인업 공개 간격이 길었는데, 이는 소비자들에게 피로감과 페스티벌 자체적으로 자신감이 떨어진다는 인상을 주었다. 결국 해당 페스티벌은 개최 취소와 같은 악성 루머와 티켓 판매 부진에 시달렸고, 이는 실질적인 티켓 판매 부진으로 이어졌다. 결국 슈퍼소닉은 계획된 이틀 개최에서 하루로, Global Gathering은 기대에 못 미친 라인업을 공개하며 흥행에 실패했다.
1971년에 시작된 대한민국 뮤직 페스티벌 산업은 ‘포화 상태’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준비 정말 많이 준비한다. 차별성이 있는 콘셉트뿐 아니라 셀러브리티들을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뮤직 페스티벌의 본질은 결국 ‘라인업’이다. 사람들이 페스티벌에 가는 이유는 접하지 못한 뮤지션들을 한 자리에서 보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좋은 라인업을 꾸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어떻게 공개해야 하는가?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다시 한번 호리병의 법칙을 강조하고 싶다. 앞으로도 성공한 페스티벌들은 호리병의 법칙을 따를 것이다. 가장 먼저, 빨리 소비자에게 페스티벌을 각인시켜야 개최가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호리병의 법칙. 간단하지만 강력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