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라•일•한 도서관

스몸비의 폰카 에세이

by 아문선
"도서관이 있다는 그 자체가 인류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증거다."

-T.S. 엘리엇 -



"뭐 하고 지내세요?"

물론 심장 떨리게 좋아하는 것들이 있다. 늦게 시작한 클래식 기타가 있고, '브런치' 발행 후 못난 글로 상처를 받는 초보 작가이지만 글쓰기가 있다. '음악'과 '문학' 두 영역은 엄정한 잣대가 있어, 함부로 세련된 모습으로 포장하긴 신성한 영역이다.


그럼 이건 어떤가? '책 탐험가', 만 권 읽기 도전 중이니, 묻는 이에게 '책 탐험가'라 즉답을 해도 허세쟁이로 각인되거나 사회에 분란을 일으키는 일은 아닐 것이다.


|걷다가 만난 도서관

2025년 12월 2일은 라오스 인민공화국 수립 50주년을 기념하는 날이다. 반에 반도 남지 않은 삶은 두께 때문일까? 휴일 아침의 자투리 시간조차도 금쪽같이 귀한 요즈음이다.


'무엇을 할까?'

도서관을 찾기 위해 구글 맵을 켠다. '도서관'을 검색하니 비엔티안 시립 도서관(VIENTIANE CAPITAL LIBRURY)이 깜빡거린다.

공무원 워라벨(Work-Life Balance)이 철저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공휴일 시립 도서관 개관이란 있을 수 없다는 확신을 품고 탐험의 길을 나선다. 역시 휴관이다. 휴일에도 찾아오는 무분별한 탐험가로부터, 미지의 생태계를 지키려는 도서관측의 단호함을 엿볼 수 있다. 붉은 현수막과 손가락 두께의 견고한 쇠창살문이 탐험가로 하여금 그 너머의 호기심을 더욱 불러일으킨다.


|일본 JICHIRO

다음날이다. 어제 확인한 개관 시간에 맞추어 다시 도전한다. 비엔티안 시립 도서관은 라오스 국가주석궁과 파두싸이(PATUXAI)를 잇는 란쌍대로를 따라 걷다 보면 파두싸이 언저리에 있다. 위치만큼은 비엔티안 최고의 핫 플레이스(Hot Place)이다.


활짝 열린 쇠창살 정문을 지나 마주한 알루미늄 새시 유리문 옆에는 도서관의 유례를 소개하는 현판이 보인다. 세계 2차 대전으로 많은 나라에 민폐를 끼친 일본 자금이 얼굴을 내밀었다. 2006년 일본 지방정부 노동조합(JICHIRO)의 자금 공여로 도서관이 건립되었다는 수혜국의 예의 바른 설명이다.

일본 이라면 심사가 뒤틀리는 심보이지만, 책 냄새라도 맡고 싶어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선다. 예상보다 유리문은 소리 없이 부드럽게 작동한다. 더구나 밀어도 되고 당겨도 되는 아주 합리적인 구조이다.


국위 선양차, 도서관 사서에게 예의 바른 인사를 건넨다.

"한국사람입니다만, 도서관을 이용 가능할까요?"


어설픈 영어에 어설픈 영어 답변이다.

"노 쁘라블름"

하품도 하다 하다 지친 사서가 반색을 한다.


|아~ 푹 익은 책 냄새, 좋다

나무 책상과 나무 의자, 그리고 나무 책장.... 바로 이 깔 맞춤은 50년 전 중고등학교 시절 보았던 도서관의 풍경이다. 털털털 돌아가는 냉방기 소리와 함께 몰려오는 이 묵직한 책 냄새, 그 너머에는 신비스러운 세계가 숨어 있다는 확신이 나를 끌어당긴다. 교실 6개를 합한 크기의 열람실과 서가는 3명의 사서가 지키는 횅한 공간이었다.


|오~ 마이 갓

반전이다. 반가운 반전이다. 물도 산소도 희박할 것 같았던 탐험지에 푸른 녹음이 우거지고, 풍성한 과일나무와 황금벌판이 짠~ 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곳에는 주인도 없어, 맨몸으로 등장한 탐험가도 마음껏 챙길 수 있지 않은가. 시, 소설, 수필, 자기 개발서, 철학..... 한글 도서가 서울 동네 도서관 정도의 규모이다.

일본 노동단체가 건립한 도서관에 한글 책이 슬그머니 한 다리 걸친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한 탐험가의 흥분된 걸음으로, 이곳저곳 둘러보니 라오어 도서가 약 40%, 일어와 영어 도서가 10% 그리고 나머지 50%는 한글 도서이다.


|라•일•한 도서관

'이 놀라움의 정체는 무엇인가?'

라오스 교민이 운영하는 '라오스 책 나눔터'라는 단체에서 라오스에 거주하는 한인 학생들의 독서를 위해 기증한 것이다. 라오스 정부가 대지를 제공하고, 일본 노동단체의 후원금이 건물이 되고, 여기에 한국의 교민 단체가 도서를 기증하여 삼국 연합 |라•일•한 도서관| 만든 것이다.


라오어 도서와 약간의 일본어 및 영문 도서의 평균 연령은 30년은 되어 보인다. 심지어 2018년 기증된 한글 도서도 이미 10년에서 20년 묵은 도서들을 기증한 터라, 연식이 20년은 넘어 보인다.


딱딱한 나무의자와 책상, 빛바랜 표지 위로 세월이 내려앉은 책이 전부인 시금 털털한 도서관일 수 있다. 가난한 나라 라오스, 패전국 일본, 또 그 나라의 속국이었던 한국이 만든 |라•일•한 도서관|이 만들어준 그날 하루의 풍요로움은 100만 권 장서를 자랑하는 현대식 도서관만큼의 크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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