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번개"가 무섭다.

어느 철도 전문가의 말레이시아 에피소드

by 아문선


입사 후 5년쯤 일이다


H 상사로부터 말레이시아 │철도 건널목 시스템│ 입찰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H 상사는 해외 철도차량 사업을 활발히 진행하는 터라 해외철도입찰 정보네트워크가 잘 갖추어져 있다. H 상사로부터 소개받은 YEEHUAT사는 화교華僑 회사로 철도차량 유지보수를 주요 사업으로 한다. 사장인 KS SOH 그리고 동생인 PS SOH 가 사업의 주인이다. 여동생 에밀리가 경리업무를 본다. 전형적인 가족형 기업체인 셈이다. KS SOH는 큰 체구에 각진 얼굴이며 사업 수완가답게 큰 목소리와 호탕함이 항상 친근감을 준다. 실제 사업 파트너인 PS SOH는 나와 나이가 엇비슷하고 조용조용한 성격이라 죽이 잘 맞았다. 막내 여동생인 에밀리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작은 키에 작은 금테 안경을 쓰고 말없이 서류만 뒤적이는 스타일이다. 주택을 개조한 사무실엔 넘쳐나는 서류로 궁둥이 붙이고 앉을자리 찾기도 쉽지도 않다.


일반철도의 경우 지방도로를 지나는 곳이 많아 건널목이 많다


말레이시아는 오토바이 이용자가 많고, 무리하게 건널목을 횡단하는 용감함으로 인명사고가 많다고 한다. 지금 은 고가 차도를 건설하거나 지하차도를 만들어 쉽게 도심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LEVEL CORROSING PROTECTION│이라 부르는 건널목 안전 시스템은 열차 접근 또는 통과를 검지하는 궤도회로, 차단기 그리고 경고등과 스피커로 구성된다. 사업구간은 쿠알라룸프Kuala Lumpur에서 차량으로 2시간 거리인 GEMAS역에서 남쪽으로 50km 지점인 LABIS 역 구간의 16개소이다. 한적한 말레이반도 중부 지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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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널목 사업이 끝날 무렵이다


웃음 띤 PS SOH로부터 │열차 행선 안내 시스템│ 입찰을 참여하자는 요청이 있었다. 열차 행선 안내 시스템은 CTC로부터 열차 운행정보를 받아 각 역사에 열차 도착 정보를 전달하는 │PASSENGER INFORMATION SYSTEM(PIS)│, │PUBLIC ADDRESS SYSTEM(PA)│ 그리고 │MASTER CLOCK SYSTEM(MC)│이다. 비교적 단순한 제품으로 L 사에서 직접 생산하거나 주력사업은 아니나 전문 중소 업체들과 협력 수주는 가능해 보였다. PIS는 이전에도 사업 경험이 있는 은평구 소재 ATECK, 방송설비는 파주에 위치한 일신 그리고 CLOCK SYSTEM은 구로공단 소재의 한일이라는 업체를 섭외하였다.

*PIS : Passenger Information System 대합실 및 플랫폼에 설치되어 열차 운행정보 제공함

*PA: Public Address System 역구내 및 플랫폼에 열차 운행 음성정보 제공함

*MC : Master Clock System : GPS 시간 정보를 수신하여 열차 운행 시스템에 시간정보를 동기화함

*CTC : Centralized Traffic Control System 열차 통합 관제소


곤혹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CTC* 와 INTERFACE 그리고 방송용 메시지 녹음 문제다. 말레이시아 철도청KTMB 소개로 말레이, 영어, 중국어 3개 국어 가능 성우 섭외로 녹음을 마친다. 또한 CTC 시스템 INTERFACE를 위해 이태리 ANSLADO사와 미팅을 주선한다. 밝은 색 슈트를 차려입고, 옅은 회색 머리를 포마드를 발라 뒤로 넘긴 날씬한 몸매의 50대 ANSALDO ENGINEER는 단연 회의장의 스타였다. CTC로부터 열차 정보를 받으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그의 논리에 KTMB와 우리는 할 말을 잃고 회의는 그렇게 마쳤다. PIS는 CTC 인터페이스 프로토콜*PROTOCOL과 DATA FORMAT*이 필요하다. 공기에 쫓겨 KTMB*와 는 수작업으로 열차 정보를 임시 운영한다는 방안으로 정리된다. 사업 기간 내내 잦은 KTMB와 ANSALDO 분쟁으로 “KTMB 감독관은 피자도 먹지 않는다”는 소문이다.

*CTC : 열차통합관제센터

*KTMB : Keretapi Tanah Melayu Berhad

*프로토콜 : Protocol 데이터 통신을 위한 규약

*DATA FORMAT : 데이터나 파일 전송 시 데이터의 구조를 정의함



준공 후 일주일 정도 지난 시점이다


전 구간 PIS 현장설비 및 역 제어 설비가 일시에 소손燒損되는 사고가 발생한다. 지난 6개월 동안 설치한 48개 역사의 │행선 안내설비│가 한순간에 불타 버리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PS SOH가 보내온 자료를 보니 통신용 보드의 반도체 소자가 뚜껑이 열릴 정도의 소손을 입었다. KTMB 감독관, PS SOH와 머리를 맞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미 개통한 시스템이 한순간에 멈추니 승객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잠정적으로 낙뢰에 의한 전자 설비 소손으로 판단하고 낙뢰 전문 업체를 물색하였다. 한국EMI란 업체를 추천받아 급히 현장에 투입한다.


믿음이 가는 인상이다


현장에 찾아온 이는 40대 후반의 영어가 유창한 이영근 사장이다. 그는 해군 함정의 전자 설비 SURGE PROTECTION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전력 공급시스템 분석과 열차가 통과 시 발생하는 노이즈를 측정한다. 그리고 우리를 슬쩍 바라보더니, 원천적 전력공급 시스템 설계 잘못이라고 KTMB에 설명한다. 또한 그는 말레이시아는 년간 10 만회를 넘는 빈번한 낙뢰 발생 국이며. 직격뢰 보다는 수백 킬로 떨어진 곳으로부터 유도뢰가 원인으로 지적한다.


말수가 적은 KTMB 감독 HC LEE와는 사고 책임규명보다는 우선 문제 해결키로 한다. 이영근 사장은 그간 분석한 데이터를 제시하며 전차선과 통신선을 타고 들어오는 유도전류를 방호하면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의견이다. 전력 및 통신 선로에 각각 서로 다른 SURGE PROTECTOR*를 설치하는 것으로 긴급 설계도서를 제출하고 승인받는다. PS SOH와는 소손된 PCB BOARD와 ARRESTOR를 공급하면 YEEHAUT가 재설치하는 것으로 제안하고 그의 끄떡이는 고개로 합의된다.

*SURGE PROTECTOR: 전력선, 통신선을 타고 들어오는 과도 이상 전압을 방어하는 기기


언론에 보도되고 정치적 이슈화가 되면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장 리더인 PS SOH에게는 지금도 미안할 뿐이다. 호텔 숙소로 끌어당겨도 현장 근처 자동차에서 쪼그려 앉아 잠을 청한다. 야간작업을 포함 2교대 작업으로 일주일 정도 시간에 소손된 보드를 교체하고 ARRESTOR를 신규 설치한다. 대합실과 플랫폼의 행선 안내기는 이전 보다 더 화사한 불빛으로 반짝인다. KTMB도 더 이상의 CLAIM을 하지 않는다. 지난 한 달여 현장에서 콜라 한 캔, 바나나 한 송이로 뭉친 동지애 때문일 것이다.


나는 번개가 무섭다


우르 쾅쾅 천둥과 번개가 칠 때면 굉음도 무섭고, 도시를 태워 버릴 것 같은 방전妨電현상도 무섭다. 더 무서운 것은 한순간에 48개 역 PIS 설비가 불타버리는 악몽이다. 자동차 안에 쪼그려 잠을 자고서도 신들린 듯한 SURGE PROTECTOR 설치 작업을 하는 PS SOH, 점심식사는 사무실 근처 노점 바꿋떼*식당에서 간단히 해결하는 KS SOH의 소탈함도 잊히지 않는다.

*빠꿋테 :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 뿌리를 내린 복건성 출신 이민자들의 소개된 중국식 돼지 갈비탕 요리


말레이시아에서 약 25%를 구성하는 화교는 썩 환영받는 민족은 아닌 것 같다. 역사적으로 17C 영국이나 유럽 식민지 지배국이 말레이시아 자원 약탈을 위해 데려온 민족이다. 지금은 그들의 근면함과 교육열로 말레이시아 상류층을 이루고 있다. 상대적으로 빈곤층이 많은 60%의 말레이 민족을 위해 원주민 BUMIBUTRA우대정책이 있다. 즉, 정부 입찰 등에 말레이 업체를 우대하고 교육이나 취업에도 말레이 민족에게 특혜를 주는 제도이다. 말레이시아에서 화교는 “근면” 할까? 높은 “교육열”은 왜일까? “ 오래전 고난의 이민사가 준 유산일 것이다.


1900년대 하와이로 떠난 대한제국 노동자

│1930년대 중앙아시아로 떠난 강제 고려인 이주자

│1960년대 남미 떠난 한국인 농업 이민자

│1960~70년대 독일 광부와 간호사

│1980년대 20만 중동 건설노동자

│세계 시장을 누비는 수출역군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다.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기적일까? 우리가 누리는 지금의 풍요로움은 말레이시아 상류층을 이루는 화교의 근면함이나 교육열과 다를 것이 없다. 대한제국 노동자, 고려인 이주자, 농업이민자, 광부와 간호사, 건설노동자, 상사 맨과 수출역군 그리고 글로벌 선도기업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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