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화장실 다녀올 께요”

시즌 ⌜1⌟ 페르시아만을 걷다, 라히마 캠프

by 아문선

⌈나는 안다. 양손에 포수 글러브를 끼고 인생을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무엇인가는 상대에게 다시 던져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마야 안잴루|시인,작가|미국-


세상일이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특례보충역이란 방위산업체나 국가 방산 또는 기간산업체에 근무하는 전문 인력에게 병역 특혜를 주는 제도이다. 하늘에 나는 새도 떨어트리는 대통령 각하의 권력과 세상의 절반을 살 수도 있는 재력가 왕회장님의 계획은 엇나간다. 필요한 직종을 뽑고 유사한 국가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법을 바꾸어 특례보충역 편입을 한다는 마스터플랜은 금이 간다.


중동 건설현장에 파견된 공고생에 대한 병역특례 조항 법개정이 야당의 반대로 부결되었다 한다. 내용인즉, 몇 개의 사기업을 위해 법을 고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였다. 정부와 해당 기업은 현행법으로도 병역특례가 가능한 기능사 자격증을 재 취득하기로 방향을 바꾼다. 전체 공고생의 50%에 달하는 600명의 배관공과 제관공 두 직종이 문제이다.


중동 현장에서 쉽게 실습이 가능한 산소용접 국가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하는 것으로 결정한다. 한국기능검정공단에 접수하고 지정된 장소에서 시험을 보는 것이 상식이지만, 600여 명의 중동 취업자가 동시에 한국에서 재시험을 본다는 것은 난감한 일이다. 200명 단위로 나누어 3차례에 걸쳐 해외에서 실시하는 최초이자 마지막 국가기능사 2급 시험을 실시한다.


사막에서 국가기능사 자격증 따기

중동 현장의 공고생들에 대한 특례보충역 편입을 위한 정부의 배려가 주어진다. 단군이래 처음으로 국가 기능사 자격증 시험을 해외에서 실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시험 대상자가 가장 많은 쥬하이마 캠프에 훈련원을 개소하고, 원거리 근무자는 라히마 현장으로 전배 한다. 훈련기간은 3개월이다. 정상근무후, 매일 저녁 6:30에서 7:30분 한 시간씩 훈련을 하는 것이다.


훈련을 위해 재 배치된 공고생 중 일부는 쥬하이마 훈련원 근무로 내정된다. 200여 명의 훈련생을 위해 용접 절판을 자르고 가공하여 실습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원활한 실습을 위해서는 12명 정도의 인원이 필요하다는 용접 반장의 제안에 따라, 12명의 공고생은 룰루랄라 꿀보직에 푹 빠진다. 어느 날~ 불시에 노무과장이 훈련원을 급습한다. 공고생 1에서 공고생 12까지 한창 낮잠을 즐기고 있는 시간이었다. 혹시라도 근무에 어려움은 없는지 이것저것 묻더니 "수고" 하고 미국산 시보레 승용차로 조용히 사라진다.


다음날 사색이 된 용접 반장은 훈련원 근무 인원이 6명으로 변경되었다고 통보한다. 성질 급한 6명은 현장으로 전출이 되고, 남은 6명은 200명의 훈련준비 작업을 해야 했다. 이전엔 미니버스로 30분 거리를 출퇴근했지만, 6명으로 쪼그라들어 용접반장이 몰고 다니는 고물딱지 딱정벌레차에 포개어 출퇴근하는 신세가 된다.

중고 딱정벌레 차에 운전사 포함 장정 7명이라니.... 타고 내리는 모습에 동네 구경거리가 되었다. 앞자리 2명은 포개 앉고, 뒷자리 4명의 무릎에 1명은 누워간다. 그나마 용접반장이 체구가 작아 운전석에 비집고 앉아 운전이 가능했다.


화장실 다녀올게요

떨어지면 끝이다. 군대에 끌려가서 처음부터 33개월 풀코스로 복무해야 하는, 말 그대로 인생 리셋 버튼이 기다리고 있다. 이쯤 되면 시험이 아니라 생존 게임이다. 이런 절박함 때문인지 아무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는다. 알아서 모두 자~알 한다. 드디어 한국 기능공단에서 40대 초반의 감독관이 도착한다. 다행히도, 사우디아라비아 기후 중 최악인 7월이다.


그는 연신 땀을 닦으며

"어이쿠 고생들 많습니다. 좋은 결과가 있어야 되는데..."

그리고, 외화 획득에 대한 감사함도 잊지 않는다.


이론 시험은 없고 실기시험만 패스하면 된다. 산소용접 기능사 2급 시험은, 두께 8mm 강판을 세로 100mm, 가로 200mm으로 잘라 시험 절편을 만든다. 또 시험 절편은 용접 부위의 충분한 강성을 유지하기 위해 용접면을 약 30도 정도의 경사면을 그라인더로 깎아 베벨링|Veveling| 한다. 용접 절편의 180도 벤딩시험을 통과하려면 용접 뒷면에 빽비드|Back Bead|가 균일하고 이쁘게 만들어져야 한다. 전면부의 비드도 도톰하게 만들어져야 하고 언더컷|Under Cut|이 없어야 한다. 운이 나쁘게 슬래그|Slag|가 끼어 크랙이 가면 바로 탈락이다.


합격 여부는 꽤나 드라마틱하다. 먼저 두 개의 절편을 용접한 뒤, 그걸 다시 50mm 폭으로 잘라 벤딩 시험용 시편으로 만든다. 이 시편은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간다. 도착하면 한국 기능검정공단에서 직접 180도 벤딩 시험을 실시하고, 그 결과로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 말 그대로, 시편이 접히느냐 마느냐에 따라 인생이 접힐 수도 있다.


시험 당일이다. 감독관은 시험 응시서와 사람을 대조하고, 철인으로 공인 시험절편이라는 사실을 검증하기 위해 "검"이라 새긴 철인을 꽝 찍는다. 철인이 찍힌 시험 절편만이 유효한 것이다. 제출까지 제한 시간은 1시간이다. 아 이게 웬 말인가! 3개월 동안 훈련한 보람도 없이, 다수의 응시생들의 절규가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발을 동동 구르고, 흐느껴 우는 공고생도 있다.


난감한 사람은 감독관이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화장실 다녀올 께요! 화장실 어디 있습니까? "

넉넉한 몸집의 감독관님은, 슬그머니 "검" 철인을 책생에 올려놓고 화장실을 찾아 떠난다.


감독관 주위를 맴돌던 30~40명의 용접 실패생들은, 숨겨놓은 시험 편에 날렵하게 둥둥 "검" 철인을 다시 찍고, 다시 용접을 한다. 모두들 용접에 실패할 수도 있어, 여분의 시험 편을 준비해 둔 것이다. 그리고 변비가 심한 감독관은, 모두가 용접을 마칠만한 시간쯤, 큰일 보고 온 개운함으로 소리를 지른다.

"공고생 여러분, 이제 시험 마감 하겠습니다. 벤딩시험 편으로 가공하여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그럼에도 키 크고 얼굴이 하얀 명수도 떨어지고, 목포 촌놈 용철이도 떨어지고, 약 10% 공고생은 벤딩시험에서 탈락한다. 더럽게 운이 없는 공고생들은 장정으로 변신, 33개월 국가의 신성한 병역 의무 현장으로 끌려간다.


"슈크란¨~ 감독관님!"

¨슈크란:아랍어로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뜻


노고산, 특례 보충역 기본 군사 훈련

자격증 취득 후 특례보충역에 편입된다. 편입 후 5년이란 기간을 같은 회사에 근무해야 하는 노예 계약이 발효된 것이다. 귀국하자 병무청에서 잽싸게 날아온 건, 기본훈련 소집 통지서다. 그 용맹하기로, 김일성도 무서워하는 도시락 특례 보충역 훈련인 것이다. 우선 노고산 예비군 훈련장 인근 하숙집을 찾았다. 어느새인가 오일 달러를 버는 돈 많은 군사훈련생이 올 거라는 소문이 나고, 집집마다 하숙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지붕도 고치고, 마당도 시멘트 포장하고, 도배도 다시 하고, 심지어는 갓 결혼한 신혼부부의 신방까지 내놓았다.


돈 많은 군사 훈련생이 온다는 소문은 노고산 예비군 훈련소까지 퍼졌다. 총 3주 기본훈련이다. 첫 주는 제식훈련이다. 빨강 모자의 조교의 불타는 눈빛과 노고산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공고생들은 기가 죽었다. 조교는 본인과 비슷한 나이의 오일 달러맨이 미워서 그런 건 아니라는 해명이 있었지만, 왠지 조교는 돈 많은 공고생들에게 군의 매서움을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그래 이때는 이 방법이지. "차라리 사막에서 땅을 파겠다."는 군사훈련에 지친 공고생들은 대표를 뽑는다. 그리고 일정 금액을 각출, 중대장을 구워 삼기로 결의한다. 코가 삐툴어지게 술을 마시고 이제 형님 동생하는 사이가 되었다.

"기합 주면 되면 되나!"

"제대로 알려 줘야지!"


부하를 사랑하는, 중대장의 불효령이 계속되고, 중동 건설 노동자의 군사훈련은 야유회가 된다. 노래자랑도 하고 장기 자랑도 하고.




참고 문헌 및 관련 정보는 머리글에 게시하였습니다.


이전 10화제9화 “정기사와 류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