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 사막의 품에서, 우쓰마니아 캠프
-밀물|1979년 2월호|중동에 나가 있는 아우들에게|김현자|YWCA부회장-
▬공고생! 내가 잘 아는데
현장 배치를 위해 현장 노무과에 대기 중이다. 출국 동기이자 재 출국이라는 염 씨가 슬며시 귀띔을 한다.
"사우디에서는 절대 땀나도록 일하지 마이소."
"큰일 납니데이."
"요령껏 시간 때우는 게 상수인기라."
19세 공고생¨은 그저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눈만 껌뻑거린다.
¨공고생: D산업이 전국 8개 공고에 훈련 위탁 후 채용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기능직사원을 칭함.
현장에 배치되고 첫 작업은 콘크리트 타설을 위한 모래 작업이다. 덥기도 하고 또 염선배가 알려준 요령에 따라 살 살~ 내 삽질은 말 그대로 삽질일 뿐이었다.
에- 끼 여보슈- 씨발~ 일 하려면 제대로 하슈 ....
젊은 사람이 그게 멉니까?
지나가던 김반장 한마디 한다.
만나는 선배 기능공마다, 고요한 연못에 돌멩이를 던지듯, 한 마디씩 툭툭 던진다.
"공고생 내가 잘 아는데...." ,
"어이~ 공고생 나서지 마, 그냥 게겨. 이 더위에 어쩌려고 그래."
푹푹 찌는 사우디 건설 현장에서, 19세 새내기 공고생의 혼돈은 계속된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객지벗 10년 노가다 벗 20년
30대 용접공 정 씨와 40대 배관공 강 씨가 또 붙었다.
"몇 살이나 먹었는데 반말이야"
"아니꼬와?"
"아니꼬우면 집구석에 가만히 있지 뭐 하러 나왔어."
두분은 오늘도, 용접 후 그라인딩 작업을 누가 하느냐를 두고 한판 붙은 것이다. 배관공은 용접을 위한 그라인딩이니 당연히 용접공 일이다 하고, 용접하고 그라인딩까지 용접공이 하면 너는 머 하냐이다. 두 분 말씀 모두 맞다. 이럴 땐 가위 바위 보가 합리적이다.
현장의 갈등은 주도권 싸움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갓 부임한 20대 후반의 김 기사와 50대 초반의 총 반장 황 씨 사이의 갈등은 폭발 직전,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 있다. 현장 경험이 부족한 김 기사는 노련한 황 반장의 코칭을 받아 발주처의 Work Order 업무와 현장 관리 업무를 이어왔다.
그런데 오늘, 김 기사가 발주처를 단독으로 찾아가 Work Order를 받아오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 반장은 속은 뒤틀리고 말았다. 결국 그는 날카로운 한마디를 내뱉는다.
"김기사요~"
"그 일은 우리 일이 아닝기라~"
"코쟁이가 지내할 일을 떠넘기면, 우리 애들 우짜노~ 힘들다 아닝교."
두 사람의 불화는 현장소장까지 보고되었고, 최종적으로는 김 기사의 손을 들어주는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황 총반장은 담배를 꼬나 물고,
"나이도 어린놈이..."
12인치 파이프를 페인팅해야 하는 작업이었다. 두 사람이 양쪽 끝에서 시작해 중앙을 향해 칠해 나가는 방식이다. 건설 현장 초년생인 공고생에 비해, 숙련공 이 씨는 아무래도 더 빠른 속도로 페인팅을 진행한다. 정확히 반으로 나눠 표시한 것도 아니고, 대충 반쯤 칠한 뒤 이 씨는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곤 한다.
파이프 윗면의 도장을 마친 뒤에는 파이프를 뒤집어 아랫면을 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번엔 공고생의 완승이었다. 숙련공 이 씨의 솜씨 자랑과 몰인정에 심사가 뒤틀린 공고생은 꾀를 냈다. 윗면을 칠할 때 시간이 걸리더라도 최대한 꼼꼼하게 마무리해 둔 것이다. 결국 아랫면 페인팅 작업이 조금 남은 공고생이 자연스럽게 완승을 거두었다. 얼굴이 붉어진 숙련공 이 씨와 노가다 초보 공고생의 관계는 한동안 어색하고 빨개진 사이였다.
"미안해요! 이 씨 아저씨~" 나이도 어린 공고생이 더 열심히 해야 했는데.
건설 현장의 근로자는 억센 사람임에 틀림없다. 좋게 말하면 생활력이 강하고, 건강한 사람이다. 중동건설 현장에서 뛰는 기능공은 20대 후반에서 30대 그리고 반장급은 40대이다. 50대 이상은 보기 드물다. 그럼에도 40~50대 기능공도 있다. 이분들의 포지션닝이 아주 어려운 것이다. 조금 까칠한 20~30 기능공은,
"노가다 위아래 10년 아닝교~"
그래도 듣는 40대는 기분 나쁘다. 흙투성이 모래투성이로 주름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일도 험하니 말도 험하다.
"잘 나왔다!"
"그래 잘 나왔다. 우짤래~"
"사우디 체질이야 ~"
▬세계화의 원조, 중동 건설현장
군산에서 오신 김반장 님, 엉덩이에서 꺼낸 수첩을 꺼내, "오늘에 할 일", 업무 지시를 한다. 머리가 커서 안전모는 항상 머리 꼭대기에 매달려 있고, 아람코 포맨|Foreman|이 선물한 보안경을 꼭 끼고 나타난다.
"다 모였는가?"
"1조는 발브|Valve| 남바 345 삿보도¨ 챈지|change|여. 공구리 깨려면 오함마¨하고 빠루¨준비 혀. 사게부리¨도 필요할겨." 콩크리 깰 때 안전사고 조심하고.
"2조는 야리끼리¨ 할랑가? 플랜지|Frange| 번호 487번과 517번 볼팅|Bolting| 작업 이여", "아시바¨ 설치가 필요할겨. 반생이¨ 넉넉이 챙기고, 반생이 기리빠시¨ 아무 데나 버리지 말고, 시마이¨ 잘혀." 어제 양놈 포멘이 클레임|Claim|¨ 걸었어. 시마이가 엉망이라고." 어디 보자 3조, 자네들은,
"3조는 도라무|Drum| 넘바 298 뺑끼작업이여. 녹 제거가 안되면 헤라¨질 좀 하고, 프라임|Prime| 부터 피니시|Finish|까지 데나오시¨ 없도록 꼼꼼히 하더라고잉"
"에또~ 머시냐, 작업 중 할라스¨ 바람 불면 바로 철수하고, 얼음물 하고 소금 넉넉히 챙기더라고잉~"
"아침부터 꿉꿉한 게 날씨가 머리 벗거지게 생겨부러써."
한국어를 밑반찬처럼 깔고, 일본 노가다 용어에 콩글리쉬, 거기에 약간의 아랍어까지 버무려야 한다. 멀리서 미국인 슈퍼바이저 Mike가 보이면 “넘버르 원!” 하고 엄지 척을 날린다. 그게 바로 하루의 시작이다. 중동 건설 현장은 1990년대를 강타한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의 원조였다.
▬주름진 세상을 살았지만, 사실은 괜찮은 사람들이다
▪"나가 할거니께, 동상은 좀 쉬더라고... " "힘든 일은 먼저 나서는 여수 배관공, 김 씨 형님",
▪콘크리트 제거 작업으로 공고생 손가락 상처에 "가슴 아파하던 대전 잡부, 안 씨 아저씨",
▪땀 흘려 번돈으로 고향에 돌아가 송아지를 키워 보겠다는 "딸바보 밀양 철근공, 박 씨 아저씨",
▪문교부 해택을 받지 못해서 글을 잘 모른다고 "글 공부하는 개봉동 목공, 김 씨 아저씨",
▪하대 받는 잡부지만, "꿈은 글 쓰는 작가라는 봉천동 잡부, 류 씨 형님",
▪부모님 얼굴도 모르고 홀로 자랐다며 조그만 용달차라도 사서 "자립하겠다는 광주 운전기사, 서 씨 형님",
▪사업실패로 절망에 이르는 부채를 앉고, "중동을 선택한 대구 전기공, 김 씨 아저씨",
▪여기서 모은 돈으로 "결혼도 하고 집도 장만하겠다는 태국인, 아따퐁",
▪웃기만 하는 "방글라데시 아잠"
그들이 중동 건설 현장의 노동자이다. 비록 옷은 땀에 젖었고, 피부는 검게 그을렸으나, 생동감이 있고 편안한 사람들이다. 삶이 고달파 쉽게 화를 내고, 쉽게 웃는 그들은 괜찮은 사람들이다. 통근 버스의 속, 쪼그리고 부족한 잠을 청하고, 압둘라 수건 한 장으로 "할라스 바람"에 맞서는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한 통의 편지에 그리운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선 하고 부드러운, 주름진 세상을 살았지만, 사실은 괜찮은 사람들이다.■
◧참고 문헌 및 관련 정보는 머리글에 게시하였습니다.
◧중동 건설현장 외국어 용어
¨기리빠시|일본어: 짜투리
¨데나오시|일본어: 재시공
¨데모도|일본어: 보조
¨반생이|일본어: 철사
¨사게부리|일본어: 수직 추
¨삿보도|일본시 영어: 서포트, 지지대
¨시마이|일본어: 끝내다
¨아시바|일본어: 비계
¨오사마리|일본어: 정리 정돈
¨야리끼리|일본어:도급, 할당제
¨빠루|일본어: 긴 장도리
¨헤라|일본어: 일본어 주걱, 주걱처럼 생긴 Scraper
¨할라스|아랍어: 끝나다- 일이 끝나거나, 모래 바람이 심하게 불어 일을 마칠때 많이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