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그림자

VOL.2 / 2023. 3월호. 시화로 전하는 시_5

by 숨 빗소리

시화로 전하는 한 편의 시




원목을 잘라 만든 탁자나 도마 속에는

검은 무늬가 있는데

그건 나무를 닮은 것 같아서

나무가 자기 그림자를 속에 숨겨 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검은 부분은 사실 죽은 세포들이고

단단해진 그 세포들 덕에 나무는

꼿꼿하게 서 있을 수 있게 되는데

삶이 기댈 곳은 죽음뿐인 것 같다

죽은 사람을 생각하다 보면

내가 그 사람을 생각하려고 이렇게 살아 있는 거구나

희열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그 사람은 나의 그림자였다

처음엔 살아서 물을 나르는 것이었다가

햇볕에 반응하고 나를 푸르게 하는 것이었다가

죽어서는 내 속에서

너는 살아가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 하상만, <나무그림자>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할머니께서 해주시는 밥을 먹고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늘 멀리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무뚝뚝하고 화도 잘 내셨지만, 한 살 터울 누나와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우리 곁을 한결같이 지켜주셨습니다.


벚꽃이 피어나고 지던 몇 해 전 4월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제 꿈에 가끔씩 등장하십니다. 여전히 다정스러운 성격은 아니시지만, 그래서 저 역시 잘 표현은 못하고 못했었지만, 그래도 그 따뜻한 풍경들은 늘 제 가슴에 남아 있어서, 힘들고 고될 때,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할 때, '그래도 너는 살아가라, 살아가라'고 말씀하십니다.


138억 년 나이의 우주와 46억 살의 지구 역사를 생각할 때 우리 삶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짧은 삶들이 이어지고 이어져 우주와 지구의 긴 밧줄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 한 사람, 한 사람의 죽음과 희생이 마치 줄의 매듭처럼 우리 가슴과 다음 세대의 가슴을 이어주고 있다는 생각.


내가 당신을 잊는다면 그것은 우리 삶, 긴 우주의 매듭을 스스로 풀어버리는 것이겠지요. 그루터기에 앉아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내 가슴속에 담긴 나의 그림자, 당신들을 잠시 생각해 보고픈 봄의 시작입니다.






<숨 빗소리_ 3월_시화로 전하는 한 편의 시>

('시화로 전하는 한 편의 시'는 수시로 업데이트됩니다. )



숨 빗소리 - 발행인 겸 편집장. 스쳐가는 장소에서 건져올린 시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과 사랑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을 시와 산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용 시 - 하상만, <나무그림자> 계간 『문파』 2023년 봄호 발표

하상만 시인 - 2005년 <문학사상> 등단. 김장생문학상, 김구용시문학상 수상. 시집 <추워서 너희를 불렀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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