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노래

VOL.3 / 2023. 4월호. 시화로 전하는 시_7

by 숨 빗소리

시화로 전하는 한 편의 시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면


서둘러 날개를 입고 집으로 돌아가는 새들처럼

하나둘

우산을 입었다

지금도, 그 옛날에도


그다지 진보하지도 퇴보하지도 않은 채

가장 평범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빗물이 떨어지면


아주 천천히 자신의 귓속으로 파고드는 여린 빗방울 소리를 위해

조금씩 우산은 넓어지고

우산의 안쪽은 왠지 사람의 귀를 닮았다는 생각

젖은 산책로를 따라 조금은 다른 인생이 시작되고 싶을 때

우산을 써도 젖어가는 한쪽 어깨, 사랑을 해도 한 구석쯤은 고독한 인간의 마음이란


오랜 역사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평범한 원리처럼,

고전적인 빗물처럼

젖은 새들의 날개가 아름답다는 생각 같은 것


축축한 산책로에

금세 지워질 이름으로 함께 음각의 문장을 새기고, 새기고


영원할 길은, 영영 기억되는

실패하지 않는 최초가 되는 것이라 믿으며

비 오는 날 집으로 돌아와

우리는 당신의 가장 보통의 방에서, 젖은 새가 날개를 입고 최선을 다해 그들의 둥지로 돌아가듯이, 사람들이 우산을 입고 지붕 밑 세상으로 들어가 잠들듯이


너를 입었다, 당신의

목과 어깨와 두 팔과 발목까지를 천천히

내게 입히며


비에 젖으며


창밖으로 네가 지은 우산의 노래를 듣네,

- 왜 아픔을 털어놓을수록 우리는 조금씩 더 외로워지는 걸까요


우산은 매번 망가지고 잃어버려도 왜 불멸하는지


평범한 사랑을 최초로 발명한 인간의 감정처럼

더불어 완벽하게는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젖은 어깨처럼, 축축한

날개처럼


젖고 또 젖고 말라갈 것이다

다시 젖고 젖어들어 끝내 완벽하게 우리는

사라질 것이다




- 허민 <비의 노래> 전문






비 오는 날입니다. 울긋불긋 숲의 버섯들 자라나듯, 옥상 위에서 거리를 바라보면 빨주노초파남보 다양한 우산들이 하나둘 펴지는 모습이 보일 듯합니다. 허방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의 동심원은 마음의 문을 노크하는 손가락들처럼 느껴지고. 평소 닫고 있던 딱딱한 문이 물에 젖어 부드러워지면서 나도 모르게 열리는 아침.


우산을 잃거나 잊고 온 누군가에게, 자신의 우산을 기꺼이 씌어주며 젖어가는 한쪽의 어깨를 생각합니다. 그 젖은 어깨는 어느 쪽이든 아름답지요.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참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살아남는 우산의 발명. 비와 우산.


흰 종이 위에 펜 하나를 올려놓듯이, 오늘의 젖은 길 위에는 당신의 우산 하나가

인생의 펜처럼 아름다운 문장 하나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숨 빗소리_ 4월_시화로 전하는 한 편의 시>

('시화로 전하는 한 편의 시'는 수시로 업데이트됩니다. )



숨 빗소리 - 발행인 겸 편집장. 스쳐가는 장소에서 건져올린 시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과 사랑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을 시와 산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용 시 - 허민 시집 <누군가를 위한 문장> 중 <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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