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나
- 이창호
2014년 4월 16일 아침.
인천에서 출발한 배가 갑자기 뒤집혔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제가 인천시교육청을 출입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안산 단원고 아이들이 승선했고 모두 구조될 거라는 뉴스가 다시 나왔습니다.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점심을 먹으러 나갔습니다. 이때까지 승선인원이 몇 명인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공무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시교육청은 경기도교육청에서 상황을 전해 듣는 모양이었습니다.
무사히 구조한다는 TV 뉴스는 말을 바꿨습니다.
대형참사. 수백 명의 단원고 아이들, 수십 명의 인천사람들이 수장됐습니다.
같은 부서 선배를 따라 청해진해운이 있는 연안부두 여객터미널로 갔습니다.
세월호 취재 붙박이가 됐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도 붙박이를 몇 명씩 두었습니다.
처음에는 ‘4.16 참사’로 부르다, ‘세월호 참사’로 바뀌었습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터미널에서 ‘뻗치기’를 했습니다. 청해진해운이 기자회견을 했고 희생자 가족도 청해진해운을 찾아와 항의했습니다.
2014년 4월 21일 붙박이 하던 시절. 터미널 앞에서 시민단체가 세월호 선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터미널에는 청해진해운뿐 아니라 한국해운조합 등 관계기관들이 있어 검찰이 압수수색을 나오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침몰 원인, 청해진해운과 ‘해피아(해수부+마피아)’라 불리는 사람들의 비리 등을 캐내는데 몰두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희생자와 유족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에 소홀했습니다. 이제야 반성합니다.
진도 팽목항에서 뻗치기 하던 일부 기자가 유족에게 상처를 줬고 이 때문에 ‘기레기’라는 신조어가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희생자와 유족들을 생각하기보다 ‘단독’ 기사를 쓰고 싶어 하는 기레기였습니다.
두 달 정도 붙박이 생활이 끝나고 단원고에 가봤습니다. 터미널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단원고를 찾아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더 부끄러웠습니다.
이후 저는 인천에 꾸려진 일반인 희생자와 가족들의 한(恨)을 듣긴 했으나 단원고 아이들과 가족들 이야기는 직접 듣지 못했습니다.
세월호와 쌍둥이 배라 불린 ‘오하마나호’를 타봤습니다. 침몰 당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해양경찰이 마련한 자리로 기억합니다.
그 배 위에 올라 선실을 바라보니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따르다,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의 한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까마득했습니다.
유월이 다가오자 제가 다니는 회사는 세월호 참사보다 지방선거 취재에 열을 올렸습니다.
저는 세월호 참사 원인 중 하나인 고박작업(라싱·lashing)을 잘못한 회사를 취재하던 중이어서 지방선거보다 터미널에 있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편집국장이 이 회사와 관련한 기사를 내보내지 못하게 하더군요. 저의 부서장은 편집국장과 이 기사 보도여부를 놓고 싸우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편집국장이 부서장에게 보도를 막은 이유를 실토했습니다.
‘아들이 그 회사를 다녀요.’
그 회사는 제가 다니던 회사에 광고도 상당금액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부채를 갖고 있던 제가 그나마 ‘한 건’ 할 수 있었는데, 참 아쉬웠습니다.
그런데 세상 일이 감춰지나요. 결국 그 회사는 제가 아닌 다른 기자가 쓴 기사 때문에 수사를 받았고 처벌됐습니다.
9년 전 이야기를 지금 꺼내는지 궁금한 분들이 계실 텐데요.
세월호 참사는 청해진해운, 그 회사, 해피아 등 안전을 가볍게 여긴 어리석은 사람들 때문에 벌어진 인재입니다. 2022년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도 같습니다.
2022년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메시지들
9년 전 세월호 붙박이였던 저는 이제 기자생활 10년이 넘었습니다. 저는 9년 전 세월호를 기억하며 새로운 뻗치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10년이 넘어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아니라, 10년 전으로 역행한 우리나라를 눈 뜨고 가만히 바라볼 수 없습니다.
새로운 도전에 프로젝트를 고르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프로젝트 중 하나로 정해 제2∼제3의 세월호·이태원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일조하며 살겠습니다.
<숨 빗소리_ 4월 특별기고_ 그날의 기억>
이창호 - 현직 기자. 책 <그래도 가보겠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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