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향한 여정

VOL.5 / 2023. 6월호. 인겐의 여행 산문_4

by 숨 빗소리

산티아고를 향한 여정

- 인겐


<산티아고를 향한 여정>은 호주에 정착한 한국 청년이 자신의 오랜 목표인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 위한 다양한 준비과정, 실제 순례길 여행기를 매월 짧은 이야기 속에 담아 연재합니다.




2023년 6월 3일


안녕하세요. 다시 돌아온 인겐입니다.

우리가 해외여행을 가고자 할 때 가장 큰 걱정거리는 역시 ‘언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반적으로, 외국어는 우리가 한국에서 자라면 그 필요성에 대해서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교육을 제외하고). 그러다가 막상 해외에 여행을 나가려 할 때 언어의 차이는 우리의 발목을 잡곤 합니다. 요즘이야 번역기의 기능이 잘 발달해서 예전처럼 손짓과 발짓을 이용한 원시적인 의사소통은 필요 없습니다만, 번역기를 이용해도 의사소통 오류가 발생하기도 하고 자잘한 실수가 생기기도 합니다.


여행을 갈 국가의 언어를 알면, 그곳에서의 여행을 더 잘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여정을 준비하면서 스페인어를 배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공부해 두면, 산티아고 여정과 이후 여행뿐 아니라 훗날에도 유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실제로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인구는 대략 5억 명으로 영어보다도 많습니다. 그 인기를 실감하는 것이, 원래는 지난 2월부터 스페인어를 배우려고 했었는데 랭귀지 스쿨에는 이미 수업 수용인원이 가득 차 등록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처음 갔을 때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어를 배우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습니다.

호주는 이민국가로 다양한 출신의 사람들이 어울려 살고 있어서 각양각색의 외국어를 흔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영어만큼은 아니지만 또 다른 언어의 구사는 호주에서의 삶에서도 분명한 장점이 될 겁니다. 몇 번의 구글 검색을 통해 편리한 위치와 시간, 가격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랭귀지 스쿨과 연락을 했고, 그렇게 스페인어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걸음마 수준의 스페인어를 배우려는 대략 12명 남짓한 호주인들과 1명의 검은 머리 이방인이 교실에 모입니다. 처음에는 영어로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는데, 스페인어를 해야 하는 순간들이 오면 다들 하나같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저는 같은 입장이면서도, 이런 순간들이 속으론 참 꼬숩다(?)고 느껴집니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던 사람들이 다른 언어를 공부하면서 느끼는 혼란과 어려움들이 있을 겁니다. 그것들은 분명 우리가 영어를 공부하면서 느끼던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비유하자면, 그들에게는 영어로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하다가, 어느 순간 입과 귀가 막힌 기분이겠지요.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인겐입니다.

이름이 무엇입니까?

나이가 어떻게 돼요?

어디서 오셨나요?

무슨 일을 하시나요?


홀라, 코모에스타스

미놈브레 에스 인겐

꽐 에스뚜 놈브레

꽌토스 아뇨스 티에네스

데 돈데 에레스

아 케테 데디카스


노트를 뒤적이면서 발음은 어떻게 하는지 떠올리느라, 우리는 이런 정말 기초적인 문장들조차 버벅거리면서 마치 바보가 된 듯합니다.


스페인어는 매우 신기한 언어입니다. 알파벳은 영어와 매우 흡사한 모습이지만, 그 발음은 영어발음과 사뭇 달라서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사물을 지칭하는 명사나 행동을 표현하는 동사에도 남성성과 여성성을 부여해서 그 형태가 달라집니다. 엔지니어는 제가 남성이니까 인헤니에로, 여성이었다면 인헤니에라로 형태가 달라집니다. 게다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에 따라서도 동사를 달리 써야 하는 등 스페인어 문법은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산티아고를 가는데 이렇게 스페인어까지 꼭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제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저는 “굳이…?”라는 답변이 먼저 떠오릅니다. 솔직히 스페인어를 한마디도 못하더라도 산티아고를 다녀오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모국어가 스페인어가 아닌 많은 사람들이 무사히 산티아고 여정을 마치곤 합니다. 그렇다면 이 언어를 배우려고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제게 있었을까요?



저는 다만,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에 대한 자책과 후회가 있습니다. 일, 사랑, 공부, 가족... 뭐든 후회 없이 만족할 만큼 최선을 다했다 할만한 일은 찾기 힘든 듯합니다. 현재도 계속 부족함을 느끼면서 자신을 채찍질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게으르지 말아야 할 부분에서 게으르고, 엉뚱하게 다른 곳에서 부지런했습니다. 노력했으니 이만하면 됐다,라고 애써 자신을 위로하는 순간들도 저를 괴롭게 합니다. 그게 정말 최선이었나?? 분명 제가 할 수 있는 답은 ‘노’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샌가 핑곗거리를 만들어서 타협하고 있는 제 자신에게 또 한 번 실망하곤 합니다.

저는 잘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좀 더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지금의 노력으로, 후회로 남은 순간들을 되돌리고 싶습니다. 게을렀던 순간들, 올바르지 못한 결정을 내린 순간들, 충동을 이기지 못한 순간들... 생각해 보면 중대한 순간에 ‘만약 내가 그때…’라고 생각할 때가 참 많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들을 되돌리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다만 그럼에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그런 순간들이 다시 찾아오지 않게 노력하고, 찾아오더라도 이번엔 후회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고 잘 맞이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상당히 추상적이고 어렵지만, 간단히 말하면

회상컨대 '음… 그게 최선이었지, 더 할 순 없었어.'

그렇게 노력하고 싶습니다.


언제까지나 항상 노력하기란 쉽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어느샌가 한쪽에서 소흘해지는 저를 발견하곤, 다시 후회와 자책을 하며 채찍질하는 순간들이 찾아오곤 합니다. 때론 어떻게 헤쳐 나아가야 하는지 길을 모르겠는 순간들도 찾아옵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이런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했고, 즐기려는 ‘노력’을 하고자 합니다.

산티아고 여정을 제가 처한 상황을 고려해 준비하고 성취해내려고 하니 곱절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준비하면서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 남기고자, 저는 다음 인사말을 외우러 가보겠습니다.



Hola, soy Inguen

Naci en Corea, pero ahora vivo en Australia.

Yo trabajo como ingeniero

Me escanta escalar, andar en bicileta, y correr estoy aqui en espana para hacer el camino de santiago

Encantado de conocerte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인겐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서 호주에서 살고 있고,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습니다.

클라이밍, 사이클링, 달리기를 좋아하고 스페인에 순례자의 길을 걸으러 왔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네 번째 에피소드 끝)




<숨 빗소리_ 6월 신작원고_인겐의 여행 산문> _ 여행 산문은 4-5주 주기로 업데이트됩니다.


인겐 - 남반구 하늘 아래 인생 개척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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