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향한 여정

VOL.6 / 2023. 7월호. 인겐의 여행 산문_5

by 숨 빗소리

산티아고를 향한 여정

- 인겐


<산티아고를 향한 여정>은 호주에 정착한 한국 청년이 자신의 오랜 목표인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 위한 다양한 준비과정, 실제 순례길 여행기를 매월 짧은 이야기 속에 담아 연재합니다.




2023년 7월 1일


안녕하세요. 얼마 전 주말에 빅토리아 주에 있는 그램피언즈로 여행을 다녀온 인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최근 다녀온 여행을 주제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여행의 테마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운동 ‘클라이밍’이었습니다.


요즘 전세계적으로 클라이밍의 인기가 해마다 오르고 있음을 느낍니다. 2022년 도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그 인기는 더욱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제가 사는 호주뿐만 아니라 일본, 싱가포르, 뉴질랜드에서도 암장(巖場)을 가봤는데 그 인기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2016년경 제가 뉴질랜드에서 머무를 때 그곳에서 클라이밍을 경험할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을 온전히 즐길 여유도 없었고, 또 잇따른 부상들로 인해 금방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이년여 시간이 지난 2021년 오월 무렵이 되어서야 꾸준히 클라이밍을 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졌습니다.


저는 주로 실내 암장을 다니는데, 간혹 친구들과 함께 남호주 안에 있는 가까운 자연암벽으로 클라이밍을 나가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모리알타를 필두로, 빌레어, 빅터하버 등 다양한 곳으로 가보려고 노력합니다. 갈 때마다 항상 좋은 추억들을 만들고 오는데, 우리에게는 특히 오래전부터 계속 이야기해 오던 계획 하나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램피언즈로 클라이밍 및 하이킹 여행을 떠나는 겁니다.



그램피언즈는 호주에서 클라이밍의 성지라고 불리는, 캠핑과 하이킹, 클라이밍으로 인기가 높은 소위 ‘핫플레이스’입니다. 빅토리아 주와 남호주 주 경계선 가까이에 있어서 제가 사는 애들레이드에서 멜버른으로 5시간 조금 넘게 운전해서 가다 보면 마주하게 됩니다. 가고 오는 데에만 10시간 넘게, 그니까 하루를 꼬박 보내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가정이 있는 친구들이 시간을 내기란 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간절히 바라던 꿈을 우리는 마침내 실행에 옮길 기회를 찾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일정을 조절할 수 있는 유연함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로가 매우 바쁘게 살아간다는 것을 알아서 쉽사리 말 꺼내기가 어려웠습니다. 다행히도 구체적인 날짜를 포함한 누군가의 제안은 그룹에서 긍정적으로 수용되었고, 꼭 가자는 벼리어진 의지로 찬찬히 다듬어졌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간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여행의 징크스란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총 3명이므로 차 한 대에 다 같이 가기로 했고, 차 주인인 친구가 차량 종합 검진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당일 아침, 타이어에 꼽힌 커다란 나사를 발견하게 됩니다. 급하게 타이어를 수리하고 나서 우리는 짐을 다 싣고 이제 흥분에 들떠서 출발을 하자고 하는 순간, 이번엔 시동이 걸리지 않습니다. 배터리 수명은 점검 때 따로 물어서 테스트를 진행했지만 분명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배터리 매장의 점원 말로는 배터리가 점검 때까진 멀쩡하게 자기 일을 다하다가 별안간 수명이 다하는 경우도 충분히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저희는 출발하기 전에 이런 문제들을 발견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서로에게 얘기했습니다. 타이어나 배터리가 호주의 길고 긴 고속도로 중간이나 인적 드문 산속에서 더 큰 문제로 이어졌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여행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순간까지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을 맞닥뜨려도 웃으면서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지나간 모든 경험들은 훗날에 좋은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실제로 다녀온 뒤 만나서 그램피언즈를 회상할 때마다, 우리 중 누군가는 항상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내뱉곤 합니다. “헤이, 브라더 기억하지? 우리 그때 하마터면 못 갈 수도 있었잖아. 망할 타이어며 배터리며, 그래도 참 다행이지. 더 아찔할 수도 있었으니까. ㅋㅋ”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드디어 여행 당일. 들뜬 마음으로 브런치 카페에 들러 모닝커피와 당근케이크빵을 들고 우리는 출발했습니다. 차 안에서는 발리우드(Bollywood : 뭄바이의 옛 지명인 봄베이와 할리우드의 합성어로 양적으론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인도의 영화 산업을 일컫는 단어 / 편집자 주)의 영향을 많이 받은 친구들의 흥겨운 플레이 리스트가 이어졌습니다. 그 리듬에 맞춘 추임새와 좌석에서의 춤사위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한 구절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흥 자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란 어렵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화장실에 들르면서, 커피를 한잔 더 주문하고 캠핑하면 빠질 수 없는, 불 앞에서 마실 와인까지 구매했습니다. (참고로 호주 와인은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하지만, 남호주 특히 바로사 벨리나 멜클라렌 베일 지역에는 수많은 유서 깊은 와이너리 및 포도농장들이 즐비합니다. 그 유명세만큼이나 맛 또한 일품이라, 여행객들뿐만 아니라 현지 로컬들에게도 직접 방문해 다양한 와인을 맛보는 ‘와인 테이스팅’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저희가 묵을 캠핑장이 있는 곳은 그램피언즈 북쪽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호샴(Horsham)입니다. 이곳에서 10분 정도만 지나면 그램피언즈로 향하는 길을 나타내는 초록색 이정표를 만날 수 있고, 그 이정표는 부슬비 내리는 날씨에도 분명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정표를 따라 꺾인 길로 들어가면 바로 달라진 풍경과 분위기를 실감할 수가 있습니다. 하늘을 덮은 구름 때문에 쉽게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커다란 산맥들이 옅어진 구름 사이사이로 보입니다. 그렇게 엿보이는 조각산들이 때로는 산세나 위엄을 더 가중시켰고 우리는 그 매력에 압도되었습니다. 어느샌가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던 우리는 트레일러에 짐을 실은 채로 천천히 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좋아!! 천천히 주변 풍경을 만끽하며 우리는 어디쯤이 캠핑장소이고, 하이킹 코스와 클라이밍 루트들은 어디쯤 있을지 이야기하기 바빴습니다.



그렇게 비포장도로를 얼마나 달렸을까요? 산속 꾸불꾸불한 초행길을 지도에 의지해서 결국 캠핑장을 찾았습니다. 호주에서 캠핑은 하나의 문화로, 역시나 이런 오지인 산골에서도 이미 먼저 터를 잡고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일부는 분명 우리처럼 클라이밍을 하러 왔음이 틀림없습니다. 클라이밍의 성지라 불리는 곳에서 캠핑을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죠. 우리는 예약한 터로 가서 자리를 펴는데 다 같이 의기합심하여 금세 준비를 마쳤습니다. 생각보다 조금 늦어진 시간, 해지기 전 등산이나 클라이밍을 조금 할 계획이었지만 일단 무사히 도착한 데 감사하며 하루를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불을 지피고 저녁을 먹으면서 가져온 와인을 즐기는 우리는 한껏 그 분위기에 취했습니다.



클라이밍이라는 운동 하나로 이 친구들과 함께 해온 시간이 적지 않습니다. 서로의 출신, 배경이나 환경, 무엇하나 비슷한 게 없이 클라이밍을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로 점차 서로를 알아가면서 믿고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간혹 다른 일로 손이 필요하면 서로가 서슴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곤 합니다. 대략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같이 땀을 흘린 듯합니다. 운동 ‘메이트’가 누구보다 의지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내 생명줄을 누군가에게 맡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신뢰와 믿음을 쌓는 데는 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클라이밍은 자칫 잘못하면 크게 다치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스포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서로의 준비상태, 장비, 주변 환경 등을 반드시 점검하고 시작합니다. 올라가는 중간중간, 자칫 떨어지면 다칠 수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가 저를 엄습해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파트너를 믿는 것뿐입니다. 물론 요즘 잘 발달한 장비들은 설사 줄을 놓쳐버린다 해도 풀리지 않을 안전장치가 되어 있어 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제 친구가 제 줄을 내려놓지 않고 잡아줄 것이라는 믿음이 조금 더 저를 클라이밍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친구들과 공유하는 것은 장비뿐만이 아닙니다. 경험자로서 가진 스킬이나 능력을 아낌없이 전수해주려고 합니다. 이는 파트너와 제가 할 줄 아는 게 많아지는 만큼 더 즐길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친구가 나에게 함께 더 멀고 높은 곳으로 가자고 하는구나’ 느끼는 순간입니다.


부모님의 별거를 계기로 방랑자로 살면서 외롭지 않은 순간들은 없었습니다. 아니 이전에 고향에 살면서도 늘 공허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면서도 외로운 순간들은 찾아온다고 들었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독립’이라는 욕망과 동기가 제가 가진 뜻 모를 불꽃의 장작이 되어줬습니다. 저의 불길을 올바르게 잘 잡아주는 불쏘시개는 아마 ‘운동’과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고국에 있는 벗들을 생각해봐도 이런 좋은 사람들과 제가 친구라니 자랑스러워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누군가에게 좋은 벗이고 싶지만 저는 아직 갈 길이 먼 듯합니다. 그저 이곳 호주에서도, 이런 부족한 저를 많이 아껴주는 좋은 벗들이 있다는 사실에 다시금 감사할 따름입니다.

(다음 편에서 흥미진진한 클라이밍 이야기가 더 이어집니다.)



(다섯 번째 에피소드 끝)




<숨 빗소리_ 7월 신작원고_인겐의 여행 산문> _ 여행 산문은 4-5주 주기로 업데이트됩니다.


인겐 - 남반구 하늘 아래 인생 개척 엔지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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