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잇 나무 (추모시)
VOL.6 / 2023. 7월호. 함께 걷는 길_3
by
숨 빗소리
Jul 2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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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잇 나무
- 허 민
내 것을
떼어
네게 붙이는 거
붙였다가
시간의
힘에
떨어지기도
하는 거
그렇지만 오래도록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눈에 띄게
기억하고
싶은 거
직접 찾아서
직접 붙여야만 하는 거
대신 붙여주지 않는 거
나 자신을 자신에게
내 이름을 네 이름에게
그녀는 어쩌면 자신의
자그마한 책상 위
캄캄하고
쓸쓸했던
사각의
공간
실눈 같은 전등 하나 켜놓고서
그녀 자신을 붙여 놓은 적
있었겠지
있었겠지
나는 할 수 있다
너는 최고야
라는 긍정의 문장들을
몸 위에 새겨 놓았겠지
마음에 붙여 놓았겠지
지루한 전공서적 속에
고단한 생들의 기출문제집에
어쩌면 골목길 노란 민들레 같은
위로의 문장 위에
그녀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붙였을지도
그렸을지도
살고 싶었던 눈부신 색채
간절했던 꿈의 문장
그런데 왠지 너무 쉽게
툭 하니 떨어지는
거
한 번 붙었다가 떨어진 것들
애써보아도 애써보아도
더 쉽게 사라지는
거
그녀가 남겼을 페이지 속
알록달록 포스트잇들이
그녀의 비문 위에
하나둘 점점
늘어나서
벼랑 아래의 손을
다른 손이 움켜쥐듯
떨어질 것 같은 파랑 위에
다시 떨어질 것 같은 노랑이
그 위로 아슬아슬한 분홍이
한 장 한 장의
초록이
쉽게 떨어지지만
거대한 무지개들은 한데 뭉쳐
살아있는 나무가
되는
거
나뭇잎 한 장 한 장
바람에 떨어져도
한 번 피어난 나무는 쉽게
꺼지지 않는
거
* 우리가 지켜주지 못해 유명(幽明)을 달리한 소중한 젊음을 추모하면서...
<숨 빗소리_ 7월_함께 걷는 길>
('함께 걷는 길'은 우리가 함께 하는 한, 언제든 다시 업데이트됩니다. )
허민
- 시 쓰는 사람. 시집 <누군가를 위한 문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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