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 / 2023. 8월호. 시화로 전하는 시_16
강릉 바닷가에 사는 아홉살 조카 서연이, 해먹에서 놀다가 갑자기 짖기 시작한다. 왕왕, 왈왈왈, 캉캉, 크앙크앙, 와릉와릉...... 산책길에 만난 이웃집 강아지 생각이 난 듯. 너무 오래 짖길래 한마디 한다. "목 아프지 않아?" "쉬잇, 지금 중요한 이야길하는 중이에요." 한참을 더 짖어대는 인간 아이가 눈부시다.
저런 때가 내게도 있었다. 아홉살 열살 열한살, 어린 동생들과 바닷가에서 조가비를 줍던, 바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 싶어서 한없이 귀를 낮추던 때. 이윽고 귀가 물거품처럼 부풀고 공기방울의 말이 내 몸으로 스르르 들어왔다 나가면서 바다와 대화하고 있다고 느껴지던 신비한 순간들이.
오전 내내 조카를 보며 잘 늙어가고 싶은 어른으로 딱 한가지만은 하지 않기로 한다. 네가 짖는 대신 개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치면 되잖아, 이런 따위 말만큼은 하지 않는 걸로 시인 이모의 소임을 다하는 시간. 눈앞의 동심이 눈부셔 여름 아침이 투명하게 왈왈거린다.
- 김선우 시 <쉬잇! 조심조심 동심 앞에서는> 전문
멍멍멍. 강아지 흉내를 내던 어릴 때가 있었어요. 강아지가 물 먹는 모습이 신기해서. 혀를 날름날름거리며 물그릇에서 홀짝홀짝 물 마시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여서. 저도 그 옆에 나란히 엎드려 제 물그릇에 혀를 내민 채 작디작은 강아지처럼 할짝할짝거렸지요. (물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어른들께 크게 혼이 나고 말았지만)
요즘은 산에 올라가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에만 산속 두꺼운 나무들을 만지며 말을 겁니다. 나 왔어. 잘 있었니? 사람의 말을 나무에게 하는 게 창피해서. 나무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치고 있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까 봐서. 어릴 적 저도 모르게 익힌 나무의 언어가 기억나지 않아서.
바쁘디 바쁜 일들을 끝내고 나서 모처럼 여유를 갖고 시집을 폅니다. 떠오르는 여름 해를 이제야 오래도록 쳐다보듯이. 여름 해가 활짝 펼치는 바다의 페이지들처럼. 시집의 파도를 따라 여름 아침이 투명하게, 투명하게 왈왈거리는 하루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