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또 가보겠습니다

VOL.8 / 2023. 9월호. 함께 걷는 길_4

by 숨 빗소리

[예고]검찰 특활비 등 예산 검증 시즌2, 9월 14일 최초 공개_뉴스하다

- 비영리독립언론 <뉴스하다> 유튜브 채널에서





그래도 가보겠습니다

- 한 신문사 내부고발자들*의 투쟁기를 다룬 책 제목을 빌려




나는 네가 아니면서 너였다

우리는 우리가 아니면서 우리였다

너를 대신해 내 안에서 우리의 잘못을 쓸 때

인간이란 더러워질수록 씻고 싶었다

거울 속 검댕을 바라보며

검댕을 비추는 거울을 깨부수는 짐승이

도저히 될 수 없을 거 같아서

얼음장 같은 물에 두 손을 담갔다

한겨울이 아닌데도 손가락이 시렸다

그렇게 부끄러웠던 손가락들이

따뜻하고 두툼한 주머니를 빠져나와

손가락들의 잘못을 서툴게 쓸 때마다

손가락들의 욕설과

손가락들의 주먹과

손가락들의 부당한 악수를

자판으로 고백할 때마다

하나둘 프레스에 눌려 잘려나가듯

나의 손가락들이 조금씩 조금씩

누군가에 의해 사라졌다

남겨진 손가락은 사라진 옆자리만큼

단단한 굳은살을 배로 나눠갖고

그들의 몫인지 빚인지

더 많은 반성을 공유했다

하나둘 전사하는 독수리 오형제처럼

줄어드는 다섯 손가락을 바라보며

그러나 곧 익숙해진 독수리 타법조차

더러운 먹이들을 놓칠 수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썩은 고기들을

이미 죽어서 죽은지도 모르는 부패한 주검들을

대체 누가 남아 처리할 것인가

나는 네가 아니면서 우리였다

남겨진 손가락들은 이 더러움을 벌해달라

더럽혀진 손톱, 발톱을 스스로 잘랐다

민머리가 새마냥 겉모습은 초라해졌지만

그러나 다시 비상하기 위해

남은 손가락은 또 한 번

날카로운 발톱이 되기 위해

폭풍우에 부러 제 몸 흔들며

머리카락조차 모두 빡빡 밀어버리는

부러지지 않는 가늘고 유연한

이름 없는 나무들,

그 헐벗은 깃대가 우리는 되어





* 그들은 한 지역언론사에 근무하며 부당한 내부의 관행과 불법, 언론의 정관재계 유착에 반대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지역언론노조를 설립했다. 처음 그 취지에 공감한 많은 노조원들이 있었으나, 사측의 압력으로 인해 갈수록 줄어들어 필자의 벗인 한 기자가 노조위원장을 맡았을 때는 그 숫자가 열 명이었다가 다섯 명까지 줄어들었다. 사장의 불법을 고발하고 처벌을 촉구하는 삭발식, 1인 시위, 투쟁기 발간 등으로 사측의 탄압과 징계에 맞서던 그가 소수의 벗들과 진정한 독립언론을 새롭게 만든다고 한다. 사회의 정의를 지키고 약자를 대변하는 진정한 언론의 가치를 일깨워준 그와 그의 동료들을 위해, 그들의 새로운 도약을 응원하기 위해... 부족하지만 이 한 편의 시를 바친다.




<숨 빗소리_ 9월_함께 걷는 길>

('함께 걷는 길'은 우리가 함께 하는 한, 언제든 다시 업데이트됩니다. )


허민- 시 쓰는 사람. 시집 <누군가를 위한 문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