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을 떼어 네게

VOL.8 / 2023. 9월호. 시화로 전하는 시_17

by 숨 빗소리

시화로 전하는 한 편의 시




내 것을 떼어

네게 붙이는 거

붙였다가 시간의 힘에

떨어지기도 하는 거

그렇지만 오래도록

내가 너에게

네가 나에게

눈에 띄게

기억하고 싶은 거

직접 찾아서

직접 붙여야만 하는 거

대신 붙여주지 않는 거

나 자신을 자신에게

내 이름을 네 이름에게

그녀는 어쩌면 자신의

자그마한 책상 위

캄캄하고 쓸쓸했던 사각의 공간

실눈 같은 전등 하나 켜놓고서

그녀 자신을 붙여 놓은 적

있었겠지

있었겠지

나는 할 수 있다

너는 최고야

라는 긍정의 문장들을

몸 위에 새겨 놓았겠지

마음에 붙여 놓았겠지

지루한 전공서적 속에

고단한 생들의 기출문제집에

어쩌면 골목길 노란 민들레 같은

위로의 문장 위에

그녀의 아름다운 무지개를

붙였을지도

그렸을지도

살고 싶었던 눈부신 색채

간절했던 꿈의 문장

그런데 왠지 너무 쉽게

툭 하니 떨어지는

한 번 붙었다가 떨어진 것들

애써보아도 애써보아도

더 쉽게 사라지는

그녀가 남겼을 페이지 속

알록달록 포스트잇들이

그녀의 비문 위에

하나둘 점점 늘어나서

벼랑 아래의 손을

다른 손이 움켜쥐듯

떨어질 것 같은 파랑 위에

다시 떨어질 것 같은 노랑이

그 위로 아슬아슬한 분홍이

한 장 한 장의 초록이

쉽게 떨어지지만

거대한 무지개들은 한데 뭉쳐

살아있는 나무가 되는

나뭇잎 한 장 한 장

바람에 떨어져도

한 번 피어난 나무는 쉽게

꺼지지 않는




* 우리가 지켜주지 못해 유명(幽明)을 달리 한 소중한 모두를 추모하면서...



- 졸시 <포스트잇 나무> 전문






출근은 했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네요. 오늘 전국 곳곳에는 공교육이 잠시 쉬어갑니다. 물론 그렇지 못한 곳도 있지요. 지방교육청마다 추모의 공간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어제도, 그제도 세상을 떠나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떠난 사람들의 사연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슬퍼하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차마 이야기를 듣기가 어렵습니다.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까닭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그 이야기를 따라가 봐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말해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애쓰시는 많은 분들이 계신데, 저는 함께 하지 못하는 이유만을 자신에게서 찾고 있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듭니다. 활활 타오르고 나서야 만들어지는 변화들. 불은 모든 것을 태우기도 하지만, 뜨겁게 달궈진 세상을 새롭게 제련하겠지요. 저 역시 작은 불꽃 하나라도 나에게, 우리에게 보탤 수 있을까요.




<숨 빗소리_ 9월_시화로 전하는 한 편의 시>

('시화로 전하는 한 편의 시'는 수시로 업데이트됩니다. )


숨 빗소리 - 발행인 겸 편집장. 스쳐가는 장소에서 건져 올린 시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과 사랑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을 시와 산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용 시 - 허민 <포스트잇 나무>, 웹진 <숨 빗소리> 7월호.

허민- 시 쓰는 사람. 시집 <누군가를 위한 문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