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그런 말을 들었다. 글을 쓰는 데에 거침이 없는 것 같다고 한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정확한 대답은 어떠한 되물음이었을지 모른다. 글을 쓸 때 무엇을 거쳐야 하는데요? 끝없는 생각과 숙고? 첨예한 단어 선택과 몇 번이고 되도는 퇴고? 나는 그런 식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 생각을 잇고 또 잇고, 너무 산발적이고 지저분한 것은 잘라낸다. 그렇게 쓰여지는 글엔 필연적으로 부스러기가 묻는다. 과자를 먹을 때도 부스러기를 흘리지 않는 법이 없으니 글도 그렇게 쓰는 것이 퍽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언젠가부터 이상한 결벽이 뿌리 깊게 파고들어 흘린 것은 무엇이든 즉시 닦아내야만 하는 강박에 시달리는 내가 글에 흘린 부스러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둘 수 있다니, 심지어 그 광경을 음미하고 마음에 썩 들어하기까지 할 수 있다니 퍽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대답은 또 다른 면에서 틀렸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글을 써야 할 뿐이다. 글을 쓰지 않고서는 아무 감정도 소화하지 못하는 때가 있을 뿐이다. '소화한다'는 글을 읽는 행위에 더 자주 붙여지는 동사이지만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읽은 글은 머리와 마음에 머무른다. 하지만 써야 할 글은 목구멍으로 올라온다. 나는 그것을 육성으로 토해내는 법을 몰라 글을 쓴다. 마음껏 토해 놓고 나만 보고 말 광경이니 괜찮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뜻하지 않게 이 흉한 광경을 지나치거나 목격하거나 어쨌든 담아 가고 만 눈길들에겐 사과한다. 나중에 제정신이 들면 벅벅 닦아내 버릴 때도 있다. 그렇게 이로운 일을 해내는 때도 있다. 문제는 제정신이 자주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목구멍 바로 아래에 해묵은 걱정거리, 미뤄둔 걱정거리,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내게 미룬 걱정거리, 우스운 걱정거리, 우스운 것이었으면 하고 두 손 모아 싹싹 빌다 못해 무릎이라도 꿇으라면 꿇겠는 걱정거리, 한숨 한 포대, 피곤하다- 두 자루, 내일로 미룰 걱정거리와 내일의 나를 걱정하는 걱정거리, 그런 것들이 꽉꽉 들어차 어떻게든 어디에든 토해 내야만 하는 심정이 되면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고... 단 한번도 이성적인 적이 없었던 불안과 손가락 끝이 저릿저릿한 강박, 당장 잠들어 기약없이 깨어나고 싶지 않은 충동, 지긋지긋한 회피와 회피를 정당화하기 위한 시간 확인의 순간, 그런 것들로 이루어진 일련의 터널 속을 걸어간다. 과거의 나는 죽은 사람이라, 죽은 사람이라는 건 내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그냥 원래 정신적 의미의 사람이란 건 매분 매초 다른 사람이 되니까, 난 그렇게 생각하니까, 아무튼 그런 걸로 따지만 하아아안참 전에 죽은 내 무덤을 굳이굳이 파헤쳐 이때 잘못 묻었군, 이쪽 팔목이 비틀어져 있고 머리 위치가 이상해... 라고 해부하듯이... 그렇게 나를 괴롭히고 있는데, 문제는 신체가 죽어 파묻으면 땅의 축복이 살결 위에 내려 뼈만 남고 마는데 정신을 파묻은 무덤을 파헤쳐보면 살결이 그대로라는 것이다. 끔찍하고 끔찍이 여겼기에 다시금 저주했던 그런 순간들이 여전히 거기에 그대로 있다는 것인데, 또 문제는 썩지도 않은 주제에 악취는 난다는 것이겠지... 그 악취에 코를 스스로 묻고 괴로워 죽겠다고 토하고 싶다고 징징대는 순간들. 그럴 때 나는 글을 토해야 한다. 지금 여기에 토하고 있지 않으면 아무튼 어딘가에 토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다시 회피하러 가도록 하겠다. 핑계는 '구토할 만큼 건강이 나쁨'. 여러 날 전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 모두 나의 회피처였음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글쓰기 역시 사랑한다고 생각해도 틀린 것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