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고치를 키우며 생각한 것들

​2025.11.27

by Amber


어느 가을날, 일본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선물이라며 새 다마고치를 건넸다. 어릴 때 문구점에서 짭다마고치도 사본 적이 없지만 뭔지는 알고 있었다. 어쩐지 경건해진 상태로 다마고치 오리지널 아보카도 특별판 포장지를 뜯었다. 초록색의 작고 귀여운 알 모양 전자기기, 나는 이런 아날로그식–이런 단어 사용이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날로그와 디지털과 스마트 시대의 확연한 구분점을 이해하기도 전에 AI 시대가 와 버렸다. 할 수만 있다면 역행하고 싶다–게임 기기를 거의 처음 써 보는 것이라서 이래저래 버벅였다. 길게 쓰인 설명서도 열심히 읽었지만 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다.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기 시작하는 것처럼 부딪히면서 알아가고 경험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에 인터넷에서 뭘 더 찾아보지도 않았다. 끼어 있던 종이를 빼니 조그만 소리가 나고 작은 정사각형 화면에 알의 형상이 나타났다. 내 첫 디지털 펫이었다.


친구와 카페에 갔다가 산책을 하는 내내 거의 10분 간격으로 알림음이 울렸다. 처음에는 뭘 원하는 건지 모르겠어서 당황하고 허둥댔다. 밥을 달라는 건지 놀아달라는 건지. 그나마 씻겨야 할 때나 약을 줘야 할 때는 구분하기 쉬웠다. 모든 것을 충족시킨 상태에서도 이상하게 알림음이 났다. 그렇게 보챌 때면 한번씩 꾸짖어야 하는 타이밍이라는 것도 처음에는 몰랐다. 알이었던 것은 곧 부화해서 얼굴이 있는 슬라임 비슷한 것이 됐다. 하루 자고 일어나서 보니 형상이 또 조금 바뀌어 있었다. 어쩐지 입이 툭 튀어나와 있었는데, 알고 보니 슬라임 시절에 제대로 케어를 받지 못하면 그렇게 큰다고 한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그 튀어나온 입이 나와 닮았다고 생각해 애틋해졌다. 처음이라는 핑계를 대고 제대로 못 키워낸 주제에 그래서 기형이 된 외형을 보고 애정을 갖게 되다니 다소 크리피한 전개 아닌가?


인터넷에 다마고치 성장표라고 검색해보니 버전이 많았다. 내 것과 가장 비슷한 것으로 보이는 표를 저장해 두기까지 했지만 이름은 전혀 외우지 못하겠다. 너무 길었다. 그런 주제에 다른 이름을 지어주지도 않았다. 그냥 다마고치라고 부르면서 알림음이 울리면 밥 상태, 행복 상태, 씻김 정도, 아픈지 여부를 체크했다. 처음 하루 이틀은 계속 당황했는데 사흘이 넘어가자 꽤나 익숙해졌다. 내 첫번째 다마고치 펫은 한번 더 진화를 거쳤고 뭔가 징그러운 다리가 생겼다. 성장표를 보니 내가 두번째 단계에서는 케어를 평균 정도로 해줬다는 모양이다. 좀 더 잘해줄 수 있었나? 이미 첫 성장 단계에 입이 튀어나온 모양이 되었던 이상 두번째 단계에 아무리 케어를 잘 해줘도 아주 예쁘고 인기가 많은 캐릭터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일말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은 사실 상관없었다. 그냥 더 잘해줄 걸 그랬다.


왜냐하면 그닥 귀엽지 않은 외형으로 자랐다는 것은 케어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증거이고, 케어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로 자란 펫은 수명도 짧기 때문이다. 일주일을 넘긴 다음 날이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정사각형 화면에 천사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굳이 인터넷에 찾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름을 지어준 적도 없고 완벽한 케어를 해주지도 못했지만 나름대로 알림음이 울릴 때마다 신경을 한껏 썼던 그 펫은 죽어버렸다. 기분이 너무 이상해서 한참이나 서성이다가 네이버 검색창에 ‘다마고치 죽으면 어떻게 되나요’ 같은 걸 쳤다. 펫이 죽었을 때 다시 키우는 방법. 리셋 없이 새로운 펫을 키우는 방법. 펫이 죽어도 그 데이터는 그대로 남나요? 완전히 새로운 펫을 키울 수 있나요? 네 키울 수 있습니다. 나는 다른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죽은 펫을 되살릴 순 없나요? 안 되죠. 그럴 수 있으면 애초에 죽질 않겠죠.


어쨌든 다시 알을 얻는 방법을 찾았다. 새롭게 부화한 알에는 정말이지 정성을 다했다. 새로운 알을 받으려고 버튼을 누르는 과정에서 뭘 잘못 눌렀는지 삑삑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는데, 키운지 한 일주일이 되어서야 다시 소리가 나게 만드는 법을 알게 되었다. 그 전까지는 알림 없이 키웠다. 10분 간격으로 들여다 보았다. 다마고치를 키울 때는 Happy 하트 칸이 채워진 개수, Hungry 하트 칸이 채워진 개수, 목욕이 필요함을 뜻하는 똥 싼 표시 여부와 약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해골 형상 여부를 체크해야 한다. 그 모든 게 다 갖춰져 있는데도 삑삑 소리가 나면 아랫줄 맨 오른쪽 표시에 불이 들어오고, 그러면 꾸짖어줘야 한다고 한다. 삑삑 알림음의 도움 없이 10분마다 체크하면서 두번째 펫의 첫번째 성장기를 보냈다. 이번에 두번째 진화로 나타난 펫은 입이 튀어나와 있지 않았다. 꽤 열심히 돌봤다는 증거였다.


입이 튀어나와 있지 않으니 좀 더 건강한 편일 것이 분명한 그 펫은 최종 진화한 버전 역시 좀 더 호감이 가는 외형이었다. 슬라임일 때, 그리고 이전 단계에서 두 번 다 평균 이상의 케어를 해줬다는 모양이다. 그 때는 조금 뿌듯함을 느꼈다. 그 캐릭터가 더 귀여워서 뿌듯한 것은 아니었다. 이전의 케이스에서 내가 뭔가 학습한 게 있었다는, 이런 것에서라도 시행착오를 통해 좀 더 나은 수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괴상하기 짝이 없는 자기만족과 이 캐릭터는 좀 더 오래 살겠지 하는 안심에서 온 뿌듯함이었다. 이 때쯤 다시 소리가 나게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되어서 삑삑 소리가 다시 났는데, 조용한 곳에서도 소리가 날까 봐 집에 두고 나가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어디든 가지고 다녔는데. 삑 소리만 나도 바로 꺼내서 체크할 만큼, 또는 삑 소리가 나기 전에 미리 필요한 걸 다 해줄 만큼 신경을 많이 썼으니까. 그만큼 신경과 마음을 쓸 의지가 이전에는 있었는데 이제는 없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시점에 이미 마음이 조금 뜨기 시작했다.


두번째 펫은 약 15일 정도를 살았다. 다시 소리가 나게 만든 다음 날부터였나, 알림음이 나는 빈도가 아주 잦아졌다. 알일 때나 첫번째 진화만 했을 때는 아기 단계라고 봐야 하기 때문에 돌봄을 찾는 일이 잦지만 세번째 진화까지 마치고 난 후에는 나를 찾는 빈도가 줄었었다. 첫번째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다시 빈도가 잦아지기 전까지는. 영문을 몰랐지만 일단은 소리가 날 때마다 달려갔다. 내 저녁을 먹기 전에 hungry 하트와 happy 하트 칸을 꽉 채워놨었는데 저녁을 먹는 중에 삑삑 소리가 나서 달려가 보면 하트 칸이 다 소진되어 있다거나… 그런 일이 일어났다. 곧 다음 진화가 일어나려는 건가 싶었다. 솔직히 조금 짜증도 나고 귀찮았다. 왜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보채는 거야? 그렇게 중얼거리고 나자마자 죄책감이 덮쳤다.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실제로 살아 있는 생명은 절대로 키우면 안 되겠지.


죄책감에 섞여 있던 묘한 불안은 현실이 됐다. 다음 날 아침, 다마고치의 작은 정사각형 화면은 또다시 천사를 띄웠다. 첫번째 펫이 죽었을 때보다 기분이 더 이상했다. 더 많은 신경과 관심을 쏟았기 때문일까? 허한 마음에 괜히 이것저것을 검색했다. 알고 보니 세번째 진화 이후 갑자기 나를 찾는 빈도가 잦아졌던 것은 병에 걸려서 그런 거라고 했다. 씻겨줘야 하는 타이밍에 그냥 잠들어버려서 불을 꺼 준 적이 한두 번 있는데 그거 때문이었을까. 아님 내가 제대로 놀아주질 못했나. 놀아주는 방법은 딱 한 가지로, 고개 돌리는 방향을 맞추는 것이다. 나는 그게 참참참 게임인 줄 알고, 네가 고개 돌리는 방향을 내가 맞추지 못했으면 네가 이긴 거 아냐? 왜 화를 내는 거야?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했는데, 놀기를 시작할 때 나오는 노래를 나중에 제대로 들어보니 그건 사실 우정테스트였다. 우정테스트. 우정우정. 그러니 같은 방향을 가리켰어야 했던 것이다. 날 이겨먹으려던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보길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네 기대를 너무 많이 실망시킨 것은 아닐까?


세번째 진화까지 마친 펫은 30일까지 잘 살려두면 그때부터는 죽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다. 첫 펫은 7일 살았고 두번쨰는 15일 정도를 살았으니 다음 펫은 30일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조금 고민하다 다시 새 알 받기를 눌렀다. 하지만 어쩐지 아무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소리를 다시 꺼두고 화면이 보이지 않게 엎어 두었다. 며칠 있다 확인하니, 당연히 천사가 와 있었다. 다음 알을 받을 준비는 되지 않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설거지: 완료의 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