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hwashing: Mission Completed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는 것도 평범한 집밥을 먹는 것도 좋아하지만 식사 자체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일단 메뉴를 고르고, 해 먹을 것인지 시켜 먹을 것인지 나가서 먹을 것인지 정한다. 집에서 해 먹거나 시켜 먹었다면 다 먹은 후 뒷정리를 해야 한다. 나는 이 뒷정리 부분을 제일 좋아한다. 음식을 기다리거나 맛있게 먹을 때보다 다 먹고 나서 깨끗하게 치울 때가 제일 즐겁다. 보다 정확히는, 다 먹은 그릇을 깨끗하게 설거지할 때 가장 큰 쾌감이 온다.
친구 집에 가서 같이 음식을 해 먹는 일이 잦았던 때가 있다. 꽤 최근이다. 그때 누구나 설거지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친구 집에는 식기 세척기가 있었다. 나는 일련의 경험으로 그 물건을 썩 믿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내가 사는 집에 들여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또 어디든 내가 살아본 집에는 식기 세척기 같은 것은 없어 왔다. 친구는 음식 만드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물론 나도 요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먹을 것을 내가 고르고, 식재료를 선택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손으로 직접 어떠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싫어할 수가 없는 행위다. 내가 주방이라는 공간에 전적인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을 때에는 특히 더 그렇다.
하지만 나는 역시 설거지가 더 좋다. 다 먹은 그릇을 차곡차곡 쌓아 놓으면 물로 한번 헹궈내고 수세미에 세제를 붓고 거품을 내어 빡빡 닦아내고 다시 물로 깨끗이 헹궈 건조대에 올려두는 행위가 재미있다. 더러워진 것을 씻어내고 원래의 상태로 복원시킨다는 점에서 신성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다면 그걸 하루에 두 번이나—나는 하루에 두 끼를 먹으니까—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보다 끝내는 게 좋다. 여행을 떠날 때보다 마치고 돌아올 때가 더 기껍다. 여러가지 일이 벤다이어그램처럼 서로 겹쳐 있는 기간이면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뭐라도 빨리 끝내야겠다는 강박이 강렬하게 든다. 무언가를 하는 도중에 마음이 편안할 수는 없다. 반드시 완료한 후에야 숨을 편히 쉴 수가 있고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보며 “일상의 즐거움”이라는 것을 탐색할 수 있다. 내게 주어진 일을, 또는 내가 하기로 결정한 일을, 또는 내가 계획한 것을 시작할 때는 한없이 불안감만 든다. 갈길이 멀어보여서. 또는 험해보여서. 때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아서. 하지만 완료 도장을 찍을 때는 어떤가? 첫발을 딛을 때 멀어보였던, 험해보였던, 아니면 아예 보이지도 않았던 길을 어쨌든 어째저째 내가 기어코 다 걸어왔다는 증거가 아닌가? 그런 후에야 나는 편하게 숨을 내쉴 수가 있는 것이다.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소화 기관이 굉장히 예민해졌고 되도록이면 밸런스를 맞추어 정해진 시간에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밸런스를 맞춘다는 것이 탄단지 고루 갖춰 뭐 이런 것은 아니고, 한 끼를 건강하게 먹었으면 한 끼는 좀 풀어지고 해서, 저속도 아니고 고속도 아닌 어쨌든 고속은 아닌 노화... 속도의 균형을 추구해보려는 것이다. 매 끼니를 대충대충 때우지 않고 뭘 먹을지 고민하며 먹는다는 것은 끼니를 챙기는 행위, 식사 행위에 심적으로 얹어두는 무게추를 늘리는 행위다. 이제 식사를 한다는 것은, 이전에도 어느 정도는 그랬지만, 요즈음은 더더욱 내가 계획하고 통제하여 제대로 끝마쳐야 하는 임무에 가까워졌다. 그러니 그 임무를 마치기 위한 체크리스트 가장 하단에 있는 설거지가 내겐 가장 상쾌한 과정인 것이 타당하다.
설거지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단순히 귀찮을 뿐인 걸까? 그냥 음식 먹고 남은 것 만지기를 좋아하지 않는 걸까? 먹고 나면 그냥 앉아 쉬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니까? 아니면 내가 그렇듯 그들의 성향과도 관련이 있는 걸까? 일을 마무리하는 것보다 시작하고 벌리는 과정에서 더 흥미를 느끼는 걸까? 무언가 완성하고 완수했다는 감각에서 오는 후련함보다도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시작되고 있음을 목격하고 체현할 때의 도파민을 더 즐기는 걸까? 그 도파민이 그 ‘알 수 없음’의 상태에서 오는 불안이나 초조함도 상쇄해주는 걸까? 아니면 불안이나 초조함 따위를 아예 느끼지 않는 걸까? 그런 걸 설레임으로 받아들이는 걸까, 아마도? 또, 또 아니면, 식사를 하는 행위라는 ‘일’에 포함되는 범위를 사람마다 다르게 규정하는 걸까? 나는 메뉴를 고르고 준비하고 먹고 치우고 설거지를 말끔하게 하는 것까지라고 생각하지만 누군가는 다른 사람이 정해준 메뉴를 먹기만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메뉴를 고르고 요리를 하는 것 자체로 어떠한 ‘완수’의 감각을 충분히 누릴 수도 있고, 누군가의 무의식은 먹는 것을 마칠 때 식사 시간 역시 끝이라고 인식하는지도 모른다.
오늘 저녁에는 들기름 막국수를 만들어 먹었다. 대략 6월부터 입맛이 들락날락하는 중이다. 돌아서면 뭐가 먹고 싶고 하루종일 배고프고 입에 무언가를 집어넣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 같던 시기는 갑상선 항진증의 완치와 함께 완전히 끝이 났다. (다시 돌아오지 않길!) 이런 여름이면 일주일 중에 입맛이 없는 날은 4일 정도가 된다. 오늘도 역시나 그랬다. 메뉴 선정의 이유는 집에 밀키트가 있어서였다. 딱히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는데 역시 만들고 먹을 때보다 재료들이 들어있던 비닐을 씻어서 버리고 냄비와 그릇과 컵들을 설거지할 때가 더 유쾌했다. 어디 주방보조로 들어가야하는 거 아닐까? 설거지가 이렇게 재밌으면. 그런데 전문식당에서의 설거지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그러니까 어떠한 완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계속해서 반복되는 쳇바퀴 루틴 중 일부일 테니 똑같이 재밌지는 않을 것 같다.
AI는 사람들의 사고능력을 빼앗고 수많은 일자리를 삭제시키고 내게 끝없는 혐오감과 그래도 이제는 받아들이고 적응해야하는 게 아닐까 싶은 불안 섞인 모순적 호기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겠지만 내가 먹은 밥그릇 설거지는 대신 해주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대신 해준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계, 식기 세척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것도 사람이 직접 그릇을 기계에 넣어야 하는 것 아닌가? 20년 전 우리는 상용화된 집안일 로봇을 상상했었는데. 그 상상이 빗나간 게 아쉽지 않다. 나는 설거지 좋아하니까. 내일도 나는 번거롭게 품을 들여 직접 점심 메뉴를 고르고, 그걸 만들어 먹고, 그리고 그릇을 손수 깨끗하게 씻어 건조대에 올려둘 거다.